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囚人 한명숙'이 영치금 250만원까지 빼앗긴 이유는

양은경 법조전문기자·변호사 2017. 8. 2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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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가 2년의 옥살이 끝에 23일 새벽 경기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사법 정의는 죽었다”며 백합 꽃다발과 성경책을 들고 감방에 들어가는 신(新)개념 ‘수감 퍼포먼스’를 했던 때가 2015년 8월 24일이니, 벌써 두 해가 지났다.

이날 새벽부터 의정부교도소 앞에서 펼쳐진 ‘출소 환영 퍼포먼스’는 수감 당시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변함 없는 사랑, 순결’을 의미하는 백합과 노란 풍선 물결이 일렁였다. 한 전 총리는 말간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짧지 않았던 2년 동안 정말 가혹했던 고통이 있었지만, 새로운 세상을 드디어 만나게 됐습니다. 저에게 닥쳤던 큰 시련을 제가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진심을 믿고 한결같이 응원해주시고 힘과 사랑을 주신 수많은 분들의 믿음 덕분이었습니다.” 지지자 200여명이 “사랑해요! 한명숙”을 외쳤다.

2015년 8월 24일 한명숙 전 총리의 수감 전 모습(왼쪽), 2017년 8월 23일 만기 출소 현장. /조선일보DB

‘한명숙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건’의 앞뒤 맥락을 모른다면, 이 장면은 언뜻 ‘민주 열사의 귀환’ ‘독립 투사의 부활’처럼 보인다. 더불어민주당도 지원사격 중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한 전 총리에 대한 기소도, 재판도 잘못됐다”며 “한 전 총리가 앞으로도 ‘여성계의 대모’로서 ‘한국 정치의 중심’에서 한결 같은 역할을 해주시리라 믿는다”고 했다.

2015년 8월 24일 한명숙 전 총리의 수감 전 모습(왼쪽), 2017년 8월 23일 만기 출소 현장. /조선일보DB

그녀는 정말 ‘무고한 정치적 희생양’이자,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법 피해자’인 걸까. 검찰과 법원이 죄 없는 야당 정치인에게 억지 누명을 덮어 씌웠을까. <디테일추적>이 조선일보 양은경 법조전문기자와 함께 하나 하나 따져봤다.

-23일 출소 이후 포털사이트에서 ‘한명숙’ 키워드로 실시간 검색을 해보니 네티즌 간에 상당한 논쟁이 있더군요. ‘억울한 옥살이’ 주장과 ‘범죄자의 민주 열사 코스프레’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습니다.

“억울한 옥살이라고 하는 건 구속된 피고인 대부분이 외치는 주장입니다. 대외 발신력이 강한 정치인은 유독 심합니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수사 단계부터 ‘보복 수사’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여론을 형성합니다. 한명숙 사건은 1심(무죄)과 2심(유죄) 결과가 엇갈렸기 때문에 더 논쟁이 세게 붙었습니다.”

-이 사건 재판 결과가 오락가락했던 이유가 있었나요.

“2011년 중앙지법 1심에서 무죄가 나온 건 결정적인 진술이 틀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검찰 단계에서 한명숙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던 건설업자 한만호씨가 법정에 와선 ‘그런 사실 없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1심 재판부는 건설업자가 번복하자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013년 서울고법 2심에선 한만호가 진술을 번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객관적 증거들을 미뤄봤을 때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2015년 확정했고요.”

-한 전 총리는 사건이 애초에 검찰의 ‘표적 수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합니다.

“검찰이 수사 진행을 하며 범죄 혐의가 아니라 ‘사람을 목표로 탈탈 턴다’는 인상을 준 건 사실입니다. ‘한만호 9억원’ 사건이 터지기 전에, ‘곽영욱 5만달러 뇌물’ 사건이 있었어요. 검찰은 한 전 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미화 5만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를 떠들썩하게 수사해 재판에 넘겼지만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가 나오는 굴욕을 맛봤습니다. 한만호 사건 수사는 ‘곽영욱 뇌물 사건’이 1심 법원에서 선고되기 직전에 개시됐어요. 검찰은 새로운 첩보가 입수돼 수사를 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한 전 총리는 표적 수사이자 별건 수사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한 전 총리가 곽영욱 건을 무죄로 털어내고, 한만호 건도 1심에서 무죄를 받아냈을 때 ‘한명숙 수사 대응 기법’이 서슬퍼런 검찰의 ‘먼지 털기식 특수 수사’를 이겼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이후 비리 혐의에 연루된 많은 정치인들이 ‘한명숙 전술’을 학습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어요.

“한 전 총리는 철저하게 검찰에 ‘무대응’했습니다. 소환 조사에 수차례 응하지 않았고, 체포영장이 발부돼 검찰 조사를 받게 됐을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했어요. 한 전 총리는 검찰 단계에서 자신의 진술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고,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자 치밀하게 움직였습니다. 법원에 제출된 검찰의 수사기록을 모두 분석해 허점을 파고 든 겁니다. 변호인이 곽영욱씨의 진술 약점을 디테일하게 파고들자, 곽씨도 오락가락했습니다. 결국 이 건은 무죄를 받아냈고, 한만호씨 사건도 그렇게 대응했습니다.”

