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은퇴용, 노모 부양 .. 다주택 공직자들의 궁색한 변명

김기환 2017. 8. 2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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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그럴듯한 이유 내세웠지만
온라인엔 "내로남불" 비난 줄이어
집 한 채 못 구해서 바둥거리는
서민들 마음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
김기환경제부 기자
지난 25일 관보에 게재한 청와대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목록을 취재하면서 눈에 띈 건 주택이었다. 땅과 예금·주식·자동차 같은 재산보다 집에 눈길이 갔던 것은 이번 정부가 ‘8·2 부동산 대책’을 통해 다주택자를 겨냥한 고강도 규제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을 포함해 재산 공개 대상인 청와대 고위 공직자 15명 중 절반(7명)이 본인·배우자 명의로 2주택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로 확인됐다.

언론에서 이런 내용을 보도하자 청와대는 27일 해명자료를 냈다. 조목조목 쓴 해명을 뜯어봤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서울 송파구 아파트에 사는데 경기 가평군 주택을 ‘은퇴용 ’으로 마련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서울 서초구 아파트에 사는데 부산 해운대 아파트는 ‘안 팔려서’ 들고 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경기도 과천 아파트에 사는데 옆 동 아파트를 ‘노모 부양’ 목적에서 샀다. 조현옥 인사수석은 서울 강서구 아파트에 살다 교통 편의상 중구 아파트 전세로 옮겼고 배우자 소유 전북 익산 단독주택은 ‘은퇴용’이다.

요약하자면 전부 투기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해명대로라면 대상자 대부분이 집을 팔거나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수 없는, 그래서 ‘꼭 필요한’ 주택을 샀다는 해명이다. 물론 해명엔 ‘다주택자’가 아닌 사람은 빠졌다. 경기 용인에 단독주택 한 채를 갖고 있으면서 배우자가 상가 점포 6채를 가진 서훈 국가정보원장, 서울 한남동 연립주택을 갖고 있으면서 배우자·장남·차남 등 가족 3명 명의로 각각 2억원 내외 상가 3채를 신고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이다.
중앙일보 2017년 8월 26일자 5면.
상세한 해명자료가 역설적으로 8·2 대책에서 배려하지 못한 다주택자를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입길에 오른 고위공직자같이 ‘사연’있는 다주택자가 곳곳에 많아서다. 인터넷 부동산 까페에는 “부모님 모시려고, 지방 출장 문제로, 은퇴용으로 아파트 한 채 더 샀다가 다주택자로 몰린 사람이 수두룩한데 청와대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가”란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앞서 정부는 8·2 대책을 통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국회 통과 시) 내년 4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서울 전역과 과천, 부산 해운대, 세종 등 조정대상지역에서 주택을 양도할 경우 2주택자(조합원 입주권 포함)는 양도세를 기본세율(6~40%)에 10%포인트 가산한 50%, 3주택자는 20%포인트 합친 60%까지 부과하는 내용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내년 4월이란 ‘데드라인’까지 정해놓았다. 그는 대책 발표 후 청와대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에서 “다주택자는 꼭 필요해 산 것이 아니면 내년 4월 이전에 파는 게 좋겠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세제·금융 혜택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도 다주택자다.

투기 수요는 걸러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가 해명한대로 은퇴용으로, 노부모를 모시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집이 여러 채 있다고 죄 지은 건 아니지 않은가.

다주택자를 예외없이 코너로 밀어붙여놓고 “우리는 다르다”고 하는 건 서민 정서와 안 맞는다. 청와대가 해명자료를 내면서 집 한 채 못 구해 바둥거리는 서민이나 불가피한 이유로 다주택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수요를 고려했는지 의문이다.

청와대 다주택자들이 내년 4월까지 집을 팔거나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것인지, 혹은 세금을 감수하면서 들고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김기환 경제부 기자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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