"여성가족부를 없애면 '평등 사회'가 될까요?"

CBS노컷뉴스 김효은 기자 2017. 9. 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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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에 '남성 역차별' 주장 올라오기도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자료사진)
"양성평등이라는 명분 하에 남성들은 역차별을 받아야 했습니다. (중략) 저는, 남성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국방의 의무를 강요당하고, 일부 사람들에게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받고, 아무 이유 없이 여성들에게 기회를 양보할 것을 강요받습니다. (중략) 여성가족부는 여성단체의 요구를 과도하게 수용하여 여성편향적인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대부분의 업무를 단독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다른 부처와 같이 수행하여 단독 부처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며…"

지난 2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해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입니다. 5일 오전 기준으로 997명이 동의한다는 의견을 남겼는데요, 이와 유사한 글들이 국민청원 게시판에 꾸준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요? 또 여성가족부는 폐지되어야 하는 걸까요? 본격적인 검증에 앞서 지난 대선 토론의 한 장면을 싣습니다.

ㅡ 유승민 후보: 저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합니다. (중략) 문 후보님께서는 여성가족부를 더 확대하고 기능 강화 이런 공약을 하셨더라고요. 저하고 정반대라서 여전히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지 왜 여성가족부 확대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ㅡ 문재인 후보: 원래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를 만들었고 노무현 정부가 그걸 여성가족부로 확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수위 때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 여성계에서 아주 강력하게 반발해 가지고 결국은 여성부가 존치하게 됐는데 말씀하신 대로 각 부처에 여성들을 위한 많은 기능들이 나눠져 있지만 그것이 충분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니까 전체를 다 꿰뚫을 수 있는 여성가족부가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지난 대선 당시 유승민 의원과 문재인 대통령(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놓을 정도로 한국은 아직 양성평등이 요원한 국가입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한국의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를 살펴볼까요? 성격차지수는 남성 대비 여성의 경제 참여율, 유사업종 내 임금 등 14개 항목을 통해 남녀 간 격차를 계산한 것인데요, 한국은 144개 조사 대상국 중 116위로 성평등 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남녀 간 임금 격차는 크게 벌어져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36.7%로 회원국 중 가장 컸습니다. 한국 남성이 100만원을 받을 때 여성은 겨우 63만원을 받은 것이죠. 여성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도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 여성의 저임금 비율은 37.6%였지만, 남성의 저임금 비율은 15.2%였습니다.

한국 여성은 결혼과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고, 고용시장에 재진입하더라도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죠.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는 이렇게나 많습니다. 또한 여성은 성차별뿐 아니라 범죄에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도 있죠. 2015년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강력범죄 피해자 가운데 여성이 88.9%에 달했습니다.

이 때문에 여성가족부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들이 생각하기에 여성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많이 진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질 좋은 일자리에 여성이 거의 없고 비정규직도 거의 여성"이라며 "실질적인 차별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성가족부를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1조원도 안 되는 예산으로는 여성가족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며 "여성가족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사진출처=청와대)
본래 여성가족부는 독립된 부처가 아니었습니다. 1988년 정무2장관실에서 여성정책을 총괄한 것이 효시였죠. 그러다 1998년 국민의 정부에서 대통령 소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각 정부 부처에 분산된 여성 관련 업무를 총괄할 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2001년 '여성부'를 신설했습니다. 이때 여성부는 보건복지부로부터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 보호, 성매매 방지 업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지원 사무를 이관 받았습니다. 노동부로부터 '일하는 여성의 집' 사무도 넘겨받았죠.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확대된 것은 2005년 참여정부 때입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변화함에 따라 통합적인 가족 정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죠.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성가족부는 다시 여성정책만 다루는 '여성부'로 기능이 축소됐습니다. 그러다 2010년 청소년과 다문화 가족을 포함한 가족 기능이 이관되면서 여성부는 또다시 '여성가족부'로 개편됐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여성가족부가 단독 부처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있으나 마나 한 부처'라는 인식이죠.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다른 부처는 기능 중심인데 여성가족부는 여성이라는 대상이 중심이다보니 일반 국민들이 봤을 때 (업무가) 겹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다른 부처의 (기능적인) 접근에서 빠지는 대상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부처가 바로 여성가족부"라고 강조했습니다. 중복 예산은 예산안 심사 단계에서 삭감되기 때문에 부처 간 업무 중복은 발생할 수 없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 계획·사업이 성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해야 하고,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성인지 예산' 등을 실시해야 하는데요, 이같은 양성평등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주관하는 부처가 바로 여성가족부입니다. 과거 여성계가 호주제 폐지나 성매매방지법 시행 등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의욕적으로 참여한 부처도 여성가족부였죠.

현재 여성가족부의 사무는 크게 네 갈래로 나뉩니다. 여성정책을 총괄하고, 청소년을 보호하며, 다문화 가족을 포함한 가족 정책을 다루고, 여성·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 피해를 예방하는 업무를 맡고 있죠.

구체적으로는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을 지원하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 확충에 490억원(이하 2017년 예산안 기준), 폭력 피해자 보호·지원 서비스에 684억원,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199억원, 아이돌봄서비스 868억원, 저소득 한부모가족 지원 925억원 등입니다. 하지만 전체 정부 예산안에서 여성가족부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합니다. 올해 정부 예산안 400조 7000억원 가운데 여성가족부의 예산은 7122억원으로, 1조원에도 채 미치지 못했습니다.

여전한 성차별과 미미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 폐지와 남성 역차별 논란은 왜 해마다 반복되는 걸까요?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모든 개인이 경쟁하고 미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주변에 있는 사회적 약자를 겨냥할 확률이 높아진다"면서 "페미니스트나 이주자 때문이라고 하는 등 자기 위안을 하는 방식으로 희생양을 찾게 되는데 이는 단기적인 위안일 뿐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습니다.

인식의 전환을 바라는 당부도 있었는데요,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여성가족부 정책이 남성을 역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남성 인력에게만 부여됐던 경제활동의 짐을 여성이 같이 지고 가겠다는 정책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CBS노컷뉴스 김효은 기자] afric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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