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액츄얼리' 정수영, 사유리, 김지양 "여성의 삶에도 옵션이 있다"

아이즈 ize 글 박희아 | 사진 이진혁(KoiWorks) 2017. 8. 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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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박희아 | 사진 이진혁(KoiWorks)

[여성의 몸에 대해 여성이 말한다. 당연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터부시되어왔다. 그러나 온스타일 ‘바디 액츄얼리’에서는 정수영, 사유리, 김지양 등 세 명의 여성 MC들이 여성의 몸과 그들이 겪는 내밀한 고민을 말과 행동으로 털어놓는다. 세 여성은 자신의 몸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바디 액츄얼리’ 촬영 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세 사람의 조합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정수영
: PD님을 만나자마자 “내가 이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사람 같다.”고 말씀드렸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실험을 해도 야하다는 생각이 잘 안 드는 사람이다. (웃음)

사유리: 그 이미지가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전달하는 입장에서 조금만 잘못하면 실험 자체가 자극적이기만 하고 내용이 없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 MC들만의 확실한 이미지와 철학이 있으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나설 수 있는 거다.

김지양: 그런데 사실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스튜디오 촬영 위주로 흘러가면서 의사 선생님이 오시는 정도인 줄로만 알았다. (웃음) 그런데 한여름 내내 야외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촬영이 대부분이었다.

첫 촬영이 생리컵 실험이었다. 그전에는 거리에 나가서 생리대를 나눠 주거나, 생식기를 그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런 접근에 거부감은 없었나.
정수영
: 애초에 PD님과 CP님이 이미 이 프로그램에 관해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해주셔서 개인적으로 부담은 없었다. 그걸 체험으로 보여줘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매우 상세히, 조심스럽게 설명해주셨다. 그런데 정작 방송이 나가고 나서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냐”는 피드백이 와서 얼떨떨했다. 스스로는 굉장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기획의도가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든다. 가감 없이 우리가 체험한 걸 얘기하되, 최대한 그 경험담을 디테일하게 설명하려 노력할 뿐이다.

사유리: 사실 ‘나는 클리토리스만 그리고 그만둬야 되나?’ 이런 생각도 했다. 억울할 정도였다. (웃음) 방송에서 심의에 걸리지 않을지 걱정도 됐다. 그런데 실제 반응은 거의 좋은 쪽으로 온다. 다른 촬영 때문에 미팅에 가면 모두가 이 프로그램 이야기부터 꺼낸다. “궁금했던 걸 우리 대신에 체험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줘서 기쁘다.

김지양: 개인적으로는 SNS 밀착형 인간이라 실시간 반응을 시간 단위로 체크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5배 정도 반응이 좋은 것 같다. 나는 SNS를 보면서 여성주의 이슈가 화제 되는 모습을 꾸준히 봤더니, 오히려 우리 프로그램이 남들도 다 아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보편적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보지’와 같이 그들이 TV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이 나온다. 그런 면에서 유독 좋은 코멘트들이 많이 쏟아진다. 굉장히 힘든데도 불구하고 기분 좋게 촬영할 수 있는 이유다.

정수영: 나는 SNS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친구들은 대부분 40대 아줌마들이다. 그렇다 보니 이미 출산이나 육아를 경험한 분들 입장에서는 다 아는 정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만 생리컵 사용기나 질염 검사 받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분들은 있었다. 자극적인 단어 위주로 나간 기사만 보면 걱정할 만한 내용이기도 했고.

한국 사회가 여성의 몸에 대해 적나라하게 말하는 걸 용인하는 분위기는 아니니까.
정수영
: 그래서 나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극과 극이다. 내가 원래 소위 ‘여성스러운’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인지 이 프로그램을 보고 “네가 언젠가는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며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그 성격인 걸 다들 알게 됐으니 연기할 때 피해 보는 거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리를 중학교 3학년 때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브래지어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몸이 늦게 변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여성스럽다’는 프레임에 갇혀 산 기억이 별로 없고, 부끄러움도 없는 성격으로 컸다. 그게 지금 이 프로그램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게 만든 힘 아닐까 싶다.

