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배당부터 핵심 증인 출석, 증거채택 등 '세기의 재판'다운 기록도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이 25일 모두 마무리된다. 이 부회장이 구속기소된 이후 총 53차례 진행된 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삼성 변호인단은 치열하게 대립하며 '세기의 재판'다운 기록들을 남겼다.
당초 검찰 특별수사본부 1기는 지난해 이 부회장을 비롯한 기업 총수들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국정농단'으로 인한 피해자라고 인식했지만, 특검팀은 지난 1월 이 부회장을 피의자로 소환 조사하며 '패러다임'을 바꿨다. 이후 특검은 두차례 시도 끝에 이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를 이끌어 냈고, 법조계와 재계는 '충격'을 받았다.
이 부회장이 기소된 이후 재판부 배당도 쉽지 않았다. 이 부회장 사건은 당초 형사21부(조의연 부장판사)가 맡기로 했지만 이 부회장의 1차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던 조 부장판사가 재배당을 요청하면서 형사합의33부(이영훈 부장판사)로 옮겨갔다. 그러나 이 부장판사의 장인이 1975년 정수장학회 이사를 맡았고 최씨 일가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에 종착했다.
지난달 12일에는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출석을 거부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법정에 나와 '럭비공'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정씨는 당시 "엄마가 '삼성에서 말을 바꾸라고 한다'고 했는데 (삼성이 말 교체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거나 "삼성이 사준 말을 내 말이라 생각했다"고 말해 삼성 측을 당황하게 했다.
지난달에는 '삼성 저격수'로 꼽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현직 장관급 인사에다 삼성의 경영문제를 수차례 비판한 전문가인만큼 관심이 집중됐다. 박영수 특검도 직접 법정에 등판하며 힘을 보탰다. 김 위원장은 법정에서 "삼성 미래전략실은 구태의연한 커튼 뒤의 조직"이라거나 "지금대로라면 이 부회장은 존경받는 최고경영자가 될 수 없다"고 증언했다.
반면 이 부회장 재판에 총 3차례 증인으로 채택된 박 전 대통령은 1심 재판이 끝나는 날까지 단 한 번도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뇌물 수수자 의혹을 받는 박 전 대통령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구인장까지 발부했지만 이마저도 박 전 대통령은 거부했다. 특검은 결국 검찰의 박 전 대통령 진술조서로 증인신문을 대신했다.
특검 측에도 위기는 있었다. 재판부는 그동안 특검팀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할 핵심증거로 내세웠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을 직접증거가 아닌 간접증거로 채택했다. 일반적으로 간접(정황)증거는 직접증거에 비해 증거효력이 떨어진다고 인식된다. 이에 특검팀은 "피고인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간접증거로도 뇌물수수, 공여 등의 공소사실은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지난 7일 결심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이는 재판에 넘겨진 역대 재벌총수 중 두 번째로 높은 구형량이다. 박 특검은 '삼성 뇌물' 사건을 전형적인 정경유착에 따른 경제범죄라고 단정하며 "국민 힘으로 법치주의를 세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반면 이 부회장은 최종변론에서 감정에 북받친 목소리로 결백을 주장하며 "복잡한 법적 논리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특히 특검의 공소사실도 인정할 수 없지만 이게 전부 제 탓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결심 공판에 앞서 진행된 피고인신문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면서도 '정유라에 대한 지원을 대가로 부정한 청탁을 한 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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