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끌려만 다닌다" 북-미 기싸움에 정부 안보 전략 실종됐다

박수찬 2017. 8. 2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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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한반도 정세를 우리가 주도한다는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시동을 걸기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 2차 시험발사 직후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으로 고강도 압박을 감행하자 북한은 화성-12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괌 포위사격 카드를 꺼내들면서 정면으로 맞섰다. 이 같은 위기 국면은 북한이 화성-12의 실제 발사를 유보한 채 정세를 관망하고 미국도 외교적 해결책을 강조하면서 조금씩 잦아들고 있지만, 북한과 미국의 기싸움에서 우리 정부의 체계적인 대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의 평화와 안정에 먹구름이 밀려오면 정부는 위기를 극복하고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위기관리에 필요한 국가의 전략적 전술적 역량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과 북한이 아시아 태평양을 무대로 치열한 체스 게임을 벌이며 보이지 않는 싸움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채 ‘코리아 패싱’ 우려만 키우고 있다.
북한이 5월 14일 신형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5월 1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최선의 방어는 공격’ VS ‘절제된 대응이 최선’

북한 탄도미사일 비행거리가 일본을 넘어서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북한과 미국은 동아시아 전역을 무대로 치열한 수싸움을 벌여왔다. 미국은 북한을 한반도 북부 지역에 고립시키려 했고, 북한은 그에 맞서 미국의 봉쇄를 돌파하기 위해 공세적인 전략을 구사했다.

북한은 이번에도 공세적 전략으로 미국의 압박에 맞섰다. 북한 탄도미사일 전력을 관할하는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을 내세워 괌 포위사격 계획을 발표하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현지지도 형식으로 전략군사령부를 사상 최초로 공개했다. 국내적으로는 군중대회를 조직해 미국을 규탄하고 군 재입대 탄원서를 대거 받는 등 민심 결속 조치도 병행했다.

이같은 대응 덕분에 북한은 화성-12를 실제 발사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얻었다는 평가다. 일단 중국과 러시아,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외교적 해결책을 강조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B-1B 폭격기와 핵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로 보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던 미국을 일시적이나마 주춤하게 한 것과 괌에서 전략자산이 한반도로 출동할 때 화성-12의 위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 점은 부가적 소득이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참관 등을 위해 방한한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이 22일 오후 오산 미 공군기지 PAC-3 요격미사일 포대 앞에서 내외신 합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션 게이니 미 육군 94 방공미사일사령관, 새뮤얼 그리브스 미사일방어청장, 존 하이튼 전략사령관, 해리스 사령관,빈센트 브룩스 한미 연합사령관, 김병주 한미 연합사 부사령관. 평택=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의 ‘창’에 맞서 미국은 ‘방패’를 튼튼히 하면서 절제된 자세를 취해 리스크 감소를 꾀했다. 21일부터 한국 방어를 위한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예정대로 실시하면서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해군 대장), 존 하이튼 미국 전략사령관(공군 대장), 새뮤얼 그리브스 미국 미사일방어청(MDA) 청장(공군 중장) 등 한반도 안보에 중요한 결정권을 지닌 미군 핵심 수뇌부를 한국으로 보내 22일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미군 수뇌부는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군사적 옵션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지 않으면 군사적으로 응징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낸 셈이다.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전략자산 전개 없이 핵심 수뇌부를 한꺼번에 한국으로 보내는 방식을 통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한반도 방위공약을 재확인하는 성과도 거뒀다.
미국 알래스카 소재 미육군 미사일방어부대 요원들이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 발사 통제와 영공감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 미사일방어청

북한과 미국의 대응전략에 차이점이 발생하는 것은 양측의 체제가 다른 점에 기인한다. 북한은 김정은이 모든 정책결정권을 갖는 참주(僭主) 국가다. 국가의 통치체제 역시 김정은이 설계부터 안정화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이를 ‘극장국가’라고 정의했다. 극장국가에서는 독재자를 제외한 모두가 연극의 구성요소다. 인민들은 엑스트라, 간부들은 배우이며 국가 체계는 무대장치다. 이 모든 것을 지휘하는 총감독은 김정은 한 사람이다. 정책집행이 효율적으로 진행되지만 김정은의 판단 오류를 수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단점이다. 반면 미국은 시스템에 의해 국가정책이 집행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 불가능하고 워싱턴 주류 정치와 거리를 두는 사람이지만, 미 행정부와 군부를 움직이는 엘리트들은 민주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에 따라 안보전략을 구사한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견실하고 안정성이 높다.

◆임기 내 성과를 내려는 욕심을 버려야

반면 우리 정부는 어떤가. 문재인정부는 지난 5월 집권 이후 대화를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피력했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남‧북 관계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은 북한이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 제의를 외면하면서 시작부터 차질을 빚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다가 지난달 28일 화성-14 2차 시험발사 직후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임시배치를 전격 결정하는 등 ‘땜질 처방’에 그쳤다.

이같은 상황은 기존에 구상한 전략이 효력이 없을 경우 이를 대신할 계획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것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에서 국제정치학과 국방 현안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란 사람들이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전문가들은 북한을 우리보다 한 수 아래의 상대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지나치게 강하고 지적한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은 우리가 손을 내밀면 잡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미 해군 이지스순양함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이같은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24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북한 관영매체인 노동신문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달 사이 언급된 최대 횟수가 61건에 달한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대통령 당선 당일 언급된 이후 실명이 거론되지 않고 있다. 두 차례에 걸친 화성-14 ICBM 발사 직후 북한 관영매체의 보도에도 한국을 언급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우리측의 대화 제안을 철저히 무시하면서 미국과의 수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미국과 결전을 벌여야 하는 북한 입장에서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는 거추장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누구도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문재인 대통령)는 언급도 공허하다. “한국 밖의 군사력으로 북한을 타격하는 데 한국의 승인은 필요없다”(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는 반론이 바로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화성-12를 실제 괌으로 발사하면 우리 정부가 미국의 군사행동을 저지할 수 있을까. 미국이 유엔 헌장 등 국제법에서도 인정하는 자위권을 내세우면 우리 정부는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우리가 반대를 해도 (북한의 위협이 현실화하면) 자위권 차원에서 미국이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우리 군의 반격에 미국 정부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라는 것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괌이 북한 미사일 공격을 받을 경우 대북 군사행동에 나서야 할 상황을 간과한 채 “전쟁은 안된다”고 하면 한미 동맹의 신뢰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4일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으로부터 '괌 포위사격'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사건 직후 북한의 위협이 고도화되면 주변국들의 대응도 함께 강해지면서 한반도 정세가 위태로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왔다. 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등의 대북 대응 전략은 시간이 지날수록 섬세해지는 반면 우리 정부는 미군 전략자산 전개나 대북 경고성명 등 단기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그나마도 이같은 조치가 반복되면서 효력이 떨어져 북한 위협 해소에도 실패했다. 위기가 반복되면 대응전략도 개선되어야 하지만 정권의 변화에 관계없이 즉흥적이고 단기적인 땜질 처방은 달라진 게 없다.

대화도 무력시위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은 방법은 대량응징보복(KMPR)처럼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설 군사적 수단을 충실히 갖추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동력 확보에 집중하는 등의 중장기전략뿐이다. 북핵의 완전한 해결까지 최대 수십년이 걸릴 각오를 해야한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가 북한 위협 대응과 한반도 정세 주도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미국과 북한을 모두 만족시킬 카드가 없는 정부로서는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게 우리가 접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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