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데스노트'에 오른 장관후보자 이름 세 글자

최봉진 입력 2017. 9. 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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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계속되는 문재인 정부 인사잡음.. 문제는 인물 아닌 다른 곳에 있을지도

[오마이뉴스최봉진 기자]

▲ 해명 기자회견 연 박성진 후보자 창조론 논란에 이어 뉴라이트 사관 문제 등 '이념논란'이 불거진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8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해명 기자회견에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 남소연
지난달 17일을 전후해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에 대한 야당의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각 당의 입장에 따라 내용은 조금씩 엇갈렸지만 야 4당이 공통적으로 비판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인사'다.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국민의당은 물론이고 정의당 역시 인사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 시민들의 부정적 평가가 가장 높았던 분야 역시 공직 인사였다. 이에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인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국이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자질 논란으로 다시 시끄럽다. 박성진 후보자는 현재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전력,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토대로 한 '대한민국 건국' 세미나 개최, 이승만 독재의 불가피성을 주장한 연구보고서 작성 등 갖가지 문제가 불거지며 야당으로부터 사퇴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주목할 것은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인 정의당조차 박성진 후보자 인선을 강하게 비판하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이번 인선의 부적절함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박성진 후보자의 창조과학회 활동, 동성애에 대한 입장, 1948년 건국 주장 등 논란을 빚고 있는 사안을 일일히 나열하며, 이번 인사를 가리켜 "박근혜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인사"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정미 대표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비롯해 앞선 몇 차례의 장관 임명 과정에서 잘못된 인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거급되는 인사 잡음에 청와대 인사라인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정의당 손에 달렸다?

지난달 11일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사퇴하자 세간에서는 정의당의 '데스노트'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의당이 반대하는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낙마한 사실을 빗댄 표현이었다. 실제 정의당이 반대한 공직 인사들이 줄줄이 불명예 사퇴를 했다. 박기영 전 본부장을 포함해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이 정의당의 '데스노트'에 이름이 오른 뒤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반면 야 3당이 반대한 인사라 할지라도 정의당이 찬성할 경우에는 결국 임명됐다. 한국당이 국회 보이콧까지 선언해 가며 결사 저지시키려 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다수의 고위공직자들이 정의당의 '데스노트'를 피한 덕분에 내각에 입성했다. 사정이 이러니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정의당 손에 달렸다는 우스개 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정의당의 '데스노트'가 이번에는 박성진 후보자를 가리키고 있다. 박성진 후보자의 인식이 중소벤처기업부를 총괄하기에 부적절한 데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과도 배치된다며 지명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의 지적처럼 박성진 후보자의 인식과 철학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조와 상충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1948년 건국과 이승만·박정희 독재 미화는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역사관의 핵심이다. 박성진 후보자는 이를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해명했지만 만약 그랬다면 더더욱 문제다. 올바른 역사 인식은 국가 주요 정책을 수행해야 할 고위공직자의 기본적인 자질 문제다.

박 후보자가 지난해 6월 28일 영남일보에 기고한 칼럼 '통합의 교육과 미래세대'의 내용 역시 문재인 정부의 노동·복지·인권 정책과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박성진 후보자는 해당 칼럼에서 "과도한 노동 운동, 책임을 망각한 과도한 민주주의, 노력 이상의 과도한 복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자성보다는 외부를 먼저 비판하는 윤리적으로 타락한 정치사회적 운동, 금기어들로 인한 학문의 자유 침해 등의 여파로 지금 우리나라는 성장의 동력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저성장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적었다.

저성장의 원인이 과도한 노동운동과 복지, 민주주의에 있다고 진단한 박성진 후보자의 인식은 참담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GDP 대비 복지지출 비율도 최하위 수준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역시 보수정부 9년을 거치며 악화 일로에 있다.

과도한 건 노동운동이 아니라 노동시간이다. 복지체계와 민주적 토양은 과도하기는커녕 열악하고 빈약하기만 하다. 최저임금, 노인빈곤율, 청년실업 등 각종 사회경제 지표 역시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박성진 후보자의 인식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와 철학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청와대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

 창조론 논란에 이어 뉴라이트 사관 문제 등 '이념논란'이 불거진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8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청와대는 또다시 불거진 인사 논란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명 철회와 관련된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여론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일단 청문회까지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박성진 후보자의 자질 문제와는 별개로 청와대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정작 따로 있다. 인사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는 본질적인 이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정미 대표가 박성진 후보자의 지명철회를 촉구하며 청와대, 그 중에서도 인사를 책임져야 할 인사라인을 지목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국정운영의 성패와 직결되는 인사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는 과거의 사례만 보더라도 명확해진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인사문제는 역대 정부의 국정 동력과 개혁 의지를 가로막는 주된 요인 중의 하나였다. 특히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이같은 경향은 더욱 도드라진다. 인사 논란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트릴 뿐만 아니라 공직기강과 도덕적 해이를 유발시키고 궁극적으로 국정난맥을 야기시키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시민의 기대는 상상 그 이상이다. 인사 잡음과 외교·안보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 지지율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시민의 기대와 열망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기대가 큰면 실망도 크다'라는 말도 있다. 지금처럼 인사잡음이 계속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도덕성과 원칙이 크게 흔들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민의 기대와 믿음이 실망과 불신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인사 검증에 소홀한 점은 없었는지, 인사라인의 책임은 없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높은 지지율에 고무돼 시민들의 기대와 바람을 잊은 것은 아닌지, 행여 자신들도 모르는 내부의 문제는 없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고소영 강부자' 내각과 '인사 참사'의 뼈아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안경환·조대엽·박기영·박성진. 문제는 이들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어쩌면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권력의 위기는 내부에서 온다"(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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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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