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 협박에 더이상.." 승진 대신 '셀프 좌천' 택한 공무원

문현경 2017. 9. 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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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감반 요구로 한 달 만에 판단 변경"
혐의 없음 → 비위 혐의, 정반대 결론
민정수석실 압력에 스스로 '셀프 좌천'
禹 변호인, "실제 비위 사실 있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장진영 기자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에서는 감사관실 조사 내용 중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부터 묻더니 강하게 질책하며 '징계를 줘야만 한다'는 식으로 말해 힘들었습니다."

민정수석실의 '표적 감찰'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문화체육관광부를 떠나 산하 기관으로의 '셀프 좌천'을 택했다는 김모(58) 전 감사담당관의 말이다. 그는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3부(부장 이영훈) 심리로 열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렇게 말했다.

김 전 감사담당관은 지난해 2월 좌천된 백모 전 감사담당관(57)의 후임이다. 백 전 감사담당관은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에서 "문체부 국민소통실 서모 사무관과 이모 주무관을 감찰하라"는 우 전 수석의 지시를 받고도 "징계하기 곤란하다"고 보고했다 좌천된 것으로 파악된 인물이다.

후임 김 전 감사담당관이 '표적 감찰'해야 할 사람은 세 사람으로 늘었다. "서모 사무관, 이모 주무관, 백 전 감사담당관의 비위 행위를 특별감사하는 과정이 힘들어 자리를 옮겨달라고 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김 전 감사담당관은 "맞다"고 대답했다.

감사담당관은 문체부 내에서 승진을 바라볼 수 있는 선호 보직이지만 그는 5개월 만에 스스로 전출을 희망했다. 그는 특검에서 "민정실 특감반한테 협박당해 더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지난해 7월 국립중앙극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가 증인으로 나온 이 날부터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또다시 소속이 바뀌었다. 1년 7개월 동안 세 번 명함이 바뀐 셈이다.

그는 감사담당관 자리에 앉은 지 두 달 만인 지난해 4월 특감반 지시에 따라 세 사람에 대한 재감사를 실시했다. 김 전 감사담당관은 "민정 쪽에서 '이런 부분이 비위 대상이니 조사하라'는 리스트를 줬다"고 증언했다. 보름간의 재조사 끝에 지난해 5월 내놓은 보고서는 백 전 감사담당관의 감사팀이 낸 보고서와 같은 결론이었다. 이번에도 '혐의가 없다'는 보고서를 받아든 특감반 이모 과장은 "제대로 조사해온 거냐. 부실하다. 달라진 게 없다. 이걸로 (우병우) 수석에게 보고할 수 없다"면서 "당시 문체부 위탁 잡지를 만들던 한 주간지 쪽 의견서가 100% 사실이니 이를 토대로 재조사하라"고 말했다는 것이 그의 증언이다.

이 주간지는 우 전 수석의 '공무원 찍어내기' 의혹의 시작점에 얽혀 있다. 검찰은 우 전 수석이 해당 주간지 편집장 김모씨의 청탁을 받고 '표적 감찰'을 지시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반면 우 전 수석 측은 문체부가 자체 발행하는 '위클리 공감'을 해당 주간지에 위탁 제작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간지가 계약해야 할 온라인 업체를 문체부가 선정하고 특정 기자의 승계를 요구하는 등 "공무원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것이다.

총 5차례에 걸쳐 서모 사모관 등에 대해 '혐의 없음' 결론을 내렸던 김 전 감사담당관이 결국 한 달 반 만에 '경고조치를 하겠다'는 보고서를 쓰게 된 데에는 해당 주간지 국장의 진술이 영향이 컸다. "문체부의 압력이 없었다"고 진술해오던 박모 국장은 갑자기 "압력이 있었다"고 진술을 바꿨다. 김 전 감사담당관은 "박모 국장이 (문체부로부터) 질책을 받고 압력을 느꼈다고 해 (보고서에) 그 입장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결국 "해당 주간지 국장의 진술과 특감반의 감사 요구로 비위 혐의로 판단이 변경된 것이다"는 것이 검사가 묻고 그가 인정한 내용이다.

김 전 감사담당관은 "전임인 백 전 감사담당관에게 일부 잘못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당시 감사관실에서 문체부 담당자들에 대한 징계나 조사를 은폐·축소하려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주간지 측에 대한 조사를 정확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압력이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하기 어려웠던 것이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문체부와 주간지) 양 측 주장이 달라 확인하려 했는데 주간지에서 만나주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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