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교사와 기간제 교사, 대립할 이유 없다

백철 기자 2017. 9. 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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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예비교사들이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에 왜 그리 예민한지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어요.”(사립학교 정교사 ㄱ씨)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전환 문제를 두고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 중등교사 임용시험 준비생 모임에서는 성명을 내고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사립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다가 다른 학교의 정교사가 된 ㄱ씨를 만났다. ㄱ씨는 기간제 시절이나 지금이나 기간제 교사와 정교사가 분리된 이유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간제 때도 그렇고 지금도 담임교사 역할, 학생과 학부모 관리, 담당과목 수업 등 하는 일은 같다. 전에는 학부모들에게 기간제라는 것을 들키면 꺼려하는 시선이 느껴졌는데, 정교사가 되고 나서는 학부모들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예비교사들 “정당한 임용 절차를 거쳐야” ㄱ씨는 수많은 사립학교 교사들의 존재야말로 임용고시가 교사 전문성의 절대적 기준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임용고사를 보지 않은 기간제 교사들은 교사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임용고시 준비생들의 성명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나도 대학생 때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는 임고를 본 선생님이 한 명도 없지만 각자 교사로서의 사명을 갖고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ㄱ씨는 “기간제가 원래 기간제의 취지대로 이용되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일선 학교가 기간제 교원을 뽑는 근거조항은 교육공무원법 32조다. 법 32조는 교원이 병가, 출산휴가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휴직을 한 경우, 특정 교과를 한시적으로 담당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기간제 교사를 사용할 수 있게 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실제 학교는 기간제 교사들에게 임시적인 일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상시·지속적인 일까지 맡긴다는 게 ㄱ씨의 설명이다.

특히 ㄱ씨는 기간제 교사들에게 담임교사 업무를 떠넘기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2013년 교육부가 발표한 ‘기간제 교원의 역할 및 제도개선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전국 1만5165명의 기간제 교사를 대상으로 했다. 이 연구에서 기간제 교사의 56.2%가 담임교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구에서 기간제 교사의 42.2%는 기간제라는 이유로 업무 분장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특히 기간제 여교사의 경우 70.1%가 기피 업무를 타의로 맡았다고 답했으며, 72.2%는 아예 업무 분장 논의에서 제외됐다고 답변했다. ㄱ씨는 “교사들이 수업 외에 받는 업무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기간제 교사가 있으면 그들에게 떠넘길 수 있지만, 기간제가 없어지면 떠넘길 데가 없으니 정교사들 입장에선 기간제 정규직화를 찬성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 조사에서 기간제 교사들은 방학 때 정교사에 비해 근무일자가 많거나, 일이 잘못됐을 때 기간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의 불이익을 당했다고 말했다. 또한 많은 기간제 교사들은 정교사 숫자가 충분함에도 기간제 교사에게 담임업무를 맡기는 것을 대표적인 차별사례로 꼽았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근처에서 공립학교 정교사 ㄴ씨(교총 소속)를 만났다. 그도 3년가량 기간제 교사 생활을 하다가 임용고시에 합격한 뒤 2년째 정교사로 일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범대학을 졸업한 ㄴ씨는 “대학 후배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장 상황을 전해준다. 차근차근 설명해주면 후배들도 ‘예비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대립구도’가 허구라는 점을 이해하더라”고 말했다.

ㄴ씨는 현장 교사 수가 이미 교원 정원을 넘어섰기 때문에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은 신규 채용과 큰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교육부가 발표한 2016년 교육기본통계에 의하면, 초등학교의 경우 현장 교사 수가 정원보다 2만1000명(13%)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교도 1만1000명(12%), 고등학교도 약 1만명(8%) 정도 정원보다 현장 교사 수가 많다.

■담임 업무 맡는 기간제 교사들도 많아 일부 임용시험 준비생 모임에서는 “기간제 교사 자리에 임용대기자를 대신 활용하자”고 주장하지만, 어차피 남은 정원 여분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 ㄴ씨의 설명이다. 전국적으로 올해 초등학교 교사 선발 예정인원이 5549명에서 3321명으로 큰 폭으로 줄어든 것 역시 이미 현장 교사 수가 정원을 넘어선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ㄴ씨는 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의 기간제 교사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통계를 따져보면 사립학교의 기간제 교사 비율이 국·공립보다 훨씬 높다. 여기엔 정말 임시직 이상의 일들을 하는 기간제 교사들이 많을 것이고, 채용비리도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왜 유독 사립학교에만 남교사 비율이 높겠나”라며 “사립학교 기간제의 정규직 전환은 임용고사와도 무관한 일인 만큼(임용고시는 국·공립 학교 정교사 선발에만 해당함) 예비교사들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더더욱 없다”고 말했다.

