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그 후..여전히 계약직에 처우 그대로

이민우 기자 입력 2017.08.24. 18:00 수정 2017.08.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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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 "다 바뀔 줄 알았는데"..사무처 "과도기적 상황, 지켜봐 달라"

올해 첫 출근일이었던 1월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 제4회의장에선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장관급인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이 200여 명의 국회 청소노동자에게 큰절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청소노동자들은 맞절로 답해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청소노동자들에게 국회 직원증을 걸어주며 축하했다. 국회 신분증을 발급받은 청소노동자들의 눈시울은 이내 붉어졌다.

 

직접고용 했지만 처우개선 미흡

국회가 1981년 청소업무를 민간에 도급계약으로 맡긴 뒤 35년 만에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했다. 시민들도 박수를 보냈다. 국회 사무총장의 큰절 사진이 회자되면서 사람들은 “이게 나라다” “이런 게 정치다”라며 환호했다. 추가 예산조차 투입하지 않고 얼마든지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린 선례로 기록됐다. 국회 청소노동자뿐 아니라 공공부문에 근무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자는 여론마저 거세졌다.

그 후 9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물론 나아진 점도 있다. 가족·친지들 앞에서 당당하게 국회 직원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국회 직원들이나 의원실 보좌진들의 시선도 훨씬 부드러워졌다. 3년에 한 번씩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던 일도 사라졌다. 그런데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반응은 올해 초와 사뭇 달라졌다. 미소는 옅어졌고, 일각에선 불만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올해부터 국회 사무처 소속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처우는 변하지 않아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정규직 된다고 해서 엄청 기대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계약직이에요. 2년 뒤에 전환된다고 하는데, 정년이 짧아져서 저는 나가야 하네요.”

8월17일 국회 본청 내 화장실에서 청소를 마치고 나오던 A씨는 정규직화 이후 어떤 점이 바뀌었느냐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분홍색 고무장갑을 뺄 여유도 없이 하소연을 시작했다. 자신들의 신분 문제에서부터 국회 사무처 관리과와의 협상 과정, 현재 쟁점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현재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신분은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회 사무처 소속 기간제 근로자다. 지난해와 올해의 가장 큰 차이는 그들을 고용한 곳이 용역회사에서 국회 사무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국회 청소노동자 203명 모두 마찬가지다. 국회 사무처는 이들을 올해부터 내년까지 고용한 뒤 2년 이상 고용하면 ‘중규직’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나마도 법적으로 무기계약직 정년이 만 60세이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매년 계약을 연장해야 하는 신세에 놓였다.

더욱 큰 문제는 정년이 줄었다는 점이다. 용역회사에서 만 68세였던 정년은 국회 사무처 소속으로 바뀌면서 만 65세로 줄게 됐다. 고용 안정이라는 혜택을 주는 대신 고용 연령을 낮춰버린 것이다. 청소노동자의 절반가량이 정년 단축의 영향을 받게 됐다. 현재 청소노동자 20% 정도가 만 65세 이상이다. ‘정규직화’라는 단어의 축배 속에 독이 들었던 셈이다. 벌써부터 일각에선 “이러려고 정규직화하고 큰절했느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처우다. 국회 사무처는 올해 초 교통비, 선택적 복지포인트, 콘도 사용 등 복리후생 혜택을 제공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청소노동자들도 용역업체에서 떼는 수수료가 사라졌기 때문에 임금이 오를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국회 사무처는 용역업체 수수료를 청소물품 구입 등에 우선 지출했다.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은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국회 청소노동자의 임금은 세후 140만원 남짓. 그나마도 1년 차나 30년 차 모두 임금이 같다. 월급이 몇 만원 오르긴 했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상분이었다. 교통비는 6만원이 신설됐지만, 기존 용역업체에서 제공하던 식권 5만4000원분이 사라졌기 때문에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명절 상여금이 추가로 지급됐다. 국회 사무처는 설과 추석에 각각 기본급의 30%씩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설에 일괄적으로 약 43만원의 상여금을 받은 뒤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부수입이 줄었다. 공식적이진 않지만 지난해까지 폐지(廢紙) 등 재활용품을 용역회사에서 관리하면서 업체에 넘긴 수익을 청소노동자들끼리 나눠 가졌다. 반기별로 20만~40만원씩 용돈처럼 쥐어졌다. 하지만 국회 사무처는 이 같은 행위를 금지시켰다. 사실상 조삼모사였던 셈이다.

