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뉴스 소비의 한국적 창의성

이상언 2017. 8. 2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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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없는 독창적 네이버 '뉴스 백화점'
'창의적 포털의 역설'이 사고의 다양화 저해
이상언 사회2부장
피곤함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 얼굴로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맞은 뒤 커피 기계로 발걸음을 가볍게 옮긴다. 사랑의 기쁨에 빠진 주인공을 표현하는 영화 장면 또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져다줄 것처럼 포장한 아파트 광고에서 본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겪는 아침과는 아주 다르다. 그래서 영화가, 광고가 된다.

현실 속 풍경은 이렇다. 푸석푸석한 얼굴로 눈을 뜨고 희미한 시야 속에 있는 스마트폰을 본다. 처음으로 손에 쥐는 물건은 커튼·창틀·커피잔이 아니고, 바로 이 물건 스마트폰이다. 간밤에 마지막으로 손에 쥐었던 물건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충전기에서 분리한 뒤 잠시 문자메시지·카카오톡 메시지로 뭐가 와 있나 본 뒤 네이버 또는 페이스북을 연다. 화장실로 들고 가기도 한다.

집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지참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것도 이 물건이다. 없으면 세상과 단절된다. 그때부터 직장에 도착할 때까지 지하철·버스·택시 안에서, 혹은 승용차 운전석 옆 또는 뒷자리에서 알아야 할, 알고 있으면 좋을, 모르면 ‘왕따’될 것 같은 뉴스들을 열심히 소비한다.

네이버는 참으로 신통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마찰, 북한 도발 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응, 대형마트 계란 판매 재개, 수도권 폭우 예상 등 여러 언론사가 만든 뉴스 중에서 ‘알짜’를 골라 첫 화면에 보여 준다. 친절하게도 새벽 5시에 교도소에서 출감한 전직 국무총리 소식까지 전해 준다.

국정 농단 사건 수사와 대통령 탄핵 사태 때 몇몇 종이신문의 구독자가 줄었다. 대통령 비판을 못마땅해하는 이들 중 일부가 쏟아져 나오는 관련 기사를 보는 게 힘겨워서 또는 해당 신문사에 대한 항의 표시로 절독했다는 게 언론계 해석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들 중 상당수는 뉴스 포털과 스마트폰의 신통함을 뒤늦게 깨닫고 종이신문과의 인연을 끊었을지 모른다. 당시에 중·장년층의 카카오톡에서는 이런 대화가 자주 오갔다. ‘이런 거(해당 메시지 위나 아래에 붙여 놓은 뉴스) 봤어?’ ‘그런 게 있었네.’ ‘네이버에 다 있어.’ 스마트폰에는 활자를 크게 보이게 하는 기능이 있다. 바탕의 밝기도 조절할 수 있다.

갑자기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영국인들은 BBC 방송이나 데일리메일 등 언론사의 인터넷 사이트·애플리케이션(앱)을 열어 뉴스를 본다. 프랑스인들도 제각기 선호하는 언론사에 우선 접속한다. 미국인들도 그렇다. 구글이나 야후도 뉴스를 모아 보여주기도 하지만 신속하고 일목요연하게 전달하는 보도 기능은 갖고 있지 않다. 네이버와 같은 ‘뉴스 백화점’이 외국에는 없다.

왜 그럴까? 포털의 편리함과 쓸모를 모르는 것일까? 한국의 포털 창업자처럼 사업가들이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해서일까? 외국에 뉴스 백화점 포털이 생기면 당장 법적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언론사가 아닌데도 언론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뉴스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보도할 뉴스를 고르고, 위치와 크기로 중요도를 표시하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한국의 포털은 언론사로 등록돼 있지 않다. 네이버는 인공지능(AI)이 전달할 뉴스를 선택하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래도 AI의 선별 공식은 사람이 입력하는 것이기에 이 논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특정 업체의 뉴스 유통망 장악도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는 모든 영역에서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가 있다. 한국에서는 뉴스 유통의 약 70%를 포털이 차지하고, 그중 70% 정도가 네이버 몫이다.

한국인들은 남다른 생각을 갖기 어렵게 자라고 늙어간다. 어렸을 때는 교과서와 EBS 교재를 경전처럼 달달 외우고, 커서는 포털이 정리해 놓은 ‘주요 뉴스’를 통해 세상을 본다. 꼭 알아야 할 기출문제가 교재에 실려 있듯이 네이버에는 순위가 달린 ‘많이 본 뉴스’도 있다. 창의적 포털의 역설이고, 한국 언론의 비극이다.

이상언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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