-한만호 9억 사건은 ‘돈 줬다는 사람 마저 진술을 번복’했는데, 2심에 유죄가 나왔죠. 결과적으로 ‘한명숙 전술’이 먹혀 들어가지 않은 셈인데요. 일부 네티즌은 “아무런 증거 없이 오직 진술로 유죄가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인가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한만호 사건은 객관적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유죄가 선고됐습니다. 자금 조성 내역을 뒷받침하는 금융자료, 자금을 담아 운반했다는 여행용 가방 구입 영수증, 무엇보다 한 전 총리의 동생이 2009년 2월 지급한 전세금 잔금 1억 8900만원 중에 한만호씨가 발행한 1억원 수표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한 전 총리의 동생이 일면식 없던 한만호씨 발행 수표를 쓴 걸 보면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가 입증 된다고 본 겁니다.”

-한 전 총리는 검찰이 ‘1억 수표’ 증거를 억지로 끼워 맞췄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한 전 총리 동생이 개인적으로 빌린 돈일 뿐이며, 추적 가능한 수표를 불법 자금으로 주는 건 상식에 맞지 않다’는 주장은 법원에서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나요.

“1억 수표의 증명력은 그만큼 강력했습니다. 한만호씨는 ‘한 전 총리에게 자금을 건넸다’는 입장을 1심에서 돌연 ‘돈을 한 전 총리의 비서 김모씨에게 빌려줬다’고 했습니다. 한 전 총리는 ‘동생이 비서 김씨에게 전세자금을 빌렸다가 갚았다’고 했고요. 즉, 한만호→비서 김씨→한 전 총리 동생으로 수표가 흘러간 셈이라며 개인적 채무관계일 뿐이라고 한 겁니다. 하지만 법원은 평소 금전거래가 없던 ‘한만호와 비서 김씨’ 사이에 변제 기일과 이자 약정도 없이 억 단위 금전 거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점은 무죄 판결을 한 1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김씨와 한 전 총리 동생’ 간의 거래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즉, 한 전 총리 여동생에게 건너 간 한만호씨 수표의 행적에 대해 한 전 총리 측은 여러 경로를 들어 변명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불법 정치자금으로 추적가능한 수표를 줬을 리 없다’는 주장도 역부족이었습니다.”

-한만호씨가 ‘사실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자백했는데도, 재판부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한 전 총리에게 징역을 때렸다는 주장은 어떤가요?

“이 사건의 쟁점 중 하나가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 중 어느 쪽이 더 믿을만 한가’입니다. 형사소송법상으로는 밀실에서 작성된 검찰 조서보다 법관 앞에서 이뤄진 법정 증언이 증거로서 훨씬 가치가 높습니다. 이를 ‘공판중심주의’라고 하죠. 그런데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검찰 진술을 더 믿을 만하다고 봤습니다. 대법관들은 3억원 부분은 만장일치로 유죄로 봤지만, 6억 부분은 의견이 8(유죄):5(무죄)로 엇갈렸습니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이인복·이상훈·김용덕 박보영 김소영)은 ‘공판중심주의에 반하는 판결’이라고 했습니다.”

/조선일보DB

-검찰도 이 사건에서 잘못을 한 게 있죠? 사건이 이토록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질 빌미를 준 건 아닌가요?

“대법원 판결에서 소수 의견이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 거죠. 한만호씨는 2010년 3월부터 그해 말까지 70회 이상 검찰 조사를 받았는데 실제 조서로 작성된 것은 5회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수사에서 어떤 조사를 받았고 그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9억원을 줬다’는 진술의 신빙성을 따진 게 아니라 그 진술이 뒤집히지 않도록 ‘단도리’하는 데만 골몰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는 것이고요. 또 이 사건의 수사가 ‘5만 달러’사건의 1심 결론이 날 즈음에야 시작된 것도 ‘보복수사’ ’별건수사’ 논쟁을 제공했죠.”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한 전 총리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폐단과 사법 부정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기소독점주의’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소독점주의’는 검찰 만이 법원에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로, 검사에게 기소·불기소의 재량을 인정한 ‘기소편의주의’와 함께 막강한 검찰 권력의 원천입니다. 검찰을 견제할 다른 기관이 없으니 당시 정치 권력이 시키는 대로 한명숙 전 총리를 희생양 삼아 ‘잘못된 기소’를 하는 전횡을 부렸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날 추 대표 발언 중에 더 큰 문제는 ‘사법 부정’ 발언이에요. 집권여당 대표이자 법조인 출신인 그녀가 이미 확정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사법 부정’이라고 언급한 건 사법권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추미애 대표는 한 전 총리가 “영치금을 넣어드려도 그것이 잘못된 필요로 인해서 다 추징이 되는 고초를 오랫동안 겪으셨다”고 했습니다. 이건 무슨 소리입니까?

“지난해 3월 검찰이 한 전 총리의 교도소 영치금 250만원을 추징해 국고에 귀속시켰습니다. 검찰이 유력 정치인의 영치금까지 손댄 것이 이례적이기는 합니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습니다. 한 전 총리는 징역 2년과 함께 추징금 8억 8302만원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거듭되는 독촉에도 추징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2억원이 넘는 한 전 총리의 예금이 대법원 확정 판결 전 인출되고, 전세 보증금도 남편 명의로 돌려진 사실을 확인한 후 그나마 확보할 수 있는 영치금을 국고 귀속시킨 겁니다.”

-사법부의 야당 탄압, 전 정권 표적수사 시비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없어질까요? ‘이명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털어내자는 것. 결국 입장만 바뀌었을 뿐 똑같은 일 아닌지…

“검찰이 앞장 선 ‘적폐 청산’ 수사가 결국 전 정권 표적 수사와 다름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사실입니다. 과연 수사가 어떤 길을 갈지 끝까지 지켜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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