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할 수 있는 닭은 얼마나 행복한가

입력 2017. 8. 27. 12:06 수정 2017. 8. 2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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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자유방목 닭농장 정진후 대표 인터뷰
관리할 건 많고, 산란율 적어서 계란값 비싸지지만
아침에 밖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닭은 행복하다

[한겨레]

정진후씨는 2012년 경남 하동의 양계농장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물복지인증을 받았다. 이후 경남 합천에서도 자유방목형 양계농장을 열었다. 정진후씨 제공

사업실패로 다시 내려온 1998년 경상남도 하동, 시작은 겨우 닭 30마리였다. 친척이 시장에서 병아리 50마리를 사 왔는데 너무 많으니 집 마당이 넓은 정씨에게 30마리를 부탁하면서다. 달걀을 먹어본 지인이 맛있다며 달걀 20~30개를 가져가 이웃에게 나눠줬다. 다들 맛있다고 하니까 200마리 정도 키워 달걀을 보내주면 아파트 단지에서 나눠 먹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1000마리가 됐고, 2만 마리가 됐다.

정진후(55)씨가 운영하는 ‘청솔다정원’은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1호 양계농장이다. 정씨는 경상남도 하동군과 합천군 두 곳에서 자유방목형 양계농장을 하고 있다. 하동 농장은 2012년 동물복지인증을 받았고 합천은 서류통과가 완료된 상태다. 하동(약 5만㎡), 합천(36만㎡) 두 농장에서 총 2만6000여마리 닭을 키우고 있다. 지난 24일 정진후 대표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일반 양계 농장이 아닌 동물복지 농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이익만 보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 전에 우리가 먹거리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의지가 중요한 것 같다. 동물복지농장은 산란율은 낮고 관리할 건 많다. 일반적으로 자유방목 농가 인증을 받으려면 부지도 많이 필요하고 노동력은 2배는 더 나간다. 현재 직원은 하동과 합천 총 9명이다. 일반 케이지 양계 농장에서 2만 마리를 키운다면 2명이면 충분하다. 케이지 농장은 버튼을 누르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사료 공급, 알 수집 등이 자동화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목형 계사의 닭들은 운동을 많이 해 산란율이 10%정도 낮다. 1만 마리를 키울 때 10%면 하루 달걀 1000개가 달린 문제다. 양계하는 사람 입장에선 굉장히 큰 거다.”

-동물복지 양계농장의 일과는 어떤가?

“여름이면 오전 7시30분에 사료를 공급한다. 9시30분, 산란이 끝난 닭들을 방사장으로 내보낸다. 닭이 산란장에서 자리를 비운 사이 손으로 일일이 알을 거둔다. 난상의 왕겨가 지저분해졌거나 양이 줄었으면 새로운 왕겨를 깐다. 방사장에 나가 있는 동안에도 닭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방사장 사료통에도 사료를 보충한다. 오후 2시가 되면 다시 한 번 알을 거둔다. 오후 5시가 되면 저녁 사료를 준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 6시30분부터 닭들이 입실하기 시작한다. 밤 9시가 되면 축사 문도 닫아줘야 한다.”

닭들은 낮에 바깥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온다.  청솔원의 경남 합천 농가. 정진후씨 제공

-동물복지 인증받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사인증 농장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복지농장 인증을 받는 데 크게 문제는 없었다. 난상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했다. 홰 길이 기준에 놀랐다. 기준안에 보면 수당 15㎝를 제공하라고 돼 있다. 즉, 3000마리를 키우려면 120여평 축사가 필요한데 거기에 450m 횃대가 필요하다. 실내가 굉장히 복잡해진다. 준비 과정이 길어서 그렇지 검역원 쪽에서 2~3번 사전 점검을 나와 미비한 부분을 개선하고 인증을 받는데 총 2개월 정도 걸렸다.”

-동물복지 인증제도에도 문제점이 있나?