또한 ㄴ씨는 기간제 교사들이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잠시 교사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ㄴ씨가 있는 학교의 체육교사는 10년 넘게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다. ㄴ씨는 고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도 기간제 교사였던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50이 다 되도록 기간제 교사로 생계를 이어오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교사 자격증이 있는 분들이기에 사립이었으면 정교사가 되고도 남았을 분들인데, 공립학교에서 좀 더 뜻을 펼쳐보고자 남은 분들도 많다”며 “체육선생님이 연말 회식 때 앞장서서 교감의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씁쓸했다. 정교사와 완전히 같은 지위를 줘야 할지 확신은 없으나 최소한 그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앞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미 7월 20일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기간제 교사들은 전환 대상에서 빠졌다. 9월 초 정부의 가이드라인 확정에서도 기간제 교사는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빠질 공산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교총과 전교조에서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교조의 기간제 교사 전환 입장에 대해서는 전교조 내부에서도 실망스럽다는 의견이 있다. 전교조는 “상시·지속적으로 근무하는 기간제 교원에 대한 고용안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도 기간제 교사의 일괄적인 정규직 전환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교총과 전교조도 정규직 전환에 반대 전교조 조합원인 공립초등 교사 서지애씨도 전교조의 결정에 비판적이다. 서씨는 기간제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동일한 노동을 했으면 동일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라며 기간제 교사들에게도 정교사와 동등한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용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교사는 전문성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교사 자격증을 가진 것으로 교사로서의 전문성은 어느 정도 증명이 된 것이다. 이후 교육당국에서 연수를 통해 교사들의 전문성을 늘려줘야 하는데, 기간제 교사들은 오히려 연수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일선 학교에서 임신·출산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리가 늘 있기 때문에 대체인력으로 들어온 기간제 교사라 할지라도 상시적인 일을 맡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기관에서도 출산휴가 대체인력을 정규직으로 뽑겠다고 한다. 외국 교직사회에서도 정교사가 대체교사를 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청에서 대체인력의 고용 안정성만 보장한다면 정교사도 충분히 대체교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비교사라고 해서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모두 반대하는 것만은 아니다. 9월 1일 오전, 사범대학 학생을 포함한 대학생 단체는 기간제 교사와 비정규직 강사의 정규직화를 지지하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학생들은 “차별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비정규직 양산 제도는 없애고 기존에 일해 왔던 교사들은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 요구가 예비교사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하지 않는다며 교사 수 전체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OECD 평균 수준만 맞추려 해도 교사를 6만명 이상 증원해야 하며, OECD 상위 수준으로 맞추려면 10만명을 증원해야 한다”며 “정부는 우리 안의 ‘의자놀이’를 종용하지 말고 교육재정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려대 사범대 학생 연은정씨도 “교사 수 자체를 늘려서 기간제도 예비교사도 모두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정부가 기간제와 예비교사 사이의 내부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ㄴ교사는 기간제의 정규직화가 이뤄지더라도 한동안은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봤다. 그는 “기간제 교사가 일을 잘한다고 동료 교사에게 말하면 ‘임고도 안본 사람이 무슨 선생이냐’는 핀잔이 돌아올 때도 있다. 정규직화도 중요하지만, 임고 통과 여부만 가지고 교사를 재단하는 교사 사회의 분위기도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ㄱ교사는 예비교사들에게 교사 선발의 공정성을 따지려면 기간제 교사보다 오히려 사립학교의 교사 선발제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냈다. 사립학교에서 임의적으로 교사를 뽑을 게 아니라, 각 시·도교육청에서 선발한 범위 내에서 교사를 뽑도록 한 개정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의 법안은 당장 사립학교협의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협의회는 이 법안이 “개별 학교법인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위헌적인 것으로 강력히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의원도 사립학교법 개정을 강하게 추진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같은 당의 유은혜 의원도 지난해 말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 법안을 냈다가 강한 반발을 받고 법안을 철회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사립학교법을 담당하던 보좌관이 오래전 퇴직했는데, 아직 보좌진을 꾸리는 과정이라서 담당자를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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