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L 특별기획] (2) 1992, 칸토나의 영입과 맨유 제국의 시작

골닷컴 2017. 8. 2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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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93시즌, 한 남자의 맨유 입단과 함께 그 후로 오래 이어지는 '맨유 제국'이 시작됐다. 그 남자의 이름은, 에릭 칸토나다.

[골닷컴 이성모 기자] 전세계 210개국에서 시청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콘텐츠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가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출범 25주년을 맞이했다. 세계인의 축구 네트워크 골닷컴이 ‘GOAL 특별기획’ 연재를 통해 현재의 EPL을 더 풍부하게 즐기는데 도움이 될만한 지난 25년 EPL의 중요한 흐름과 사건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새로운 변화에 대한 필요성과 TV 중계권 독점 계약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 1992/93시즌 100년 이상 이어졌던 풋볼리그에서 독립 출범한 프리미어리그가 그 첫 시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첫 시즌의 챔피언이 된 팀은 오늘날 우리에겐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당시엔 무려 26년 동안 리그 우승이 없었던 팀이었다. 맨유 감독 부임 후 한 때 심각한 경질 위기에 몰리기도 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유가 그의 부임 후 6년 만에 드디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잉글랜드 축구팬들 사이에 ‘맨유 제국’(Manchester United Empire)이라 불리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이 배경을 알고 나면, 왜 퍼거슨 감독이 그의 후임자들이 경질 위기에 몰릴 때마다 ‘더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맨유의 26년의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고, 그들을 프리미어리그 역사 초기의 절대적인 최강자로 만든 것일까? 물론, 당시 맨유에는 마크 휴즈, 스티브 브루스, 데니스 어윈을 포함해 오늘날까지 사랑 받는 많은 레전드들이 있었고 이 시즌 그들 모두 훌륭한 활약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우승은 이 한 남자의 존재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맨유의 ‘킹’이자 퍼거슨 감독의 감독 커리어 사상 가장 중요한 영입이었던 에릭 칸토나가 그 주인공이다.

(1992/93시즌, 맨유의 베스트 일레븐 : 해당 포지션 최다 출전자 기준)

1. 칸토나의 입단과 ‘퍼거슨호’ 맨유의 완성

맨유 이전에 리즈가 있었다. 프리미어리그가 풋볼리그로부터 독립 출범하기 직전이었던 1991/92시즌 잉글랜드 1부 리그의 챔피언은 리즈 유나이티드였다. 사실, 이 시즌 맨유는 한 때 리그 1위를 기록하기도 하며 퍼거슨 감독 부임 후 첫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데 근접하기도 했지만, 리즈 유나이티드에 결국 역전을 허용하며 리그 우승을 내주고 만다.  

그리고 그 리즈에는 에릭 칸토나가 있었다. 리즈의 역전 우승의 가장 큰 역할을 한 선수도 다름 아닌 칸토나였다. 1시즌 후, 그가 맨유로 이적하면서 한 때 리그 10위에 처져있었던 맨유가 다시 역전 우승을 차지한 것을 생각해보면 칸토나라는 선수가 그 당시 양팀에서 얼마나 압도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리즈 시절(그는 1992년 11월에 맨유로 이적했다), 칸토나는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최초의 해트트릭 주인공이 되는 등 시즌 초반부터 좋은 출발을 했다. 그리고 맨유로 이적한 후 특유의 창의적인 플레이로 맨유의 ‘No.1’ 공격수였던 마크 휴즈와 좋은 호흡을 보이며 팀 전체의 공격력을 살려냈다. 이 시즌 리즈, 맨유 두 팀을 합친 에릭 칸토나의 기록은 15골 16어시스트(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기록 기준)다. 

골보다 어시스트가 더 많았던 칸토나의 기록이 보여주듯, 칸토나는 강인해보이는 외모와 터프한 성격으로 인해 흡사 오늘날 즐라탄이 그렇듯(오늘날 실제로 즐라탄을 맨유의 ‘킹’ 칸토나와 비교하는 언론이 많듯) 타겟형 스트라이커로서 활약했을 것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그는 최전방에서 뛰는 경우보다 그보다 조금 뒤로 처져서 활약하며 동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플레이를 잘 하는 선수였다. 특히 그가 이 시즌 토트넘 전에서 페널티박스 바깥으로 나와서 안으로 침투하던 데니스 어윈의 골 장면을 만들어낸 칩샷 패스가 유명한데, BBC의 유명 코멘테이터 존 모슨은 이 장면을 두고 ‘이번 시즌 최고의 패스’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다. 

