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인터뷰] '살인자의 기억법' 설경구 "'꾸꾸·설탕'..팬들 화력 체감된다"

한해선 기자 2017. 9. 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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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충격적인 내용만큼이나 충격적인 비주얼이다. 도대체 얼마나 또 변신할 수 있을까 싶던 배우 설경구가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에서 한계치를 뛰어 넘은 극강의 변신을 했다. 성공적으로.

배우 설경구 /사진=쇼박스

포스터 한 장으로 압도하는 살기. 설경구는 이번에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은퇴한 연쇄살인범 병수로 분했다. 추레한 차림에 극도로 왜소하고 안면 경련까지 일으키는 병수는 괴이하기 그지없다.

전작 ‘불한당’으로 섹시한 중년을 보여준 뒤라 격차가 훨씬 크게 와 닿는다. 그럼에도 설경구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연기’ 하나만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뒤틀리면 뒤틀릴수록 희열을 느끼는 배우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새로운 살인범의 등장으로 잊혀졌던 살인습관이 되살아나며 벌어지는 범죄 스릴러. 김영하 작가의 동명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설경구는 “2015년 1월에 이 영화를 끝내고 8월에 ‘불한당’을 찍었다”며 일반 관객들이 인식하는 개봉 순서와는 반대로 촬영이 이뤄졌음을 밝혔다. 그러니까 이 살기 가득한 병수에 먼저 빠져든 후 ‘불한당’의 섹시한 한재호 역에 몰입한 것.

과거 연쇄살인범이었던 병수는 마을에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마주친 남자 태주(김남길)에게서 살인자의 눈빛을 읽어내고, 그와 목숨을 걸고 대립한다. 위험에 닥친 딸 은희(김설현)를 구하려는 과정에서는 부성애까지 열연한다. 내, 외적으로 극단에 치달은 병수를 표현하기 위해 설경구는 10kg 이상 체중 감량을 하는가 하면, 살기 가득한 눈빛과 경련이 이는 안면 연기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엔 감독님과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병수의 나이를 50대 후반으로 설정했는데 애매한 나이더라. 분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특수 분장은 ‘독재자’ 때 해봐서 탈락, 일단 체중 감량이 베이스였다. 감독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완성했다. 뒷머리는 부분 가발이었다. 수차례 써보고 결정했다. 캐릭터가 얼굴에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불한당’까지 이어졌다. 소설 속 인물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관심을 많이 가졌다. 이전에는 내가 단순히 체중을 조절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캐릭터가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불한당’에서는 미스트 를 계속 뿌리면서 번지르르하게 보이려 했다.”

배우 설경구 /사진=쇼박스

순간 설경구인 줄 몰라볼 정도로 ‘역대급 변신’을 한 그는 특수 분장 없이 직접 체중 조절과 표정 연기만으로 병수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근로기준법상 7시간 이상 촬영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특수 분장을 하려면 훨씬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특수 분장을 하면 껍데기가 씌워져서 표정이 잘 안 나오는 것 같았다. 내 피부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다. 병수는 액티브한 역할이어서 분장이 안 어울렸다.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

“안면 연기는 내 느낌대로만은 못 하겠어서 감독님의 지시가 있으면 그때그때 했다. 소설에는 안면 경련의 설정이 없었다. 영화는 직접 눈으로 보여줘야 해서 일종의 사인으로 장치를 준 것이다. 이전에 뇌를 다치는 사고가 있어서 심하게 경련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수많은 작품에 살인자들이 있지만, ‘살인자의 기억법’ 속 병수는 어딘가 애잔하고 서글프고 처량하다. 혈기왕성한 태주와 대립하면서 딸 은희를 지켜내야 하는 사명감으로 관객들의 의심과 응원 두 가지를 함께 받을 만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면서 안타까움을 유발한다.

“자료들을 찾던 중 요양병원에 계신 노인성 치매 분들의 사례를 봤다. 그 분들의 아기 같은 모습만 기억에 남았다. 그 밖에는 레퍼런스를 딱히 찾아볼 데가 없었다. 감정선에 많이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 영화가 기억이 날아간다는 식으로 설정이 돼 있고, 중간 중간 장면이 넘어가는 식이어서 표현이 덜 어려웠다. 최대한 아기 같이 표현하려고 했다.”

‘박하사탕’(1999) ‘공공의 적’(2002) ‘오아시스’(2002) ‘광복절특사’(2002) ‘실미도’(2003) ‘역도산’(2004) ‘사랑을 놓치다’(2006) 등 과격한 액션부터 멜로, 내면 붕괴까지 설경구가 보인 캐릭터들은 유독 고통스럽고 강렬했다. 편한 캐릭터가 별로 없었단 질문에 설경구는 “생각보다 편하게도 많이 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사실 연기적으로 힘든 순간에 만난 작품이었다. 단순하게 살을 찌우고 빼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외적 변신만큼이나 내적으로도 갈등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기억과 망상을 오가며 무너져 가는 병수를 연기하며 살인범이었던 스스로를 의심해야하는 상황, 부성애, 심지어 드문드문 숨어있는 유머까지 갖가지의 감정선을 오가야 했다.

배우 설경구 /사진=쇼박스

“병수에는 모든 게 섞여있다. 김남길과 심리전도 펼치면서 복합적이었다. 소설보다 입체적이었다. 병수는 단순한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주변에 황석정, 오달수와 대화를 하면서 사회생활도 한다. 캐릭터 후유증인지 이번에는 진짜 잠을 못 잤다. 무슨 고민인지는 모르겠는데 숙소에 돌아와서 머릿속에 계속 뭐가 남아있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 많이 복잡했다.”

