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속 그 남자' 15년 미제사건 범인, 어떻게 잡았나

부산CBS 박중석 기자 2017. 8. 3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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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살해하고 바다에 유기한 40대..부산경찰, 장기미제 수사 첫 성과
2002년 양씨가 은행 CCTV에 찍힌 모습.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퇴근하던 20대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뒤 바닷물에 유기한 40대 남성이 경찰의 끈질긴 수사 끝에 15년 만에 덜미를 잡혔다. 부산경찰청 장기미제사건 중 범인이 검거된 첫 사례다.

◇2002년 자루에 담겨 바다에 유기된 20대 女, 수사는 미궁으로…

지난 2002년 5월 21일 오후 10시쯤 부산 사상구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A(당시21·여)씨가 사라졌다.

같은 날 밤 11시 30분쯤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서면이다"는 말을 남긴 A씨는 이후 연락이 끊겼다.

사방으로 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A씨 가족은 5월 30일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하지만, 실종 신고를 한 다음 날 낮 12시 25분쯤 A씨는 부산 강서구의 한 해변에서 마대 자루에 담겨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몸에는 흉기에 찔린 상처가 수십 군데 발견됐다.

A씨 시신 발견 당시.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경찰은 A씨가 살해당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 조사결과 A씨가 사라진 다음날 A씨 명의의 예금 통장에서 296만 원이 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뒤인 6월 12일 오후 2시 10분쯤 A씨의 적금통장에서 5백만 원이 추가로 인출됐다.

경찰이 은행 CCTV를 통해 은행 창구에서 예금을 인출한 한 남성을 확인했다. 창구에서 A씨 명의 적금을 해약한 여성 2명의 모습도 CCTV에 담겨 있었다.

특히, 남성은 은행 현금인출기에서 비밀번호를 두세 차례 잘못 기입하며 시행착오를 겪다가 비밀번호가 확인되자 창구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남성이 모자를 쓰고 있었고 당시 CCTV화질이 극도로 불량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는 실패했다.

경찰은 범인이 평소 A씨가 통장을 가방에 넣고 다닌 점, 범인이 A씨 예·적금 통장 비밀번호를 사용한 점 등으로 미뤄 A씨 주변인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지만 뚜렷한 용의자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수사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 이 사건은 부산경찰의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로 수사 재개, 시민제보와 끈질긴 수사로 CCTV속 용의자 특정

지난 2015년 살인죄 등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태완이법)이 시행됨에 따라 부산경찰청에도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이 신설됐다.

미제사건전담팀은 부산청에 남아 있는 26건의 장기미제사건 리스트 중 A씨 살해 사건을 가장 맨 위에 올렸다.

사건 당시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CCTV 속 용의자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CCTV에 나와 있는 시간을 토대로 당시 현금 인출 전후 2시간 사이 해당 지역 통신 기지국을 거쳐간 휴대전화 통화기록 1만 5천여 건을 분석했다.

특히, 남성이 비밀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은행 문을 들락거린 점에서 착안해 중복 통화 번호를 집중적으로 살펴봤으나, 자료가 워낙 방대해 용의자를 좁히지는 못했다.

사건의 물꼬는 2016년 2월 경찰이 부산청 SNS를 통해 CCTV화면을 공개하는 등 용의자에 대한 공개 수배에 나서면서 조금씩 터지기 시작했다.

공개수배에 나선 두 달 뒤 CCTV에 나온 여성을 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경찰은 같은 해 4월 5일 A씨의 통장 적금을 해약한 두 명의 여성 중 한 명인 이모(41, 당시 26·여)씨를 붙잡았다.

경찰에 잡힌 이씨는 당시 같은 주점에서 일하던 오모(38, 당시 23·여)씨를 따라 은행에 갔을 뿐 범행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이에 경찰은 곧장 오씨의 행적을 추적했다. 경찰은 앞서 분석한 은행 주변 기지국 통화 내역을 다시 살펴봤고, 그 결과 오씨의 당시 휴대전화번호가 확인됐다.

경찰은 오씨가 적금 해약을 전후해 집중적으로 통화한 양모(46, 당시 31)씨를 주 용의 선상에 올리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지난 21일 양씨를 검거했다.

양씨는 체포된 이후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A씨 통장을 처음 인출할 당시 CCTV에 나온 남성의 모습과 현재 양씨의 모습을 법영상분석연구소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비교 의뢰한 결과 유사인물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받았다.

경찰은 한발 더 나아가 용의자가 은행 창구에서 작성한 전표와 양씨의 필적을 대조하고 거짓말 탐지기 등의 수사를 벌여 양씨의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더했다.

또, 사건 당시 양씨의 집에 머물던 B씨로부터 "양씨의 요청에 따라 주변으로 물건을 옮기러 갔다"며 "마대자루에 둥글고 물컹한 느낌의 물체를 담아 싣고 어딘가로 가서 내려줬으나 무서워서 물어 보지 못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범행 다음 해인 2003년 양씨가 부녀자를 상대로 흉기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구속되면서 양씨의 차량을 중고로 매입한 C씨는 "차량 수리 중 뒷좌석의 가죽시트를 벗기다가 혈흔으로 보이는 검붉은 얼룩을 봤다"고 말했다.

부산경찰청 형사과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은 이 같은 증거와 진술 등을 토대로 살인 혐의를 적용해 지난 23일 양씨를 구속했다.

오씨와 이씨가 A씨 적금을 해약하는 모습.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경찰은 A씨의 적금을 해약한 오씨와 이씨가 A씨 살해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양씨는 범행 이후 A씨의 적금을 해약하기 위한 대리인을 찾았고, 주점에서 만난 오씨를 섭외해 적금을 빼냈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오씨는 적금 해약 당시 은행 직원이 통장 명의자와 해약자의 얼굴이 다른 점을 의심하자 이씨와 함께 직원을 윽박질러 적금을 해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당시 적금을 해약한 오씨와 이씨가 사기와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가 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부산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 이무송 팀장은 "시민 제보와 첨단 수사기법을 활용해 15년 전 사건의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며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팀원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수사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부산CBS 박중석 기자] jspar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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