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판 파동 ①] [르포] "재래시장은 더 죽을맛..벌써 2시인데 2판밖에 못팔았어"

2017. 8. 2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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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30년 장사하면서 이런 일이 터진 건 처음이라."

잗다란 가랑비가 내리던 지난 23일 오후 2시께.

거뭇거뭇한 때가 낀 벽에는 '식용란 살충제 검사결과 증명서'가 붙어있었다.

그는 "손님들한테 살충제가 검출된 곳과는 거래를 안 하다고 못에 귀가 박히도록 말해도 안 믿는다"며 "원래 7500원에 팔던 30구계란 값이 6200원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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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 허탈…발길 끊긴 전통시장에 한숨
-“손님들에게 증명서 보여줘도 소용없어”
-“마트엔 친환경이라도 들어오지, 여기는…”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내 30년 장사하면서 이런 일이 터진 건 처음이라….”

잗다란 가랑비가 내리던 지난 23일 오후 2시께.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소규모 계란판매점을 운영하는 박정수(66) 씨는 허탈한 얼굴로 가게 내부를 바라봤다. 어금니처럼 맞물린 30구 계란판이 높게 쌓여 천장을 넘봤다. 거뭇거뭇한 때가 낀 벽에는 ‘식용란 살충제 검사결과 증명서’가 붙어있었다. 

지난 23일 오후 2시께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 위치한 한 계란 판매점. 팔리지 않은 계란이 가게 내부에 높게 쌓여있다. [사진=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예전에는 하루에 200~300판 팔았는데 이제는 하루에 20~30판도 안팔려. 손님들이 냉장고에 있던 것 까지 다 내와서 반품하는데 누가 사가겄어.”

박 씨는 반품할 계란 25판을 노끈으로 동여매며 말했다. 그는 “손님들한테 살충제가 검출된 곳과는 거래를 안 하다고 못에 귀가 박히도록 말해도 안 믿는다”며 “원래 7500원에 팔던 30구계란 값이 6200원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그는 계산대 옆에 넣어뒀던 종이봉투를 주섬주섬 꺼냈다. 두툼한 손가락으로 70~80여장이 넘는 살충제 검사결과 증명서를 넘기는 박 씨는 힘이 빠져 보였다.

“여기 있는 증명서 나눠줘도 소용없어. 대형마트는 친환경ㆍ일등급ㆍ동물복지 계란이라도 팔지, 재래시장에는 안 들어와. 친환경 농장은 계란을 대량 생산하지도 않는데 대형마트한테 팔지 우리랑 거래하겠어?”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축이며 박 씨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는 계란 수요가 급증하는 추석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다.

인근 상인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20여년 동안 상회를 운영한 김모(52) 씨는 “여기 상인들 상회든 축산이든 예전에는 계란 들여놓고 팔았었는데 지금은 취급도 안한다”며 “그래도 나는 계란이 판매하는 여러 품목 중 하나라 상관없는데 계란만 파는 사람은 미치는거지”라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소규모 계란 판매점을 운영하는 박정수(66) 씨가 봉투에 모아뒀던 살충제 검사결과 증명서를 꺼내 한장한장 넘기고 있다. [사진=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실제로 이날 김 씨가 운영하는 상회 외에는 계란을 판매하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그는 “안전한 계란을 판매해도 손님들이 외면한다”며 “단골손님한테만 팔려고 계란 10판 정도만 진열해 놨다”고 했다. 살충제 달걀 논란이 불거지기 이전 김 씨는 하루에 계란 40~50판을 팔았다. 이날 오후 2시께 김 씨가 판매한 계란은 2판에 불과했다.

이처럼 사람의 간, 신장 등을 망가뜨릴 수 있는 살충제 ‘피프로닐’이 계란에서 검출된 사실이 알려지자 소비자들의 불신이 확산되면서 전통시장에는 발길이 뚝 끊겼다. 자체적으로 제품 안전성을 확인하고 동물복지 특란, 일등급란 등 최고급 계란만을 엄선해 들여오는 대형 유통업체와 달리 전통시장은 계란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물가정보사이트를 통해 서울시내 52개 대형마트와 51개 전통시장의 계란 물가(30개 기준)를 확인한 결과,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계란 판매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뚜렷했다.

21일 기준으로 전통시장 중 30구 계란 가격이 제일 높은 곳은 상계중앙시장으로 1만500원이었다. 전통시장 51개를 모두 확인해도 비고에 동물복지, 1등급란을 취급한다고 명시한 곳은 없었다.

반면 대형마트 52곳 중 30구 계란을 가장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곳은 롯데백화점 강남점으로 1만7800원이었다. 전통시장 최고가와 무려 7300원 차이가 나는 셈이다. 1등급 특란, 동물복지특란 등을 취급하는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1만2500~1만7800원 선에서 30구 계란을 판매하고 있었다.

한편 아직 계란 소비는 여전히 살아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계란 판매가 재개된 16일부터 22일까지 이마트 전국 점포의 계란 매출은 2주 전에 비해 평균 43.2% 감소했다. 다른 대형마트도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황에서 전통시장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은 더욱 뜸해질 것으로 보인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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