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19대 대선평가보고서…“MB아바타 이미지 강화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일 20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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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론에서 내용 없는 중도를 표방해 오히려 ‘MB아바타’ 이미지를 강화했다.”

국민의당이 1일 공개한 ‘19대 대선평가 보고서’에 담긴 안철수 대표에 대한 평가 내용이다. 당 대선평가위원회가 작성한 원문 그대로 공개된 보고서에는 후보로 나섰던 안 대표와 국민의당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이 많이 담겼다.

외부전문가가 주축이 된 당 대선평가위원회는 TV토론을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평가위는 “첫 TV토론 이후 지지율의 절반 이상이 이탈했다”며 “후보 본인이 정치적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물론 정치적 레토릭(수사) 자체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캠프 차원에서는 “캠프와 후보 모두 대선을 직접 치를 역량이 없었다”며 “안철수로 시작해서 안철수로 끝나버린 선거”라고 평가했다. 특히 홍보 조직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평가위는 “선거대책위원회에 맡기기보다 외주를 줘서 해결하려 했고, 선거경험이 없음에도 ‘광고 천재’라 불리는 이제석 씨 개인에게 전권을 줬다”고 비판했다.

또 당내 후보 경선 때부터 외부 컨설팅업체에 주요 결정을 맡겨온 점도 패착으로 꼽았다. 심지어 “이 컨설팅업체와 안 후보와 관계가 단순 거래관계인지, 이너서클이라 불릴 만큼 핵심 조직인지 알 수 없다”고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당내 비판의견이 많았지만 안 후보가 이런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도 썼다.

안 대표의 사조직화 된 당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평가위는 캠프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안 대표의 측근들이) 밀실에서 결정한 것을 공조직이 수행했다”고 지적했다. 그 배경으로는 초선·비례의원인 ‘안철수계’와 다선 의원인 ‘호남 중진’으로 당이 양분돼 공식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전략적 측면에서는 당시 문재인 후보와 양강 구도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촛불’ 이슈를 선점하지 못해 적폐청산에 반대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을 패인으로 꼽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문 후보 측은 검찰개혁, 적폐청산 등을 정책적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국민의당 캠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평가위는 “안 후보는 촛불에 대해 원칙적인 보수의 이미지조차 주지 못하고 ‘MB 아바타’, ‘박지원 상왕론’ 같은 지엽적이고 반(反)촛불 이미지에 갇혔다”며 “문 후보가 촛불의 과실을 독점하도록 둔 것은 안 후보가 아무런 정책적 대안이나 메시지를 만들어서 던지지 못한 것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박지원 상왕론’에 대해서는 “경쟁 후보자들이 이 같은 프레임을 가동할 때조차 안 후보의 리더십은 전혀 발휘되지 않았다”고 했다.

공약준비가 부실했다는 자성도 이어졌다. 특히 30대 유권자들을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만든 유치원 공약을 이번 대선의 ‘최악의 공약’으로 꼽았다. 평가위는 “유권자의 반대가 극심한 사안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고, 논란에 대한 대처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입장 번복을 두고 “후보가 입장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당과 상의를 충분히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밖에 문준용 씨 취업특혜 의혹 제보조작 사건을 언급하며 “보고체계가 허술할 뿐 아니라, 이런 제보를 선거에 활용하는 전략적 판단에도 문제가 있었다. 전략적으로 필요한 네거티브 소재 발굴에 실패한 것도 문제”라고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평가위는 이번 5·9대선에 대해 “2012년 안풍(안철수 바람)을 재현하려 했지만, 본선 국면에서는 ‘안풍 2.0’을 일으켜 투표로 이어가는데 실패했다”고 했다.

하지만 보고서 작성과정에서 대선의 주요 책임자인 안 대표와 박지원 전 대표에 대한 인터뷰는 이뤄지지 않아 외부인인 이제석 씨에게 화살을 돌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대표는 평가위에서 두 차례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 이날 안 대표는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보고서에 지적된 고칠 점들은 저와 당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해서 당을 제대로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최고야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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