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색계' 탕웨이가 입은 명품 창시자 데이비드 탕 별세
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인기 칼럼 ‘고민 상담가(Agony Uncle)’의 칼럼니스트로 홍콩과 영국을 오가며 활약한 국제 사교계의 명사이기도 했다.
탕은 1954년 홍콩의 명문 자선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상속자는 아니었다. 65년 영국으로 건너간 탕은 셰익스피어 희곡과 브람스의 교향곡을 접한 뒤 예술광으로 일생을 살았다. 그는 킹스 칼리지에서 논리 철학을 전공한 뒤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83~84년에는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영국 문학과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조부의 로펌에서 잠시 일을 도운 뒤 곧 런던과 홍콩을 오가며 개인 변호사로 활약했다. 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존 메이저 영국 총리와 리펑(李鵬) 중국 총리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만남을 통해 홍콩의 랜드마크인 중국은행 빌딩에 차이나 클럽을 설립한 홍콩 기업가 쉬잔탕(徐展堂)과 인연을 맺었다.
탕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자문을 맡았고, 런던 바흐 소사이어티의 회장도 역임했다. 95년 프랑스 문화훈장을, 2008년 영국 왕실이 주는 기사 작위(2등급 훈장)를 받았다.
수 년 전 간암 판정을 받은 뒤로 홍콩 암 펀드를 조성해 질병 퇴치에 힘썼고, 유럽 암 연구치료 기구(EORTC)의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 6월 30일 그의 마지막 FT 칼럼에서 탕은 “우리는 절대 (홍콩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곳에서 제국의 흔적과 중국의 장엄한 영향력을 경험한 놀라운 이야기의 일부”라며 홍콩에 대한 애정을 밝히기도 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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