“많은 분들이 동물복지 산란계라 하면 모두 자유방목을 한다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평사와 자유방목 두 가지다. 인증을 받은 92곳의 농가 중 자유방목을 하는 곳은 16곳 밖에 되지 않는다. 매장에 나갈 땐 동물복지 마크에 평사 달걀은 ‘방사유정란’이라 별도로 표기되고 자유방목 달걀은 ‘자유방목’이라고 표기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차이를 잘 모른다. 그냥 강조한 줄 안다. 평사와 자유방목은 차원이 다르다. 평사는 2700마리를 키우면 100평 계사 하나만 있으면 가능하다. 반면 자유방목 인증을 받으려면 100평 축사와 900평 방사장이 필요하다. 소비자 구분도 안 되는데 굳이 자유방목 인증을 받을 이유가 없다며 평사 인증으로 돌아가는 곳도 많다. 표기도 제대로 안 되고 자유방목 계란은 단가가 세다 보니 유통업체에도 외면받기에 십상이다.”

-평사와 자유방목 많이 다른가?

“평사도 토욕을 하지만 흙 대신 왕겨를 쓴다. 거기에 닭들이 몸을 비빈다. 왕겨는 흙만큼의 진드기, 이 퇴치 효과는 없다. 또 지붕 투명창만으로는 자연 일조 받기도 어렵다. 우리 농장도 조류인플루엔자 에이아이(AI), 장마철, 혹한 때 방사를 중지하는 경우가 있는 데 없던 이가 생긴다. 조류인플루엔자 당시 방사를 자제해달라는 공문 받았지만, 축사에 두니 이가 생겨 일주일 동안 방사를 했다. 그랬더니 진드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번 살충제 달걀 파동의 원인도 방사가 안 되는 환경 때문이라 생각하는 건가?

“스스로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자연 햇빛과 일광욕과 토욕인데 그걸 못 하는 환경에서 살충제 없이 닭 이를 없애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밀폐된 케이지에 살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기에 이나 진드기까지 생겨버리면 닭들이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산란율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진드기를 안 잡으면 스트레스로 살모넬라균 증식이 폭발해 키푸스라는 질병에 걸린다. 디디티, 피프로닐 등 이런 농약을 쓰게 된 건 내성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농약을 치고 나면 15일 뒤에 또 생긴다더라.”

경남 하동군 금남면 덕천리에 위치한 자연방사 양계장 청솔다정원의 닭들이 방사장에서 자유로이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렇다면 케이지 농가가 동물복지농가로 전환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케이지 계사를 설치하려면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십 수억 원이 들었을 거다. 10만 마리 닭을 케이지에 키울 때 계사, 물 라인, 사료 라인, 계란 벨트 등 설치하면 약 20억원 가까이 드는 거로 알고 있다. 이걸 고물 처리하고 동물복지 농장으로 바꾸기엔 경제적 부담이 큰 상황이다. 자유방목 농장을 운영하려면 운영비, 인건비, 물류비 등이 많이 든다. 인건비가 3~4배 이상 차이 나고 케이지에 있는 닭들보다 활동량이 많아 사료비도 많이 든다. 정부에서 케이지를 포기하고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겠다는 농장에 한해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땅이 부족해 전부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는 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동물복지농장이 적어도 20~30% 정도는 차지했으면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나?

“케이지 달걀은 가격 변동이 심하다. 케이지 달걀은 폭락과 폭등이 빈번하지만 동물복지 달걀은 고정가다. 필요해서 먹는 달걀보다 낭비적으로 소모되는 달걀이 많다고 생각한다. 100원짜리 계란 2~3개 사 먹을 때 좋은 달걀 하나를 의미 있게 사 먹는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 수요가 많다 보니 싼 가격의 음식을 찾게 되고, 복지보단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악순환인 것 같다.”

임세연 교육연수생 seyounyim@gmail.com,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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