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이국의 맛, 할랄 푸드..미식의 시대 파고 들다

입력 2017. 8. 2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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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로 등의 할랄 인증 식당 찾는 직장이 늘어
터키 이스탄불 문화원에서는 요리강좌도

[한겨레]

‘케르반레스토랑’의 요구르트를 발라 구운 할랄 닭고기 요리.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지난 18일 저녁,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서울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오자 이국적인 향이 코끝을 스쳤다. 지하철 출구 바로 앞에 있던 케밥(양념한 고기를 작게 조각내 먹는 중동 및 지중해 지역 음식) 음식점 때문이었다. 커민 같은 한국인에게 익숙지 않은 향신료를 많이 쓰는 탓에 음식 냄새는 인파를 뚫고 남았다. 이태원을 가로지르는 이태원로 양쪽엔 두바이, 터키 등 나라의 이슬람 음식을 파는 식당 4~5군데가 서로를 마주보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한 건물에만 이슬람 음식점 3개가 몰려 있는 곳도 있었다. 터키식 디저트를 파는 곳도 눈에 띄었다.

3분 정도 걸어, 한국 이슬람교 중앙성원으로 가는 우사단길에 접어들자 여기가 한국인지 이슬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슬람 음식을 파는 식당이 한 집 건너 하나꼴이었다. 아랍어로 돼 있는 간판들 한구석에 할랄(Halal) 마크가 눈에 띄었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으로 이슬람 율법에 의해 먹거나 쓸 수 있도록 허락된 재료로 만든 제품이란 의미다. 반대어는 하람(Haram)으로 ‘금지된 것’을 뜻한다. 우사단길에는 이러한 할랄 푸드를 파는 식당과 할랄 식재료를 파는 가게가 40여곳 밀집돼 있다. 그 때문에 ‘이슬람 거리’로 더 많이 불린다.

튀니지 가정식을 파는 ‘꾸스꾸스’의 양고기 꾸스꾸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이슬람 거리는 1976년 한국 이슬람 서울 중앙성원(모스크)이 완공될 때만 해도 소수의 신자들이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서울 중앙성원은 1969년 당시 박정희 정권이 4959㎡(1500여평)의 시유지를 이슬람교에 무상으로 기부하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국가들이 건축비를 지원해 설립된 곳이다. 당시 정권은 안정적인 원유수입과 중동건설 시장 확보가 절실했다. 이란의 수도 이름을 딴 서울 강남 테헤란로도 이 시기에 생겼다. 설립 당시엔 식당 등 가게도 사원 인근 몇 개에 불과했다. 우사단길은 원래 미군을 상대로 하는 위락시설이 들어차 있었다. 이 위락시설이 1990년대 후반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이슬람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미군이 빠져나간 자리를 무슬림(이슬람교 신도)이 채운 셈이다.

우사단길의 한 부동산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미군이 빠져나가고 한동안 침체기였다가, 본격적으로 이슬람 타운이 형성되면서 거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금 이태원의 중심은 미군이 아니라 이슬람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중동의 대표적인 전통음식 후무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공인중개사의 말마따나, 이면도로인 우사단길에 있던 이슬람 음식점들은 2~3년 전부터 이태원 중심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한 식당은 서울 강남의 코엑스에도 체인을 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이태원 대로변 이슬람 식당은 한국의 ‘3040’ 직장인들이 주 고객이다. 인기있는 식당은 ‘불금’엔 예약을 안 하면 자리가 없을 정도다. 이날 저녁 한 대형 이슬람 음식 식당을 찾았는데,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손님의 90% 이상이 여성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온 직장인 허민영(34)씨는 “처음엔 중동 음식이 신기해서 먹었는데, 의외로 입맛에 잘 맞아 한달에 서너번은 온다. 버터가 많이 들어간 양식처럼 느끼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김씨 일행의 식탁엔 양고기 케밥과 병아리콩을 으깨서 만든 훔무스가 놓여 있었다.

할랄 음식은 한식에까지 침투중이다. 지난해부터 우사단길에는 할랄 재료를 쓰는 ‘할랄 한식당’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삼계탕, 불고기, 낙지볶음 등을 파는데 할랄 식재료로 만들어 주 고객이 한식을 좋아하는 무슬림이다.

인기를 반영하듯 터키 이스탄불 문화원은 매달 두어차례 정기적으로 터키식 아침식사 행사 및 요리강좌를 연다. 물론 할랄 식자재를 사용한다. 사전에 누리집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아침식사는 뷔페식인데 문화원이 있는 서울 역삼동 인근 회사원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한국관광공사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2017 미스 무슬림 인도네시아’ 수상자들이 16일 서울 명동에서 쇼핑을 즐기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어 어댑터 실장)

할랄 푸드는 이제 트렌드 세터(트렌드를 선도하는 사람)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올해 2월 조직문화 컨설팅 업체 컬쳐트리는 자체 네트워킹 모임 욜로(YOLO)를 이태원의 한 할랄 음식점에서 열었다. 남녀 직장인 10여명이 참석해 할랄 푸드를 먹으면서 음식과 문화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모임을 진행한 컬쳐트리의 홍상희씨는 “참가자들은 음식 자체의 맛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할랄 푸드가 기존의 대량 생산되고 대량 유통되는 음식과 차별화됐다는 것 때문에 더 만족해했다”고 말했다. 요리 연구가 이민정씨는 “할랄 푸드 대부분이 간을 적게 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이 많다. 또 채소와 콩, 올리브유 등을 많이 써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고 건강식이란 느낌을 준다. 지중해 음식 인기의 연장선이라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할랄 푸드는 각종 오염에 대한 엄격한 관리를 하고 유통 과정이 투명해 신선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예를 들면 율법에 따라 병든 가축의 도축은 금지되고, 나지스(NAJIS. 불결한 것)와의 접촉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식이다. 과거에는 할랄 푸드라고 하면 특정 종교인이 먹는 음식 정도로 생각했는데,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웰빙’을 추구하는 세태와 맞아떨어졌다. 국내 미식문화의 확산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스탄불 딜라이트’의 할랄 디저트.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실제 할랄 인증은 각 나라 인증 기관의 엄격한 실사를 받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나온다. 세계에 300곳이 넘는 할랄 인증 기관이 있으며 한국은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와 한국할랄인증원이 인증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할랄 인증을 받은 업체가 600곳이 넘는다.

음식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산업적 성장세도 인기의 한 축이다. 지난 17~19일에는 60개 업체가 참여한 할랄산업 엑스포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는데, 삼양식품 같은 대형 식품업체도 참여했다. 할랄 인증을 받은 붉닭볶음면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할랄수출협회에 따르면 2012년 1조880억달러 규모인 할랄 푸드 시장은 2020년엔 2조달러로 성장이 예상된다. 세계 무슬림 인구도 2010년 전세계 인구의 23.4%에서 2030년엔 26.4%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추구하는 대중의 관심과,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자본이 만나 할랄 열풍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케르반레스토랑의 요리사 베다트 베르메가 할랄 고기를 굽고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할랄(Halal) 푸드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의 ‘할랄’과 음식을 뜻하는 ‘푸드’의 합성어. 이슬람 율법에 의해 허용된 식품과 음료, 식재료 등을 뜻함. 최근에는 대량 생산·유통되는 식품에 비해 신선하고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져 웰빙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음.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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