영화 속에서는 병수가 자신에게 무의식적으로 남아있는 살인 본능을 행동에 옮기기도 하고, 병수와 태주가 서로를 살인자라 부르며 난투극을 벌이기도 한다. 때문에 목을 조르기도, 졸리기도 하면서 아찔한 열연을 펼쳤다.

“그거 진짜 무섭다. 나도 모르게 앞으로 훅 갔다가 케이블선에 확 졸리는데 하체 힘이 풀렸다. 그래서 잠깐 쉬고 촬영한 적도 있었다.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졸라야 했는데 조르는 것도 힘들었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 힘든 건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연기하면서도 살 떨렸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설경구를 비롯해 김남길의 연기 변신도 눈에 띈다. 설경구가 체중 10kg을 감량한 데 비해 김남길은 14kg을 증량하며 이전에 볼 수 없던 외모로 선과 악을 넘나드는 섬뜩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 선한 얼굴이 웃을 때 되게 매력 있으면서 싸했다. 오히려 그 캐릭터가 나보다 고민이 더 많을 수 있겠더라. 혼선을 주는 캐릭터여서 다 보여줄 수도, 다 숨길 수도 없는 캐릭터였다. 김남길 덕분에 영화가 헷갈리면서 가는 힘이 생겼던 것 같다. 남길이는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닌데, 이번에 벌크 업해서 몸을 만들었다. 그래서 몸싸움할 때 진짜 힘들었다.(웃음) 김남길이 웨이트를 해서 몸이 딱딱했다.”

‘변신의 귀재’ 설경구에게 지금까지 맡은 캐릭터 중 가장 힘들었던 캐릭터를 꼽아 달라 하자 “‘박하사탕’ 때를 꼽을 수 있다”고 답했다. 설경구는 “촬영 초반에 스태프들이 실제 노숙자를 데려왔다는 식으로 생각해서 나도 자연스레 경계를 했다. 그 땐 서로 거리를 두고 외톨이로 촬영을 했다. 그러다 후반에는 다 친해졌지만.(웃음) 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초반에는 스태프들이 나를 ‘건방진 놈’으로 봤다더라. 당시에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렇게 홀로 연기해야 하는 영화가 있긴 하다. 이번 ‘살인자의 기억법’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매 작품마다 허투루 연기하는 법이 없던 덕일까. 설경구는 지난 5월 개봉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통해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았다. 비록 수치상으로 그다지 흥행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2030 여성 팬들로 구성된 ‘불한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땡큐 상영회’ 등 극장 대관 상영이 이어진 것. 연기경력 25년 만에 팬들의 조공, 지하철 광고 등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배우 설경구 /사진=쇼박스

“예전에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얼떨떨했다. 나도 팬들에게 절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해드린 게 없는 것 같은데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감동적이다. 여름철에는 성수기라 극장 배급이 안됐는데 9월부터 다시 대관을 한다더라. 내 팬클럽 카페 회원 수가 3만 명이었는데 ‘불한당’ 이후로 탈퇴했던 분들이 다시 가입해주셨더라.(웃음) 예전에는 차분한 팬들이 많았는데 최근 팬들은 직접적으로 표현을 해준다. 에너지를 받는 것 같다. 응원이 엄청 된다.”

“전문용어 ‘화력’으로 치면 체감이 엄청 되고 있다. 활력도 되고 조심스러워도 진다. 함부로 작품을 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감시의 역할도 되는 것 같다. 나 자신을 다잡는 계기도 됐다. 책임감도 생기는 것 같고, 작품으로 보답하는 수밖에 없겠다. ‘불한당’의 한재호라는 인물이 악역인데 말은 상냥하게 해서 좋아해주신 것 같다. 팬들이 ‘꾸꾸’ ‘울꾸’ ‘설탕’이라 불러주시더라.(웃음)”

‘살인자의 기억법’ 인물 설정에 따라 설경구의 몸이 실제로 기억하는 것들, ‘습관’에 대해 물었다. “습관적으로 안 하면 안 되는 게 있다. 줄넘기다. 그래야 하루가 편하다. 촬영 나가기 전에 하는데 영화마다 개수가 다르다. ‘살인자의 기억법’ 때 카운트 되는 줄넘기로 만 개씩 했다. ‘불한당’ 때는 6000개를 했는데 그게 기본 수치다. 무릎이 걱정되기는 하다. 20년 넘게 해왔다. 습관처럼 한다. 1시간이면 6000개를 한다. 스태프들도 쫓아서 하다가 포기하더라. 그 밖에는 웨이트를 조금 하기도 한다. ‘불한당’ 때는 옷 태를 위해 웨이트를 했다.”

‘불한당’과 같은 멋있는 캐릭터를 또 노려볼 만하지 않냐는 말에 “좋은 작품이면 하겠지만, 스스로 그런 모습만을 바라지는 않을 것 같다”고 소신을 지키는 설경구는 마지막까지 ‘고통의 미학’으로 빛날 수 있는 연기 철학을 강조했다.

“한동안 습관적으로 연기한 적도 있었다. 비록 지금 내 나이가 지천명(知天命)이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을 하면서부터 새로움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 같다. 캐릭터 얼굴에도 관심이 많아졌고 단순하게 연기를 생각하지 않게 되더라. 고민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캐릭터가 나오는 것 같다. 좀 더 고민을 해야 새로운 얼굴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게 힘들지만 재미가 있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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