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3조 쓰는데..사전검증 생략한 정부

이태규 기자 입력 2017. 8. 3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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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부터 근로자 300만명에게 최저임금 인상분 월 13만원씩을 지원하기로 한 가운데 국가재정법에 규정된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조건은 금융위기 등 충격이 와서 긴급하게 예산을 편성해야 할 때를 위해 둔 조항"이라며 "하지만 정부가 스스로 대량실업이라는 원인을 제공해놓고 이를 빌미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하는 것은 면제 요건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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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정법상 500억 이상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받아야 하는데
최저임금 인상금 보전사업은 생략
기재부 "대량실업 우려 면제가능"
野 "해명 못하면 문제제기 할 것"

[서울경제] 정부가 내년부터 근로자 300만명에게 최저임금 인상분 월 13만원씩을 지원하기로 한 가운데 국가재정법에 규정된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대량실업의 우려가 있으면 생략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고 해명했지만 “외부로부터의 경제 충격이 오는 등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활용하라는 조항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야당도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서 문재인 정부 첫 예산안의 국회 통과에 험로가 예상된다.

3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 29일 발표한 ‘2018년 예산안’에서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명목으로 2조9,700억원을 배정했다. 내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16.4%나 급등하며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커질 것으로 보이자 나랏돈으로 지원에 나선 것이다. 세부적으로 30인 미만 고용 사업주에게 근로자 1명당 매월 13만원씩을 준다. 예상 지원 대상은 약 300만명에 달한다. 안정자금 지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대로 오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이 급등할 경우 계속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될 경우 내년 2조9,700억원을 시작으로 2019년 2조6,100억원, 2020년 1조800억원 등 총 6조6,600억원을 지원해야 한다. 2018년 인상분을 2019년·2020년에도 누적 지원하고 현 정부 임기 말인 2022년까지 지급될 가능성도 높은데 이 경우 나랏돈 투입액은 최대 28조원까지 불어난다.

국가재정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는 정책을 시작하는 것이지만 국가재정법에 의무화된 예비타당성 조사는 생략했다. 국가재정법 38조를 보면 재정 투입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은 예산을 편성하기 전에 미리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목돈이 들어가는 사업이 꼭 필요한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38조 10항을 보면 긴급한 경제 상황 등에 대응하기 위해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된 사업은 예비타당성을 면제할 수 있다”며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대량실업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참작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책은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하지만 비판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조건은 금융위기 등 충격이 와서 긴급하게 예산을 편성해야 할 때를 위해 둔 조항”이라며 “하지만 정부가 스스로 대량실업이라는 원인을 제공해놓고 이를 빌미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하는 것은 면제 요건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정부 스스로 최저임금으로 대량실업이 나타날 수 있다고 인정한 꼴”이라며 “대량실업이 우려되는 정책이었으면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야당도 반발하고 나섰다. 김광림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기재부가 최저임금 보전, 아동수당 등에 대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사안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럼 국무회의에서 단순히 제도 도입뿐만 아니라 예비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겠다고 콕 집어서 의결한 것이 있는지 요청해놓은 상태”라며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으면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추가경정예산도 야당이 “대량실업이라는 추경 편성 법적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해 국회 제출 45일 만에야 통과됐다. 2008년 이후 최장기간 국회에 계류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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