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다
[오마이뉴스이상기 기자]
인생 60년을 종합하는 전시회가 열리다
▲ 조선일보미술관 소원문은희 개인전 포스터 |
ⓒ 문은희 |
이때 도자기도 10점 정도 전시되었다. 그때까지 제작된 백자 진사(辰砂)와 철사(鐵砂)에 목련이나 추상이 들어간 작품이 있고, 새롭게 제작된 백자 진사와 철사 나부도(裸婦圖)가 있다. 이처럼 누드가 들어간 도자기는 80년대 후반 새롭게 시도된 것으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런데 도자기 누드는 수묵 누드처럼 칼날 같이 그릴 수 없어 그림의 예술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것은 도자기에 먹이 잘 스며들지 않기 때문이다.
▲ 누드 도자기 |
ⓒ 문은희 |
조선일보미술관 전시회도 찾는 사람은 많았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시회는 늘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관객을 만나지 않으면 존재 의미가 없기 때문에 또 다시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문은희의 그림 인생에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어려움이 어느 순간 해결되었다는 사실이다. 해결의 주체는 늘 어머니였다. 그 때문에 문은희는 도움을 준 어머니를 잊지 못한다.
▲ 전시장을 찾은 운보 김기창 선생 |
ⓒ 문은희 |
붓과 생명의 합일
▲ 인간 내면이 잘 표현된 누드 군상 |
ⓒ 문은희 |
김구산은 문은희의 누드화에서 생명의 본질을 찾아내고 있다. 문은희는 누드의 율동과 표정을 통해 인간 내면의 숨결과 리듬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누드화를 통해 인간 내면의 심오한 본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누드화를 조형으로서의 예술인 동시에 메시지와 절규로서의 퍼포먼스로 보고 있다.
▲ 1990년의 수묵 누드 작업 |
ⓒ 문은희 |
그는 문은희 수묵 누드의 특징을 동양화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일회성과 반복성이다. 일회성은 동양화가 가지는 선묘(線描)의 특징으로, 일필휘지로 그려내는 기교를 말한다. 칼로 대상을 베어내는 것처럼 한 획으로 결단을 내는 것이다. 이러한 일회성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백 번의 반복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이것이 반복성이다. 백 장을 그려 한 장을 선택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림 40년, 누드 10년 이상의 결실이 문은희의 수묵 누드다. 그러므로 그녀의 누드화에서는 형태가 제공하는 조형미 이상으로 생명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 숨결 속에 삶의 고통과 한이 들어있고, 관객들에게는 고뇌하는 인간의 몸짓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김구산은 소원의 수묵 누드화가 한국미술의 수준을 향상시켰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원의 개인전이 한국 화단에 자극과 활력소가 되길 기대한다.
80년대 말부터 누드화 배경에 색이 들어가다
▲ 배경색이 검은 누드 군상(1987) |
ⓒ 문은희 |
문은희의 수묵 누드는 크로키로 화선지 위에 검은 선으로 순식간에 형태를 표현하는 선묘다. 그러므로 흰 바탕에 검은 선으로 칼날 같이 표현된다. 그런데 1987년부터 이런 경향을 벗어난 수묵 누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누드화 배경이나 육체에 색이 들어간 것이다. 1987년 누드 군상이 그렇다. 비슷한 시기 누드화로 몸을 검게 그린 그림도 있다. 어떤 연유에서 또 어떤 계기로 이런 그림을 시도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 평면성과 역동성이 강조된 누드 |
ⓒ 문은희 |
1990년 누드화 중 평면성이 강조된 것이 있는가 하면, 1991년 누드화 중에는 입체성이 강조된 것도 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개성이라 표현하고, 어떤 사람은 원숙미라 표현한다. 문은희 누드의 개성과 원숙함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1991년이 수묵 누드의 절정기다. 그것은 그 후 더 이상 새로운 시도의 수묵 누드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4년 이후 문은희는 누드 콜라주로 넘어간다.
언론에 표출된 전시회 이야기
▲ 조선일보미술관 문은희 개인전 기사 |
ⓒ 이상기 |
<스포츠 조선> 기사는 전시가 시작되는 8월 29일자 '금주의 작가'란에 실렸다. 제목은 "육순의 집념…'수묵누드' 개척했다"이다. 이곳에서 문은희는 수묵누드라는 독창적 영역을 개척한 집념의 화가로 소개되고 있다. 30년 한국화 경력에 10년 수묵누드 작업을 더해 여체의 에로티시즘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1992년 4월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작품전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리고 있다.
▲ 1991년작 누드 군상 |
ⓒ 문은희 |
"모든 예술분야가 그렇듯이 그림 그리는 일도 언제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내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려운 겁니다. 수묵누드는 이제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덕분에 눈길을 끌었다고 봅니다. 이 작업은 필력과 인내와 경제적 뒷받침이 따르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에, 그 동안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본 미술평론가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는데,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긍지를 느꼈습니다."
'화제의 인물'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 기사는 전체적으로 도쿄 수묵누드 전시회에서의 호평과 누드화집 발간 외에도 문은희의 그림 인생, 수묵 누드의 어려움 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생 60을 맞이한 문은희가 수묵누드화에 온힘을 기울여 매진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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