시간외 근로수당 등도 지급되지 않는다.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오전 6시까지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도록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 오전 5시 이전에 출근한다. 국회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를 마무리해야 일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가운데 두 시간(8~9시, 12~13시)을 휴게시간으로 정해 근무시간에 산입하지 않는다. 물론 이 시간을 고스란히 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과 청소노동자들이 1월2일 서로 큰절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시 정규직 전환’ 사례 의존성의 함정

왜 이 같은 일이 발생했을까. 갑자기 국회 사무처가 악덕사업주로 변한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곳곳에서 법 테두리 안에서 고민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실제로 국회 사무처와 청소노동자들은 작년 말 직접고용 전환 합의를 이뤄내기 전에 수차례 만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다.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 제약 요소들을 피해 가면서 고용안정을 위한 조치들을 마련하고자 했다. 국회 사무처는 국회 청소노동자들의 신분 및 처우에 대한 시사저널의 질문에 대해 8월17일 항목별로 상세한 답변을 보내왔다.

국회 사무처는 여전히 청소노동자들이 계약직 근로자 신분인 데 대해 “서울시나 인천시 등의 사례에 따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며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근로자의 임금은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불리는 해당 법은 2년 이상 기간제로 근로한 자를 별도의 채용절차 없이 무기계약 근로자로 전환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새롭게 무기계약직 채용 공고를 할 경우, 기존 근로자 가운데 탈락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등도 담겨 있었다. 정년이 축소된 부분도 서울시의 선례를 그대로 가져왔다. 국회 사무처에 직접 고용됨에 따라 공무원 정년을 적용해야 했다. 현행법 아래서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 정년은 만 60세를 적용해야만 했다. 그 이후엔 다시 기간제 계약을 갱신해 만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연차 관련 규정도 마찬가지다. 국회 사무처에서 임의로 휴가를 줄 수 없었다. 국회 무기계약직, 기간제 근로자 등 민간근로자 연차휴가는 근로기준법을 준용하도록 정해져 있다. 법령에 따라 2017년 근로시간의 80% 이상 출근하는 경우, 2018년에 15일의 연차휴가가 부여된다. 급식비 역시 국고지출원칙에 따라 근로자 계좌로 직접 임금을 이체해야 하기 때문에 급식비를 교통비로 대체해 지급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예상된 문제였다. 얼마든지 행정적·입법적 지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국회 한 보좌관은 “무기계약직 공고를 내고 국회 청소 경력 등을 가점으로 부여하면 얼마든지 바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다”며 “공공기관 간접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보완을 통해 고용이나 경력 등을 그대로 승계하는 방식을 마련하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서울시 사례의 경우 박근혜 정부 당시 입법적 보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해 어쩔 수 없이 현행법을 우회하는 방식의 꼼수 전환 방식을 택했던 것”이라며 “앞으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전환 과정에서 제도적 보완을 하지 않은 채 앞선 서울시나 국회의 사례를 그대로 따라 해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인 5월12일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이날 문 대통령이 공항 비정규직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공공기관도 국회 사례 반복할까 우려

정부는 올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확정했다.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성급하게 추진할 경우 부작용을 우려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 정책을 시행할 때 경로 의존성과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징적 기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기관들도 비슷하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며 “우선 해당 기관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업무 특성과 연령을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지가 좋더라도 일괄적으로 추진하면 노동자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으니, 전환 대상의 특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는 애초 상시·지속·안전·생명업무를 정규직으로 사용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며 “지금부터라도 명확한 원칙을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실장은 “적어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는 상층부의 논의뿐만 아니라 당사자들과 소통하고 풀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아직 미흡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