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김장겸 물러가라"..어수선하게 끝난 방송의 날

54회 방송의 날, 정관계 방송계 귀빈들 참석 회피
KBS·MBC 사장 퇴진 구호..빛바랜 방송계 잔치
  • 등록 2017-09-01 오후 9:41:58

    수정 2017-09-03 오전 8:42:02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후배들과 여기자들은 벽에 붙어 있어. 나오지마.” “밀릴 수 있어. 그러다 다쳐”

“폭력은 쓰지 맙시다. 폭력은” “선배, 너무 빡쎄게 하지 마세요.”

1일 열린 방송의 날 축하연 시작 30분전인 오후 6시. 63빌딩 4층 라벤더홀 앞은 비장한 분위기가 흘렀다. 고대영 KBS 사장이 있는 귀빈실 문 앞은 카메라를 든 남자 기자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 뒤로는 여자 기자들과 일반 KBS 노조원들이 서 있었다. 손에는 고대영 KBS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KBS 노조원들이 고대영 KBS 사장의 길을 막고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고 사장은 방송의 날 축하연에 앞서 열린 방송 진흥 포상 수여식에 참석했다. 예정대로였다면 오후 6시께 2층 행사장에 나서 내빈객을 맞아야 했다. 고 사장은 한국방송협회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이날 행사의 주빈 격이다. 이 때문에 63빌딩 밖을 빠져 나갈 수 없었다.

고 사장이 있는 귀빈실에서 4층 계단까지 KBS 노조원들은 길게 줄을 섰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까지 좁은 복도 안은 북새통이었다. KBS 노조원들은 모두 고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행사 시작 10분전인 오후 6시 20분. KBS 노조위원장이 출입문 안에 있는 고 사장을 불렀다. 나와서 대화를 하자고 했다. KBS 직원이자 후배들인데 뭐가 두렵냐라는 말이었다. 고 사장과 그의 수행원들은 몇 번 문을 열고 나오려는 시도를 했다. 노조원들의 위세에 막혀 곧 문을 닫았다.

행사 시작 시간 오후 6시 30분. 경찰들이 들어갔다. 고 사장이 지나갈 길을 터주기 위해서다. KBS 임원진들도 드나들었다.

그 시각 2층 행사장은 부페 식당이 됐다. 지난해에는 모든 행사가 끝나고 식사를 했다. 올해는 기다림에 지친 내빈들이 음식 위에 싸인 비닐 랩을 벗기고 먹기 시작했다. 당초 식사 시간은 축하연 행사 말미에 예정돼 있었다.

행사가 예정 시간이 지나도 시작하지 않자 참석자들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사진=김유성 기자)
오후 6시40분. 고 사장이 나왔다. 그가 복도에 발을 내미는 순간 63빌딩 4층 라벤더홀은 아비규환이 됐다. ENG 카메라는 고 사장의 얼굴을 비추며 앞을 막았다. 노조원들은 일제히 “고대영 퇴진”을 외쳤다.

좀처럼 길이 열리지 않자 경찰과 행사 진행요원들이 완력을 썼다. 노조원 한 명이 휘청이다 쓰러지고 테이블 위의 컴퓨터 모니터가 엎어졌다. 고 사장의 옷과 머리 매무세는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 그랜드볼룸에 고 사장은 겨우 들어갔다. 국회의원들 앞에서도 당당했던 그였지만,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KBS 노조원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았다.

행사장 안은 어수선했다. 지난해에는 유력 정치인들이 왔었고, 그들을 맞으러 장관이 왔다. 방송계 원로들은 이들과 인사하기 위해 주변을 맴돌았었다.

올해는 달랐다. 장관도 없었고 정치인도 없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야당은 물론 여당도 보이지 않았다. 인사를 할 사람이 없게 된 이들은 테이블 위 음식으로 향했다. 테이블 주변은 음식을 먹으려는 줄로 싸였다.

6시 45분. 행사가 시작했다. 이날 행사의 호스트인 고대영 사장의 인사말 차례였다. 그 순간 그랜드볼룸 안은 “고대영은 물러나라”라는 구호로 울려퍼졌다. 급히 행사 요원들이 달려갔다. 방송계 몇몇 원로들은 인상을 쓰며 “그만해라”라고 호통쳤다.

고 사장의 인사말이 시작됐지만 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행사장을 앞쪽에 있는 이들 정도만 그의 말에 귀 귀울였다. 나머지는 63빌딩 부페에서 제공하는 다채로운 음식의 맛을 즐기고 있었다.

지난해 행사 때 귀빈으로 가득 찼던 메인 테이블은 반도 차지 못했다. 김장겸 MBC 사장은 검찰의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이 들린 직후 행사장 안에서 사라졌다. 누군가가 “우리 사장이 도망쳤나보다”라고 말했다.

정우택 원내 대표를 비롯한 정치인도 보이지 않았다. 장관급 인사중에는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유일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행사 불참을 선언하면서 예견됐던 ‘참사’였다.

민망해진 진행요원이 조규조 EBS 부사장 등을 메인 테이블 중앙부로 불렀다. 가운데가 채워지니 양 옆이 비었다.

2017년 방송의 날 행사와 2016년 방송의 날 행사 비교. 올해 행사에는 예년과 비교해 정관계 인사들의 불참이 크게 눈에 띄었다.


고 사장 옆에는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자리했다. 고 사장은 민망함을 감추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위원장은 그런 고 사장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행사가 다 끝나고 퇴장할 때 악수 한 번 나눴을 뿐이다.

고대영 KBS 사장과 이효성 방통위원장
다음 순서는 이 위원장의 차례였다. 그는 자신의 축사 대신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독했다. 공영방송의 정상화가 국민들의 염원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행사는 끝났다. 의례적으로 있었던 각 당 대표들과 장관들의 축사, 지상파 방송사 사장들 간 기념 촬영도 없었다.

마지막 순서는 건배사였다. 고 사장은 “제가 호스트”라며 “그냥 대한민국 방송을 위하여로 건배를 제의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건배사가 이날의 행사 끝이었다. 더 이상의 건배사나 제의는 없었다.

제54회 방송의 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나운서 원로들은 ‘하하호호’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테이블 주변에서는 웃음꽃이 피었다. 한 방송계 원로가 말했다. “야, 나도 KBS 사장 해봐야겠다.” 그러자 다른 이가 “그거 블라인드로 하니 해볼만하지”라며 웃었다.

방송협회 직원들은 씁쓸한 표정이었다. 방송의 날 행사는 방송대상과 함께 협회 내 가장 큰 연례행사다. 방송협회 관계자는 “다음주 월요일 있을 방송대상 시상식도 연기됐다”며 “이유는 말 안해도 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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