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면제.. 남자 무용수, 극한을 춤추다

2017. 8. 24.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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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격한 단어들은 현대무용 콩쿠르에서 남자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고난도 테크닉을 일컫는다.

3~4분밖에 되지 않는 콩쿠르 무대에서 다른 무용수들보다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심사위원의 눈에 띄는 강력한 '한 방'을 선보여야 한다.

권령은은 이 작품에서 콩쿠르와 군대라는 제도의 옮고 그름을 주장하기보다 그 제도 안에서 남자 무용수들의 몸이 '어떻게 편집되고 다듬어지는지' 그 방식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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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픽업스테이지 '글로리'

[서울신문]미사일, 핵폭탄, 스콜피온, 앞찢기, 옆찢기, 백공….

이 과격한 단어들은 현대무용 콩쿠르에서 남자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고난도 테크닉을 일컫는다. 3~4분밖에 되지 않는 콩쿠르 무대에서 다른 무용수들보다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심사위원의 눈에 띄는 강력한 ‘한 방’을 선보여야 한다. 이 ‘한 방’을 얻기 위해 극도로 몸을 갈고닦는 과정에서 무용수들은 고통에 내몰린다. 유독 남자 무용수들이 콩쿠르에 집중하는 이유는 주요 대회에서 수상해야 예술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 복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에 나와 유명해진 현대무용수 안남근(31)도 병역면제 혜택을 위해 4년간 8차례 콩쿠르에 도전했다. 무대에서 돋보이는 ‘마른 몸’을 만들기 위해 극한의 다이어트를 했던 그는 때때로 음식을 먹고 죄책감에 시달려 토하기 일쑤였다고 털어놓았다.

안남근(왼쪽)이 남자 무용수로서 군 입대라는 현실적 고민을 앞두고 콩쿠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춤으로 풀어낸다.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이렇게 콩쿠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그는 “군대에 간다는 것은 곧 무용을 그만둔다는 의미였다. 군대에 가면 아예 몸을 쓸 수 없으니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도태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콩쿠르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안남근의 이야기를 토대로 현대무용수이자 안무가인 권령은(35)은 대한민국 모든 남자 무용수의 고민을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25~2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글로리’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국내외 안무가 초청 프로그램인 ‘픽업스테이지’ 두 번째 시리즈에 초대된 작품이다.

‘글로리’를 만든 안무가 권령은. 무용수로서 거식증을 앓았던 고통을 녹여 만든 ‘몸멈뭄맘’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국립현대무용단 제공

권령은은 이 작품에서 콩쿠르와 군대라는 제도의 옮고 그름을 주장하기보다 그 제도 안에서 남자 무용수들의 몸이 ‘어떻게 편집되고 다듬어지는지’ 그 방식을 추적한다. 작품 속에서는 안남근의 경험뿐만 아니라 실제로 성창용, 이용우, 이원국, 김설진 등 남자 무용수들이 본인들만의 ‘필살기’를 선보여 과거 콩쿠르에서 우승한 ‘역사’가 언급된다. 여성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예민한 군대를 주제로 한 것과 관련해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제 친구, 선배, 후배의 이야기이고 내가 무용계에 있는 한 어떻게든 나와 연결돼 있는 일”이라면서 “제도의 부당함을 따지거나 콩쿠르용 춤을 추는 남자 무용수들을 비판하기 위한 작품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그는 “콩쿠르에서 선보이는 춤은 규격화돼 있다. 춤이 기능적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면서 “과연 제도가 원하는 춤이 진짜 춤인지, 무용수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몸을 억압하고 가학적으로 대하는지 그 태도에 대해 묻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글로리’는 권령은이 다이어트와 거식증 등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2년 전 발표했던 ‘몸멈뭄맘’의 주제를 확장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무용을 배우면서 끊임없이 몸을 통제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경험은 춤과 무용수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으로 이어졌고, 그 고민은 영감의 원천이 됐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가 끝나고 무용학원에 가기 전에 배가 너무 고파서 음식을 정신없이 먹은 다음에 토하는 일을 반복했어요. 선생님들이 조금만 살이 쪄도 저를 혼내시곤 했는데, 제 몸 상태가 곧 대학 입학과 직결되기 때문이었죠. 몸이 속으로 망가지는 줄 모르고, 그저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에만 치중했던 거죠. 사실 건강한 사람이야말로 건강한 춤을 출 수 있잖아요. 단순히 잘 돌고, 잘 뛰고, 다리를 잘 드는 게 아름다움의 기준은 아니거든요. 춤은 좀더 쉽고, 인간적이어도 된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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