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원짜리 급식까지 재벌이 진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

2017. 8. 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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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대기업·5개 중견기업, 5조 급식시장 80% 차지
남은 1조 시장서 4500개 중소기업들 '생존 아우성'
1월부터 공공기관 구내식당 재벌진입 허용 '부채질'
중소기업 "대·중견기업 급식시장 참여 금지" 호소

[한겨레]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수자원공사는 7월부터 구내식당 위탁운영업체를 중소기업인 한울푸드에서 삼성그룹 계열사인 웰스토리로 바꿨다. 판교벤처밸리와 한국전력기술의 구내식당 운영도 중소기업에서 각각 웰스토리와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신세계푸드로 넘어갔다. 박근혜 정부가 규제 완화 차원에서 공공기관 급식시장에 재벌 참여를 허용한 게 빌미가 됐다. 애초 이명박 정부는 2012년 3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공공기관 구내식당 입찰에 재벌이 참여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대형 공공기관(1천명 이상) 급식에 재벌 참여를 허용하기로 하고, 올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 구매식당의 대기업 점유율이 2013년 41%에서 2016년 8.5%로 급감했다가, 올 들어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민간 급식 시장은 이미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독무대가 된 지 오래다. 한울푸드의 임원은 “공공기관 구내식당이 그나마 중소기업에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했는데,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단체급식 시장은 5조원대로 추정된다. 웰스토리(삼성), 현대그린푸드(현대백화점), 아워홈, 신세계푸드, 한화호텔앤리조트, 씨제이프레시웨이 등 6개 재벌 계열사들이 70%를 차지한다. 동원홈푸드(동원)·이씨엠디(풀무원)를 중심으로 한 중견기업의 몫도 10% 정도다. 결국 남은 1조원 시장을 놓고 4500여개 중소기업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다 보니, 이들의 연평균 매출은 2억원 남짓에 불과하다. 중소 단체급식 업체인 엘에스씨의 정기옥 대표(서울상의 부회장)는 “1인당 단가가 4천원에 불과한 단체급식 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재벌 대기업이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기반으로 시장을 잠식해 처음부터 공정경쟁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업계 1위인 웰스토리는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구내식당을 독점해, 지난해 매출 대비 내부거래 비중이 36.4%에 달한다. 신세계푸드와 씨제이프레시웨이도 내부거래 비중이 30%에 육박한다. 업계 2위인 현대그린푸드는 내부거래 비중은 17% 수준이지만, 현대차·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그룹의 일감까지 포함하면 실제로는 훨씬 높다. 아워홈도 엘지·지에스·엘에스 등 친족그룹의 구내식당을 싹쓸이하고 있다.

일부 재벌 대기업은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데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교묘히 회피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총수 일가 지분이 30.5%였으나, 2013년 29.9%로 낮췄다.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이어야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하는 공정거래법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웰스토리 역시 삼성물산의 사업부였으나, 2013년 자회사로 분리되며 규제를 피했다. 아워홈은 총수 일가 지분이 100%지만, 친족그룹과의 거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지 않는다. 경제개혁연대 이총희 연구위원은 “총수 일가 지분이 20%를 넘으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적용하고, 총수 일가 지분율 산정할 때 계열사를 통한 간접소유지분도 포함해야 한다”며 “재벌 계열분리 요건도 강화해 친족그룹의 일감 몰아주기까지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문재인 정부가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단체급식 시장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세종 전 중소기업연구원장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대부분 식자재 제작-유통-급식 서비스 사업을 수직계열화해서 운영한다”며 “동반성장 차원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식자재 제작과 유통사업에 주력하고, 단체급식은 중소기업에 양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중소업체인 델리푸드의 신무현 대표도 “정부가 재벌의 급식 시장 참여를 막아도 중견기업들이 그 빈자리를 차지한다”며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참여를 함께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재벌 대기업 간부는 “대형 구내식당의 경우 먹거리의 안전성과 품질을 중시하기 때문에 대기업 단체급식 업체들을 선호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일률적으로 대기업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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