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전력수급 따져 천천히" .. 탈원전 찬반 7:2서 4:5로 역전
━ 2017 이슈 배틀 ⑥ 탈원전, 맞는 길인가
━ 1 Round “시점 문제일 뿐 방향 맞다” 9명 중 7명 탈원전 정책 지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이다. 취임 이후 문 대통령은 빠르게 ‘탈(脫)원전’ 시나리오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원전을 새로 짓지 않고, 있던 원전은 ‘수명 연장’ 없이 폐쇄하겠다는 구상이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은 그 신호탄이다. 현재 건설의 계속·중단 여부를 가릴 공론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 결과에 따라 탈원전 정책은 탄력을 받을 수도,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찬반 논쟁이 치열하다. 일부는 ‘성급한 탈원전 정책이 전력수급에 악영향을 미치고, 전기요금 인상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대편에선 ‘일본 후쿠시마 사고에서 보듯 원전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없애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를 편다.
8월 11일 ‘2017 이슈 배틀’ 여섯 번째 토론이 열렸다. 이날 주제인 ‘탈원전’을 놓고 사전투표를 했다. 정부는 ‘신한울 원전’ 1, 2호기의 설계 수명이 다하는 2079년을 구체적인 탈원전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판정단 7명이 ‘찬성’을 택했다. 토론 초반엔 ‘시점의 문제일 뿐 방향이 틀렸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란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다.
━ 2 Round “원전 안전성 우려 너무 과장” 찬성 2명 반대로 돌아서
정도영 동신대 에너지융합대 교수가 “과도한 공포를 조장해선 안 된다”며 반박에 나섰다. “세상에 100% 안전한 기술이란 없다. 대형 교통사고가 났다고 차를 없애진 않는다. 불안하다면 안전 기준을 높이면 될 일인데 현재 에너지 수급에 미치는 절대적 역할(발전량 기준 약 30%)을 덮어두고 선악의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자 윤 교수는 “원전의 경제성도 제대로 짚자”고 말했다. “발전단가가 싸다지만 이는 폐로 비용이나 사용후 처리 비용 등을 적게 산정했기 때문이다. 금융 비용이 싸고, 정부가 보증하기 때문에 위험에 비해 보험료도 적게 든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계산을 소위 원전 전문가란 사람들이 모여서 하고, 그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사람과 제도의 문제라면 그것대로 해결하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최적안이라는 건 가장 좋은 게 아니라, 가장 덜 나쁜 것이다. 에너지 믹스는 각 에너지원의 발전비용과 부작용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적절한 수준을 고르는 일이다. 이런 계산에 따라 원전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 비중은 줄게 돼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탈원전이 되는 거다. 향후에 쓸 수 있는 카드 하나가 사라지는 건데 너무 성급하다.”
윤 교수는 “재생에너지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맞받았다. “태양광만 해도 발전단가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석유는 50년대 말, 천연가스는 70년대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재생에너지도 지금은 비중이 1.2% 정도지만 정책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충분히 주류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결국 비용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밀도가 낮아 같은 전력을 생산할 때 더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경제성도 문제지만 국토의 효율적인 활용도 고려해봐야 한다.”
전문가가 자리를 떴다. 두 명의 판정단이 생각을 바꿨다. 탈원전에 찬성했던 판정단⑥과 판정단⑦은 “안전에 대한 우려를 너무 과장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했다”며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에 대해 판정단①은 “탈원전은 미래세대에게 더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지금 선택해야 할 중요한 시대적 책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주마다 에너지 정책이 다르다. 캘리포니아주가 특히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는 건 자연환경 때문만이 아니다. 주 정부가 강력하게 지원하고, 산업도 육성하기 때문이다. 당장 원전이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변하지 않으면 서서히 끓는 물에 들어 있는 개구리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당장 하자는 것도 아니고 60년이 더 남은 이야기인데 준비가 덜 됐으니 천천히 가자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은 결단해야 할 때다.” <판정단②>
반대 측 판정단⑦은 “안전이 그렇게 문제라면 2079년이 아니라 지금 당장 멈추는 게 맞고, 환경이 문제라면 원전보다 석탄화력발전의 축소를 먼저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로 산업용 전기까지 조달하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현재 한국은 산업용 전기 비중이 50% 이상이다. 원전 비중을 줄이면 공급 불안정이 불가피하다. 생산 일정, 수출 일정이 생명과도 같은 기업 입장에서 오락가락하는 전력 공급은 최악의 조건이다. 현재 제조업, 수출 중심의 우리 산업 구조를 생각하면 안정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판정단⑥>
이에 대해 판정단③은 “30~40년간 지속된 원전 육성 정책 때문에 관련 업체나 전문가는 그야말로 독주를 해왔다”며 “일반 국민의 시선에선 이런 집단 이기주의가 군납비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확실한 선언 없이는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에너지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를 대기업 중심, 산업 중심으로 끌어왔다. 성장 시대의 유산이다. 이런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4차 산업혁명도 눈앞이다. 전력도 이제 소규모 자체 생산, 자체 거래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수요도 억제할 수 있다. 수요를 잡을 수만 있다면 재생에너지로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판정단④>
논의 가운데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찬반을 떠나 다수의 판정단이 공감했다.
“지금처럼 싼값에 마음껏 쓰는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 캘리포니아엔 태양광 설비를 갖춘 집이 많은 건 기본적으로는 비싼 전기요금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저비용 에너지 정책을 고집하면 재생에너지 시장이 클 수 없다. 그러니 업체도 기술개발에 투자하지 못하고, 정부 지원에 목매다 도산하는 일이 반복된다.”<판정단①>
최종 투표가 시작됐다. 찬성을 택했던 판정단⑤가 입장을 바꾸면서 찬반 비율이 역전됐다. 그의 공감을 이끌어낸 건 판정단⑧의 이 한마디였다. “현 정부 내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선언했다. 어떤 측면에서 다음 정부에선 올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에너지는 한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원전 비중을 줄여가겠다고 방향만 잡아주면 되는 거다. 60년 뒤를 이야기하는 거라면 더욱 천천히 가는 게 맞다.”
토론이 끝난 뒤 주제와 별도로 현재 공론조사가 진행 중인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에 관한 찬반 의견도 물었다. 8명은 ‘재개’ 1명은 ‘중단’을 택했다.
■첨예한 이슈 ‘삼세판 토론’ … 합의점 찾기 실험 「‘이슈 배틀’ 어떻게 진행하나
‘2017 이슈 배틀’은 배틀 형식의 토론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드러내 가되 합의도 모색하는 실험이다. 이를 위해 소속 대학과 전공·연령대가 다양한 10명의 교수로 판정단을 구성한다. 판정단에선 해당 이슈 전공자를 일부러 배제한다. 전문가는 각자의 소신이 확고해 토론을 해도 입장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건전한 상식과 지적 능력을 갖춘 비전공자가 찬반 양측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내부 토론을 거쳐 입장을 정리해 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토론은 3라운드로 이뤄진다. 1라운드는 평소 판정단의 생각을 드러낸다. 2라운드에선 찬반 양측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판정단이 다시 투표한다. 3라운드에선 판정단이 스스로 참여해 토론한 뒤 최종 입장을 정한다. 라운드마다 입장을 바꾼 판정단은 왜 그랬는지 이유를 밝힌다. 솔직한 입장 표명을 유도하기 위해 판정 결과는 익명으로 처리한다. ‘2017 이슈 배틀’은 중앙일보와 한국사회과학협의회·안민정책포럼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이 후원하는 SSK 네트워킹지원사업단이 주관한다.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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