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 칼럼] '이니' 문재인과 '쥐피테르' 마크롱

배명복 입력 2017. 8. 29. 02:29 수정 2017. 8. 29.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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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직무보다는 태도에 기인
뜻밖의 권위주의적 태도 탓에
마크롱 지지율은 급전직하
결승점에서 누가 웃을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과 에마뉘엘 마크롱. 두 사람은 집권 동기다. 2017년 5월 나란히 한국과 프랑스의 대통령이 됐다. 당선은 마크롱이 이틀 앞섰지만 취임은 문재인이 나흘 빨랐다. 임기도 5년(재선되면 마크롱은 10년)으로 같다. 지난달 초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두 사람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내 따로 만났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프랑스의 정치혁명과 한국의 촛불혁명을 언급하고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피플파워의 힘으로) 프랑스·한국의 대통령이 됐으니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각별한 동질감을 나타냈다.

집권 4개월 차를 맞은 두 사람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문 대통령은 70~80%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마크롱의 지지율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취임 100일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마크롱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도는 36%까지 떨어졌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가장 인기가 없었던 전임자, 프랑수아 올랑드의 취임 100일 때 지지율보다도 10%포인트가 낮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게 확실한 도널드 트럼프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두 집권 동기 중 문재인의 초반 선전이 돋보인다.

문 대통령의 별명은 ‘이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붙인 애칭이다. 지지자들은 “우리 이니, 우리 이니…” 하며 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표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마크롱의 별명은 ‘슈슈(chouchou)’였다.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학생이 슈슈다. 영어로는 ‘티처스 펫(teacher’s pet)’이다. 스물네 살 연상의 선생님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했으니 더 나은 별명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취임 후 ‘쥐피테르(Jupiter)’로 별명이 바뀌었다. 로마신화 속 주피터는 모든 신과 인간 위에 군림하는 신 중의 신, 최고의 신이다. 의외로 권위적인 마크롱의 행태에 놀라 프랑스 언론이 붙인 별명이다.

프랑스 대통령제에는 군주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통령 관저는 엘리제 ‘궁(宮)’이다. 대통령의 공식 의전행사에는 왕을 호위하던 근위 기병대가 등장한다. 상징 조작을 통해 군주의 권위와 위엄을 대통령에게 투사하려는 의도다. 샤를 드골이 전범을 보인 프랑스 대통령의 권위는 21세기 들어 땅에 떨어졌다. ‘블링블링’을 좋아한 니콜라 사르코지는 대통령직의 권위를 천박한 사치품 수준으로 전락시켰다. 뒤를 이은 올랑드는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채 스쿠터를 타고 애인 집을 찾아가는 사진 한 장으로 대통령직의 위엄을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마크롱은 외국 정상과의 회담이 끝난 뒤 하는 의례적인 회견 말고는 여태 한 번도 프랑스 언론과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프랑스대혁명 기념일에 맞춰 공영과 민영 TV 채널 메인 앵커와 한 시간 동안 생방송 인터뷰를 하는 관행도 깨 버렸다. 마크롱은 기자회견보다 연설을 통해 자기 생각을 일방적으로 밝히는 걸 선호한다. 상·하원 국회의원들을 베르사유궁에 불러 놓고 한 시간 반 동안 일장 연설을 하기도 했다. 국방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합참의장의 반발은 “내가 당신의 보스다”는 한마디로 찍어 눌렀다. 합참의장은 바로 사임했다.

실추된 대통령의 권위와 위엄은 대통령다운 언행과 책임감으로 되살아나는 것이지 유치한 권위주의로 복원되는 게 아니다. 마크롱은 올해 말이 돼야 비로소 불혹(不惑)의 40대에 들어선다. 미숙함을 연상시키는 자기 나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마크롱을 ‘쥐피테르’로 만드는 요인일지 모른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당 부분 탈(脫)권위적 행보 덕분이다. 그는 국민의 눈높이로 자신을 낮추고, 국민과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보여 왔다. 국민의 아픔을 달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였다. 정책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탈권위적 태도에는 누구도 시비를 걸기 어렵다. ‘이니’ 문재인과 ‘쥐피테르’ 마크롱의 차이다.

아무리 소통을 잘하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도 일에서 성과가 없으면 별 의미가 없다. 민생과 안보에서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초심을 잃어서도 안 된다. 야당의 견제와 언론의 비판에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오만과 독선은 금물이다. 의석 구도에서 문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불리한 조건이지만 마크롱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42.195㎞ 마라톤으로 치면 이제 겨우 2.5㎞를 갔을 뿐이다.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페이스 조절을 잘해야 한다. 결승점에서 누가 웃을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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