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 변호인' 이양구 윤영선연극상 수상.."블랙리스트, 누가 했는지 규명해야"

2017. 8. 2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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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 변호인' 작·연출가 이양구
'노란봉투' 등 사회비판극 쓰고 연출
2017 윤영선연극상 수상자로 선정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활동중
"자료 보면 희곡에나 쓸 수 있는 말들..
연극 공간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해"
[한겨레]
올해 윤영선연극상을 수상한 이양구 작·연출가가 14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올해 윤영선연극상 수상자로 작·연출가 이양구가 선정되었다. 2007년 타계한 윤영선은 <키스>, <파티>, <여행>, <임차인> 등의 연극을 쓰고 연출했던 작·연출가로, 윤영선연극상은 고인을 기리고자 2014년 제정됐다. 고재귀, 이수인, 기국서에 이어 올해 윤영선연극상을 수상한 이양구는 2008년 <별방>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돼 평택기지촌 여성의 삶을 다룬 <일곱집매>(2012년), 파업노동자의 투쟁기를 그린 <노란봉투>(2014년), 블랙리스트 의혹을 풍자한 <씨씨아이쥐케이>(2016년), 노조파괴 전문 법무법인의 실체를 고발한 <작전명 씨(C)가 왔다> 등 그동안 사회성 짙은 작품을 주로 집필해온 작가다. 현재는 지난 정권 벌어졌던 블랙리스트 파문을 조사하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 중이다.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어떻게 내가 수상자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이수인, 기국서처럼 연배 높은 분들이 수상을 하기에 ‘나이 많은 분들에게 주는 상이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받으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이번에 무슨 이유로 수상하게 되었는지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나?

“심사위원 한 명에게 ‘블랙리스트 활동과 상관있는 게 아니냐?’ 물어봤는데,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는 답변을 듣긴 했다. 어쩌면 블랙리스트 문제에 깊이 관여돼있다 보니 ‘쟤 이제 연극 안하고 저런 활동만 하는 것 아냐’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런 우려를 잠재우고 ‘이양구가 원래 연극인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상을 준 게 아닌가 싶다.”

-‘이양구’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블랙리스트가 뜬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공연계 법조인이랄까.

“법대를 다녔지만, 졸업은 하지 않았다. 6학기까지 다니다 그만뒀다. 그래도 그때 법 공부를 했던 게 큰 도움이 된다. 작품에도 법과 관련된 내용을 조금씩은 넣게 되고. 하지만 ‘공연계 법조인’이란 타이틀은 부담스럽다.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 이미지가 그리 좋지도 않고. 자꾸 나에게 그런 이미지를 심지 마라.”

-그러면 변호인은 어떤가? 공연계 변호인?

“변호인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고민해보겠다. 하하. 그런데 내가 처음부터 이런 활동을 열심히 했던 건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 하도 창작환경을 파괴해, 거기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이런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비유하면 쌀이랑 솥이 있어야 밥을 해 먹는데, 쌀이랑 솥을 다 빼앗아 갔으니까. 이제 쌀이랑 솥을 되찾긴 했는데, 누가 뺏았는지를 규명하는 일이 남아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올해 윤영선연극상을 수상한 이양구 작·연출가가 14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렇다. 초기작들은 사회성보다는 서정성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언제부터 바뀌었나?

“연극영화과 다니던 시절엔 신문도 안 보고 사회에 관심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데뷔하고 얼마 안 돼 노무현 대통령님이 서거하셨다. 그때 죄책감이 들더라. 관심을 가지지 않은 데 대한 부채의식이랄까. 당장 사회적인 작품을 만든 건 아니지만, 쭉 관심을 가지고 관련서적과 신문을 탐독했다. 본격적으로 사회적 발언을 시작한 건 혜화동1번지 동인이 되고 나서부터다. 2013년 초에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시리즈를 기획하게 됐다. 혜화동1번지 극장 바로 앞에서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이 5년이나 농성을 하고 있는데, 눈앞의 부조리는 외면하면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기획한 시리즈였다. 이어 2013년 봄 페스티벌에서 국가보안법을 다룬 작품을 선보였다. 김기춘 판결문을 보니 혜화동1번지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게 그때부터더라. 이후로 <노란봉투> 공연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극작가인 것처럼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실제로 사회적 발언도 많이 하고, 지금 또 문체부 산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출근 중이지 않나.

“요즘 사무실에 출근해 블랙리스트 관련자료를 모으고 있다. 이전까지는 공개된 자료 밖에 보지 못해 답답했는데, 이제 비공개자료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자료가 오면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전체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진상조사위원회 운영기간이 원칙적으로 6개월이라 들었다. 짧은 것 아닌가?