유럽 최고의 전술 분석가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는 마이클 콕스는 최근 자신의 저서 ‘더 믹서(The Mixer)’에서 맨유에서 칸토나가 수행한 역할을 ‘딥라잉포워드’(deep lying forward)에 가까웠다고 설명하고 있다.

“칸토나는 전형적인 센터포워드로서도, 혹은 플레이메이커로서도 뛸 수 있는 선수였다. 맨유에서 그는 최전방 공격수라기 보다는 그 뒤에서 No.10 롤을 수행하며 그 전까지 맨유가 즐겨쓰던 4-4-2 전술을 4-4-1-1에 가깝게 바꿔놨다. 당시 프리미어리그에는 그와 같은 ‘딥라잉포워드’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많지 않았다.”

당시 맨유의 포메이션을 4-4-2냐, 콕스 기자의 말대로 4-4-1-1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칸토나의 영입으로 퍼거슨호 맨유가 드디어 완성됐다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 늘 퍼즐의 한 조각이 부족했던 퍼거슨의 맨유는 칸토나라는 피치 위의 선장과 함께 그 후로 프리미어리그를 압도적으로 제패해나가기 시작한다. 

2. 마크 휴즈, 스티브 브루스의 결정적 공헌 

이 시즌 맨유 우승의 결정적 역할을 한 선수가 칸토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칸토나가 맨유의 전부였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시즌의 전체 리뷰 비디오를 다시 돌아보면, 해당 시즌 맨유에는 중원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했던 폴 인스, 퍼거슨 감독이 자신이 지도한 최고의 풀백이라고 인정했던 데니스 어윈, 무시무시한 기량을 선보이고 있던 10대의 ‘신성’(당시의 기준으로는) 라이언 긱스를 우측면으로 밀어내고 좌측면에서 활약했던 리 샤프 등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선수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고 또 중요한 공헌을 했던 두 선수는 오늘날 우리에겐 감독으로 더 익숙한 공격수 마크 휴즈와 중앙 수비수 스티브 브루스였다. 

맨유 유소년팀 출신으로 맨유에서 1군 데뷔, 좋은 모습을 보인 끝에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다가 다시 맨유로 돌아온 마크 휴즈는(현재 프리미어리그 감독들 중, 그만큼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공격수 출신 감독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1992/93시즌 칸토나의 맨유 입단 이전, 이후에 항상 결정적인 순간마다 팀을 위해 골을 터뜨리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가 이 시즌 기록한 골에는 거의 모든 종류의 원더골(바이시클킥, 칩샷, 다이빙헤더 등등)이 다 있었다. 

21세기의 존 테리 이전에 잉글랜드 축구계 최고의 ‘골 넣는 수비수’였던 중앙 수비수 스티브 브루스는 이 시즌 맨유의 우승을 거의 확정짓는 결정적인 골을 넣은 주인공이었다.  

1993년 4월 10일,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홈경기에서 맨유가 0-1로 뒤지고 있던 경기에서 브루스는 혼자서 후반 41분, 45분에 연속골을 터뜨리며 팀의 2-1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브루스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가던 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퍼거슨 감독과 브라이언 키드 코치가 터치 라인까지 뛰어나와 환호하는 장면(브라이언 키드 코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터치라인에서 5m는 안까지 들어가버렸고 터치라인 안에서 환호하던 퍼거슨 감독이 그를 슬쩍 바라본 후 다시 환호했다)은 현재까지도 프리미어리그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들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전 경기까지 리그 2위를 기록하고 있던 맨유는 이 경기에서의 역전승으로 리그 1위로 치고 나섰고 그 후로 전승을 거두며 프리미어리그 초대 챔피언이 됐다.

3. ‘조지 베스트의 후계자’로 불렸던 라이언 긱스

이 시즌 맨유의 우승에 대해 논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선수는 이 시즌 19세의 나이로 이미 맨유 주전 자리를 꿰찼던 최고의 신예 라이언 긱스였다. 그는 이 시즌 왼쪽 측면 오른쪽 측면을 가리지 않고(리 샤프가 부상에서 복귀 하기 전까지는 왼쪽에서, 그 후로는 주로 오른쪽 측면에서) 뛰면서 모든 대회를 통틀어 46경기에 출전 11골을 터뜨렸다. 

이 시절 라이언 긱스의 모습은, 훗날 많은 언론에서 그와 비교하게 되는 같은 웨일스 출신의 슈퍼 스타 가레스 베일의 토트넘 시절 모습과 대단히 흡사하다.(정확히 말하자면, 베일이 긱스의 이 시절과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특히 그가 이 시즌 중 토트넘 전에서 터뜨린 골 장면이 그 예인데 그는 폭발적인 스피드로 상대 수비 두 명과 골키퍼까지 제친 후 좌측면에서 시도한 정확한 슈팅으로 토트넘의 골문을 갈랐다. 

