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밀착취재] "금연구역 밖" "줄자 재보자" 학교 앞 흡연 단속현장 가보니

이창수 2017. 9. 3.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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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5개 구청 2년 전 조례 제정/ 교문서 50m 이내 금연 안 지켜져/ 단속원, 신분증 요구 권한도 없어/ 흡연자, 욕설·몸싸움 등 비일비재/ 자치구마다 단속 범위·금액 달라/"금연구역 캠페인 나서야" 지적도

“아 몰라요. X같은 소리하지 말고. 직접 재보든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중학교 앞 인도. 송파구보건소 소속 흡연 단속원들과 한 40대 남성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학교 코앞에서 흡연을 하다 적발된 남성이 ‘배째라’식으로 버텼기 때문. 서울의 25개 구청들은 2년여 전부터 조례를 통해 초중고 출입문으로부터 50m 이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 최고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진짜 몰랐다니까요. 봐줘요. 이렇게 단속하면 뭐가 달라져요?”

“학교 앞이지 않습니까. 선생님 아이가 다닌다고 생각해보세요.”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중학교 앞에서 ‘학교 앞 흡연 집중단속’에 적발된 한 남성(사진 좌측)이 “단속 범위(50m) 바깥”이라며 잡아떼자 단속원들이 직접 줄자를 공수해와 교문 앞에서부터 단속 현장까지의 거리를 재고 있다. 남정탁 기자
40분 넘게 이어진 실랑이는 결국 ‘줄자’가 등장하고 나서야 마무리됐다. “단속 장소가 50m 밖”이라고 우기던 남성은 단속원들이 줄자로 직접 거리를 재 보이자 깊은 한숨과 함께 신분증을 내밀었다.

이날 학교 앞 집중단속에 나선 박정호(67) 반장은 “1시간이 넘는 경우도 많은데 이정도면 양호한 수준”이라며 “심한 욕설은 물론 몸싸움도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과태료 부과를 위해서는 신분을 확인해야 하지만 단속원들은 신분증 제시를 강제할 권한이 없어 실랑이는 종종 격해지곤 한다.

단속에 대처하는 유형도 가지각색이다. 한 중년 남성은 이날 “이럴거면 송파구에선 담배를 팔지 말라”며 1시간 넘게 강짜를 부렸고, 잠동초등학교 앞에서 적발된 한 흡연자는 “외국 교포라 신분증이 없다”, “한국 주소를 잘 모르겠다”고 버티다 경찰차가 출동하자 그제서야 신분증을 내밀었다. 이외에 “눈감아 달라”는 ‘읍소형’, “안 피웠다”는 ‘발뺌형’, 욕부터 내뱉는 ‘욕설형’ 등 제각각이다.

김일수(62) 단속원은 “흡연자들의 사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학생들의 건강 문제가 더 우선시돼야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주기적으로 학교 인근에서의 금연을 호소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의 각 자치구들이 지난 2015년을 전후로 ‘절대정화구역’(초중고교 출입구에서 직선거리 50m) 내에서 흡연할 경우 최고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흡연자들이 적지 않다. 남정탁 기자
초중고 개학과 함께 학교 인근에서 흡연자들과 단속원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단속된 흡연자들은 “몰랐다”, “담배 피울 곳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어린이·청소년의 건강권을 고려해 정한 금연구역인 만큼 흡연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3일 서울시와 각 구청에 따르면 초중고 개학 이후 학교 인근 흡연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학교 정문에서 50m 이내를 ‘절대정화구역’으로 지정한 학교보건법을 바탕으로 2015년 즈음 각 자치구들이 학교 인근 흡연 과태료 조례를 시행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적어도 ‘학교 앞 흡연’은 사라졌으면하는 바람이다. 주부 김수연(41)씨는 “아이 등하굣 길에 교문 앞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단속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흡연자들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과태료 부과가 법률이 아닌 자치구 조례에 근거한 탓에 액수나 단속 범위, 빈도 등이 지역마다 제각각인데다, 절대정화구역 내 과태료 부과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불만이 크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동초등학교 인근에서 흡연 단속에 걸린 한 40대 남성이 단속원들의 신분증 제시 요구를 거부하며 버티고 있다. 남정탁 기자
직장인 이모(29)씨는 “길거리 흡연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요령껏 피우라는 소리 아니냐”며 “학교 앞 흡연이 과태료 대상인지 몰랐는데 단속되면 반발심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흡연구역은 없는데 금연구역만 계속 늘어난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서울의 경우 2012년 7만9391곳이었던 금연구역은 올해 24만8432곳으로 대폭 늘어났지만, 흡연시설(부스)은 43개소밖에 없고, 이마저도 11개 자치구에 집중돼 있는 형편이다.

흡연자들의 이런 불만에도 학교 인근 금연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아야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2011년 12.1%였던 청소년 흡연율이 지난해 6.3%로 절반 가까이 낮아진 것도 이같은 노력들이 뒷받침된 결과란 평가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한 관계자는 “학교 인근에서는 흡연이 있어선 안 된다”며 “지자체에서도 단속에 앞서 금연구역임을 알리는 캠페인을 적극 펼쳐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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