“6개월 안에 조사를 마무리하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전문위원 공모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해당기관에 자료요청해서 받기까지도 6개월이 걸린다. 다행히 이후에 3개월씩 연장을 할 수 있고, 최소 한 번은 연장될 것 같다. 거기 더해 백서까지 편찬하려면 1년 이상 걸리지 않을까.”

-자칫하면 1년이 아니라 그 이상 소요될 텐데, 그 사이에 창작활동이 가능하겠나? 글이야 퇴근하고 집에서 쓸 수 있다지만, 연출은 불가능하지 않나?

“다행히 연출은 9월12일에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올릴 뮤지컬 한 편만 하면 된다. <그대 있는 곳까지>라는 기지촌 할머니들이 출연하는 작품인데, 작년에 했던 공연이고 출연하는 할머니들께서도 작년에 참여하셨던 분들이라 어려울 건 없다. 집필 의뢰받은 작품 쓰는 게 좀 문제긴 하다.”

-취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취재할 시간이 있을까?

“작품을 쓸 때 관련 자료들을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나는 극작가가 찾을 수 있는 건 다 찾아본 후에 자신의 영역을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블랙리스트 진실규명 작품을 쓴다고 하자. 거기엔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두부 자르듯 잘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 선명하게 나뉘지 않는 영역이 있고, 관계가 역전되는 영역도 있고, 규범과 사실이 충돌하는 영역도 있고, 법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이 교차되는 영역도 있다. 나는 그 지점이 극작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조사위원회에 있으면서 방금 이야기한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될 것 같다.

“여기서 무수히 많은 자료를 보고 정리해 해석을 붙여 보고서를 쓰는 게 일이다. 그런데 자료를 보다 보면 보고서에는 쓸 수 없는, 희곡에나 쓸 수 있는 말들을 만나게 된다. 인간의 삶이라는 건 증거로 환원될 수 없지 않나. 소위 그때 가해자나 피해자가 어떤 마음이었는가, 어떤 정신적 상태에 있었는가 하는 건 보고서에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난 지금 연극의 공간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진상조사위원회 사무실이 지난 정권 문화융성위원회가 쓰던 사무실이다.”

올해 윤영선연극상을 수상한 이양구 작·연출가가 14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 과정에서 환멸스러운 모습도 만나게 될 것 같다.

“이미 만나고 있다. 검열에 가담한 연극계 선생님들, 거짓말하는 선생님들. 그분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되면서, 사람 사는 게 도대체 뭔가 싶을 때도 있다. 그분들은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 어쩌면 별 문제의식 없이 검열에 가담한 것 같기도 하다. 세월호로 비유하면, 세월호가 문제 많은 배 아니었나? 그런데 과적도 눈감아주고, 규정위반도 통과시켜 운항시키지 않았나. 검열도 당사자들이 큰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진행한 것 같다. 문제제기를 해 자기 직이 날아갈까 두려웠는지, 아니면 정말 문제를 못 느꼈는지, 아니면 잘못인줄 알면서도 적극 가담한 것인지. 그런 게 궁금하다.”

-1년 뒤에 대작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실 고발성 공연만 많이 하는 작가처럼 비쳐졌지만, 나는 특별히 사회적 이슈에 집중했다기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주로 다뤘던 주제도 사람이 사람 사이에서 겪는 소통의 문제, 존재의 불안감이었다. 함께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 거기서 빚어지는 갈등들. 아무래도 그런 작품을 쓰게 되지 않을까. 첨예한 정치적 이슈에서는 벗어나서, 뭐랄까,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의 조건에 대한.”

-수상을 축하하러 만난 자리인데, 상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었다. 이번에 수상한 윤영선연극상은 어떤 상이라고 생각하는가.

“윤영선이라는 작가가 추구했던 연극적 가치를 구현하는 이들에게 주는 상? 그분의 희곡을 읽으면서 받았던 ‘껍질밖에 남지 않은 인간’이라는 자의식이 강했던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현대인의 삶이라는 게 껍질만 그럴 듯하고, 안은 죽어있는 경우가 많지 않나. 껍질은 반들반들한데, 내용물은 볼 품 없는. 윤영선은 그런 것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참혹하리만치 응시했던 작가인 것 같다. 앞서 이 상을 수상했던 분들도 다 그런 류의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수상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심사위원들이 날 많이 걱정했던 것 같다. 내가 창작자라는 사실을 잊을까 봐. 사람들에게 내가 연극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환기시켜줘서 고맙다.”

인터뷰가 끝난 후, 이양구는 자신의 자리가 있는 진상조사위원회 사무실로 돌아갔다. 아직은 아침에 출근하는 일이 몸에 배지 않아, 몸이 저항 중이라고 투덜대면서. 제발 이상한 수식은 붙이지 말라 당부하면서. 그는 손사래쳤지만, ‘공연계 변호인’은 그에게 썩 잘 아울리는 레테르가 아닐까 싶다.

김일송/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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