사유리: 지난번에 클리토리스 그리기를 했는데, 그걸 기사로 접한 친구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사실 방송을 전체적으로 본 사람이라면 오해를 안 한다. 하지만 그 부분을 부각시킨 기사만 보면 ‘대체 얘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을 수도 있다. 전체 맥락을 보면 이해가 되는 내용인데.

제작진이 모두 여성인 건 아니라고 들었다. 여성의 몸에 대해 다루는데 남성 스태프들과 일할 때 혹시 불편한 점은 없나.
정수영
: 첫 촬영이 하필 생리컵 촬영이었고, 내가 카메라 감독님께 웃으면서 “죄송하다. 정말 하드한 촬영이 되시겠다.”고 했다.(웃음)

김지양: 소재나 소품 중에 다소 낯설고 민감한 물건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산부인과에서 쓰는 질경이나 생리대, 생리컵 같은 것들 말이다. 솔직히 그런 소품들을 접했을 때 남자들이 짓궂게 농담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제작진분들은 그런 식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없어서 굉장히 편하다. 얼마 전에는 내 속옷이 소품으로 등장했는데, 다들 그냥 ‘속옷이 속옷이지.’라는 시선으로 대하는 게 좋았다.

사유리: 오히려 남자 스태프분들이 우리가 몰랐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경우도 있다. PD님도 그런 부분을 고려하셨다고 하더라.

한국 최초로 산부인과에서 V앱 라이브 중계를 시도하기도 했다. MC 입장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김지양
: 일부러 준비한 건 없다. 사실 나는 평소에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많은 사람들은 거기서 산부인과라는 공간을 처음 눈으로 본 거다.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여자들을 만날 수도 없었을 거고.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응원했던 것 아닐까 싶다.

MC들은 여성이 본인의 성기를 관찰하지 않는 것에 특히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 같다.
정수영
: 후배들이 종종 상담을 요청해오는데,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기초적인 상식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도 모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가려울 때 자기 성기를 들여다보게 되지 않냐 물었더니 안 본다는 거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걸 보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이런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성기를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잡혀버린 거다. 하지만 여성의 생식기도 건강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김지양: 나는 성을 소재로 강연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스스로는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요즘 부쩍 느끼는 건, 우리나라 여성들 중에 자기 입으로 ‘보지’라는 말을 발음해본 사람이 정말 생각보다 적다는 거다.

사유리: 일본에서는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는 편이다. 남녀가 함께 있을 때 성기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들 한다. 그런데 내 나이 또래 한국 예능인들과 만나면, “야, 여자가 그런 얘기를 왜 해. 싸 보여.”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일본에서는 그냥 농담이라고 생각할 뿐인데. 그나마 지양 씨 또래 예능인들은 좀 열려 있다는 인상을 받는데, 내 나이 또래 예능인들은 아직까지 여자가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것 같다.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고, 한국에는 세대 차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진짜 뭐라고 부르나.

김지양: ‘거기’라던가…. 실제로 정말 부를 말이 없다.

사유리는 난자 보관을 했다고도 밝혔다. 밝힌 이유가 있나.
사유리
: 방송이 나간 뒤로, 내 또래 여성들이 난자 보관에 관해서 많이 물어본다. 한국에도 나이는 많은데 아이를 아직 안 낳은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정보를 알 곳이 없으니 나에게 물어보는 거다. 실제로 난자 보관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수술하기 전까지 매일매일 스스로 자기 배에 주사를 놔야 한다. 그리고 호르몬 주사라는 건, 암에 걸릴 가능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생리전증후군으로 찾아오는 우울감도 5배씩 높여서 굉장히 힘들다. 하지만 이런 걸 알려주는 곳이 없다.

김지양: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거고, 시부모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다. 그동안 한국 여성들 대부분은 자기 삶에 옵션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나도 20대 때는 으레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인식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체에 선택권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여성에게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던 사람으로서, 그 사실을 깨치고 난 이후에 얻은 기쁨이 무척 컸다. 반대로 내가 훗날에 아이를 갖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리 그 나이에 맞는 방법을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내가 나중에 어떤 옵션을 취할 수 있는지도 지금부터 알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만약 난자 보관 같은 정보를 모르면 어떻게 되겠나. 울며 겨자 먹기로 지금 아이를 낳든가, 아니면 아예 아이 낳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거지.