좌우측면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뛸 수 있는, 심지어 환상적인 직접 프리킥으로도 골을 터뜨린 이 시기의 긱스는 과거 맨유 최고의 스타였던 조지 베스트에 비견될 정도였고 조지 베스트 본인이 직접 긱스의 재능을 극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긱스는 “내가 베스트의 재능에 반만 가지고 있더라도 행복할 것”이라며 화답했고, 긱스는 결국 이 시즌 ‘올해의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하게 된다.

(1992/93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종 순위)
(1992/93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랭킹)

1992/93시즌, 우승 팀 외 주요 선수들

우승을 차지한 맨유의 두 공격수 마크 휴즈와 에릭 칸토나가 나란히 15골을 기록한 가운데, 초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선수는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했던 테디 셰링엄이었다. 오늘날에도 토트넘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중 한 명이 셰링엄인 데는 다름 아닌 토트넘의 공격수가 초대 득점왕이 됐다는 이유도 존재하는 것이다. 셰링엄은 훗날 퍼거슨 감독의 맨유에 합류하여 1999년 맨유의 트레블을 확정짓는 결정적인 골을 터뜨리게 된다.   

그 외의 선수들 중 오늘의 팬들에게도 익숙한 선수들 중에는 2위를 기록한 레스 퍼디난드, 5위에 오른 앨런 시어러, 15골로 나란히 공동 7위를 기록한 아스널 레전드 이안 라이트, 사우샘프턴에서 ‘신’으로 불렸던 매튜 르 티시에 등이 있다. 

특히, 이들 중 훗날 프리미어리그 최다골 기록 보유자가 되는 앨런 시어러는 칸토나를 영입하기 전에 퍼거슨 감독이 영입을 시도했던 바 있으나, 맨유행을 거절하고 블랙번으로 이적, 이후 블랙번의 리그 우승을 이끌게 된다. 

1992/93시즌, 프리미어리그 외 주요 사항 

1) 아스널의 ‘컵 더블’

1992/93시즌을 앞두고 영국 언론에서 예상한 가장 유력한 새 시즌 리그 우승 후보는 아스널이었다. 실제로 아스널은 조지 그레엄 감독의 지휘 아래 1988/89시즌, 1990/91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시즌 리그에서 10위까지 처지면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리그에서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 든 아스널이었지만, 그들은 이 시즌 다른 의미에서 독특한 결과를 만들어냈는데 FA컵과 리그컵 두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컵 더블’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한가지 묘한 것은 그 두 대회에서 아스널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친 팀이 같은 팀(셰필드 웬즈데이)였다는 것이었다.  

2) 새로운 ‘백패스 룰’의 도입

1992년은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한 해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축구의 아주 중요한 규칙이 변경됐던 해이기도 하다. 이 해를 기점으로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할 경우 골키퍼가 볼을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규칙이 도입된 것이다. 

언뜻보면 간단한 변화같지만, 그 규칙은 이후로 잉글랜드의 축구를 완전히 바꿔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맨유 골키퍼 피터 슈마이켈은 이 변화에 대해 “그 규칙의 변화가 축구를 완전히 바꿔놨다”고 말했고, ‘더 믹서’의 저자 마이클 콕스는 “이 일로 인해 잉글랜드에서 진정한 의미의 ‘볼게임’이 시작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3)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의 은퇴 

2부 리그 중하위권을 맴돌던 노팅엄 포레스트를 이끌고 2년 연속 유러피언컵(현재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신화를 썼던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이 이 시즌을 끝으로 축구계에서 은퇴했다. 그는 현재까지도 잉글랜드 팬들에게 가장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는 감독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업적에 묻혀서 잘 알려지지 않은 묘한 사실은, 노팅엄 포레스트가 클러프 감독의 마지막 시즌에 최하위를 기록하며 2부 리그로 강등 당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일부 영국 언론에서는 클러프 감독이 물러날 때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으나, 노팅엄 포레스트의 팬들은 팀의 강등이 확정된 최종전에서도 클러프 감독에게 고맙다는 응원가를 불렀고 클러프 감독 역시 그런 팬들에게 엄지를 치켜들며 화답했다.  

참고문헌 및 영상 자료 

Complete History of British Football 150 years of season by season action (The Telegraph) 

The Mixer, The Story of Premier League Tactics from Route One to False Nines (Michael Cox) 

오피셜 프리미어리그 1992/93시즌 리뷰 비디오 

오피셜 맨유 1992/93시즌 리뷰 비디오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역사 섹션

맨유 공식 홈페이지 역사 섹션 

그래픽=골닷컴 박성재 디자이너

글=골닷컴 이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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