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로 '근육마름병' 오듯..한국인들 과로로 '시간마름병'

김유진 기자 2017. 9. 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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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은 취업자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2069시간으로 세계 2위다. OECD 35개 회원국 평균(1764시간)을 놓고 보면 1년에 38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과로는 한국인들을 ‘시간마름병’에 시달리게 하는 주범이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원은 최근 발간된 계간 ‘황해문화’ 가을호에 기고한 글에서 시간마름병이 “건강 문제를 비롯해 관계 단절, 소외 , 자살, 돌연사, 대형사고까지 포함한다”고 정의했다. 일에 치여 가족과 교감이나 자신에 대한 성찰, 공동체 참여 등을 아예 불가능하게 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김 연구원이 치료법으로 제안하는 것이 바로 ‘시간의 민주화’이다. 시간의 민주화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비정상적 상태에 균열을 내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김 연구원은 “장시간 노동은 권력관계의 산물”이라며 “민주화 과정이 그랬듯이 시간의 민주화 역시 자연스럽게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장 시급한 대책은 업무량을 제한하는 것이다. 업무량을 그대로 두고 업무시간만 제한한다면, “집에 가져가서 하는 업무”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또 “노동시간 단축의 정당성을 일자리 창출·공유에서만 찾는 일자리 담론에서 탈출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과잉 노동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고용 확대만을 추구하면 자칫 열악한 시간제 일자리만 늘어날 위험이 있어서다.

‘카톡 감옥’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원격 업무지시가 보편화된 상황에서는 노동일과 노동일 사이에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최근 대두한 ‘연결되지 않을 권리’와도 맞닿아 있다. 프랑스 기술·컨설팅 분야의 노사연합은 업무시간 외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한 연락을 무시해도 된다는 협약을 체결했고, 독일은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안티스트레스법안을 마련했다. 김 연구원은 “신기술로 인한 노동의 유연화는 노동의 24시간화와 탈공간화 및 불안정화, 고용관계가 아닌 건수 중심의 계약, 기본급 없는 건별 수수료 지급, 위험의 개인화, ‘항시 대기’ 상태로 유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임금체계와 제도의 개혁도 ‘시간의 민주화’의 한 방편으로 지적됐다. 김 연구원은 “장시간 노동체제는 저임금 구조에 기댄 채 지속돼 왔다”며 “1990년대 중반 이후 임금체계가 유연화돼 왔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점차 기본급 비율은 낮추고 수당이나 상여금 등 변동급 비율을 높이면서, 부족한 임금분을 메우기 위해 초과노동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이에 기본급을 올리고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연·월차 휴가, 출산전후휴가, 주휴수당 등이 온전히 지급되도록 하고, 비정규직이나 대리운전기사, 배달앱 노동자 같은 호출 노동자에게도 이 같은 제도를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야근은 암이다’ ‘과로는 가정파괴범이다’와 같은 공격적인 화법은 장시간 노동의 위험을 알리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김 연구원은 장시간 노동 이후의 ‘다른 삶’을 상상하기 위해 ‘한갓진 삶’ ‘알바도 유급휴가를’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 ‘주말은 아빠와 함께’ 등의 구호를 사용할 것도 제안했다. 김 연구원은 노동자 스스로가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기보다는 ‘자기 돌봄’의 윤리가 요구된다”며 “정시 퇴근을 당연한 권리라고 지지할 수 있는 관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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