정수영: 나는 아이가 먼저 생겨서 결혼했다. 개인적으로는 출산 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이 많이 달라져서 스스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을 정도다. 아이를 보면서 내 어린 시절을 반추하고, 스스로가 갖고 있던 트라우마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 출산 자체는 자기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 자체가 여성에게 주어진 하나의 옵션이다.

임신 및 출산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 어렵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
사유리
: 몇 년 전에 키가 180cm 이하인 남자에게 ‘루저’라고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런 기준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 남자들은 방송에서 여자는 30세 넘으면 끝이라는 식으로 말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5세가 넘으면 ‘크리스마스 케이크’라고 비하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그 여성의 발언에 대해 그렇게까지 큰 비난을 하는 건, 좀 당황스러웠다.

정수영: 배우인 지인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자리에 있던 여성 다섯 명 중에 넷이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걸. 그런데 막상 문제 제기를 하려니 이걸 입증하기가 너무 어렵고, 성추행의 기준이 굉장히 아리송한 거다. 과거에 미성년자 성추행 탄원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 과정을 겪어보니, 피해자들이 자기가 피해자인 걸 쉽게 밝히려고 하지 않는 거다. 아이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이미지로 남겨져 있는 상황인데, 몇 날 며칠 몇 시에 어디를 어떻게 만졌는지 묻는다. 이처럼 조사 과정이 너무 강압적이니 여자 아이 입장에서는 피해를 입은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겠더라. 우리나라에 성범죄와 관련한 제도적 시스템이 아직까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게 너무 답답했다.

김지양: 나는 여성혐오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너같이 뚱뚱하고 못생긴 애가 남편이 있을 리 없다.’고 말했는데, 심지어 내 사례를 허언증이라고 치부했다. 이 일로 남편과 나는 6개월 내내 고통받았다. 남편의 경우에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그러면 ‘바디 액츄얼리’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사유리
: 자기 몸에 대해, 자기 생각에 대해 당당한 여성들이 많이 생길 것 같다.

정수영: 나는 과거에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남성이 “스쳤는데 이 여자가 오해한 것”이라며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몰아갔다. 이때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저 사람들이 모자라고 멍청하다고 생각하려 노력했다. 이런 여성들이 많다. 그러니 당당하게 여성의 몸과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거다.

김지양: 한 시청자분의 소감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 딸과 우리 프로그램을 봤는데, 방송에서 질 일기 쓰는 장면을 보고는 아이가 방에 들어갔다 나온 다음에 “엄마, 난 건강한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아이에게 섹스에 관한 기초적인 이야기도 해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 변화가 생겨나는 거라 생각한다.

특별히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나.
김지양
: 지금 나온 주제들 중에서 더 깊게 파고들 만한 내용이 정말 많다. 개인적으로는 심화 편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정수영: 애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해 정보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모유 수유에 대해서 제대로 된 설명이 거의 없더라. 솔직히 너무 아파서 뇌가 딸려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는데, “내가 얘를 안 먹이면 애가 굶어죽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텼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고통이 수반된다는 이야기를 안 해줬다. 출산 후의 실질적인 어려움이나 모유 수유에 관해 미리 알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걸 얘기해보고 싶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각자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김지양
: 싫은 건 싫은 거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옵션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아이를 낳는 것이든 섹스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해보면 좋겠다. 남들 다 하니까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알기 위해 좀 더 노력하면 좋겠다.

사유리: 여성 한 명, 한 명씩 변화를 느끼면 사회 분위기도 차차 바뀌어갈 거다.

정수영: 당연한 걸 당당하게. 이거 우리 프로그램 모토인데, 정말 딱 나의 마음이다. 그런데 사실 정작 나는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살아서, 남들한테 뭐라고 이야기하기가 어렵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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