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요일에 푸는 해장傳]길거리의 해장 어묵탕의 생명

김철현 입력 2017. 8. 2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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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속 풀어주는 해장 음식을 찾아서..(15)어묵탕

바야흐로 해장의 시대다. 저간에 벌어지는 일들, 신문 지면을 장식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죄다 서민들 맺히게 하는 것들뿐이니 그저 시원한 해장국 한 그릇이 절실하다. 해장국의 원래 이름은 숙취를 풀어준다는 해정(解酊)국이었지만 이제는 답답한 속을 풀어준다는 해장(解腸)국으로 이해된다. 그렇다고 쓰린 배 부여잡고 아무 데서나 해장을 할 수는 없다. 정성껏 끓인 해장국 한 그릇은 지친 삶을 견디기 위한 한 잔 술 다음에 놓인다. 고단한 일상에 위안이자 어쩌면 유일한 호사다. 허투루 이 한 그릇을 대할 수 없는 이유다. 해장의 시대, 삶의 무게 깃들어 땀내 서린 해장 음식을 찾아 나섰다.

길거리 오뎅(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길에 서서 종이컵으로 마신 해장국 = 거나하게 취한 어느 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붙잡는 것이 더 이상 '한 잔 더'의 유혹이 아닐 즈음, 하지만 그냥 가기엔 함께 밤을 지새운 술벗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운 그 시간 우리는 어디로 갈까. 가게에 자리 잡고 요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얼른 들어오라는 성화에 시간은 충분하지 않을 때 어묵 한 꼬치 먹을 수 있는 노점을 발견하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옹기종기 모여 서서 주글주글 주름 잡혀 꽂힌 어묵이든 동그랗고 긴 어묵이든 하나 집어 들면 넌지시 건네는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국물은 어쩌면 늦은 밤의 취기를 싹 가시게 하는 길거리의 해장국이다. "큼직한 무 토막을 비롯해 갖은 재료 넣고 하루 종일 끓인 이 시간의 어묵 국물은 진하고 시원하지 않을 수 없겠지"라고 듣는 이 없어도 말을 하게 된다. 서서 먹는 그 맛이 비록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전해지는 온기는, 치열했기에 더욱 고단한 그날에 마침표를 찍기 충분하다.

◆오뎅, 오뎅탕? = 이 길거리 음식을 부르는 말은 '오뎅'이다. 오뎅은 어묵의 일본말이라고 흔히 여긴다. 주점 메뉴판에서도 어묵탕을 버젓이 오뎅탕이라고 쓴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어묵과 오뎅은 다르다. 어묵은 생선살을 으깨 만든 음식인데 일본어로는 '가마보코(かまぼこ)'다. 오뎅(おでん)은 이 어묵과 계란, 무, 유부, 소 힘줄 등이 들어간 국물요리다. 이를테면 어묵탕이 오뎅인 것이다. 오뎅탕은 잘못된 말인 셈이다. 오뎅은 요리의 이름인데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의 이름으로 와전됐다.

그렇다면 어묵은 어쩌다 오뎅이라고 불리게 된 것일까. 음식인문학자 주영하는 '식탁 위의 한국사'에 일본에서 가마보코에 대한 기록은 16세기 초반에 쓰인 '종오대초자'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썼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숙종(1661 ~ 1720)의 어의 이시필이 쓴 글에도 이 가마보코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무렵 일본 음식 가마보코가 국내에도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따르면 해방 후인 1949년에 일본 음식 이름을 한글로 고쳐야 한다며 가마보코는 생선묵, 오뎅은 꼬치안주로 하자는 한글학회의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뎅의 주재료인 가마보코가 바로 오뎅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면서 오뎅은 꼬치안주, 꼬치 등으로 순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자리 잡지 못했고 가마보코는 생선묵을 거쳐 어묵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결국 오뎅과 어묵이 같은 말인 것처럼 쓰이게 됐다는 설명이다.

◆어묵탕이라고 하든 오뎅이라고 부르든 생명은 국물 = 어묵탕, 혹은 오뎅이 해장 음식일 수 있는 것은 그 국물 맛에 있다. 으깬 생선과 여러 재료가 오랜 시간 어우러져 스며든 국물은 술에 취한 속을 부드럽게 달랜다. 국물 한 숟가락과 그 국물 배어든 어묵을 같이 씹다보면 담백하지만 한편으로는 풍성한 맛이 혀를 감싼다. 입안을 가득 채운 이 한입을 넘기면 어느새 취했던 기억도 목구멍 너머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언론인 홍승면 선생도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 잡지에 연재했던 음식 칼럼 '백미백상'에 오뎅에 대해 "삶은 요리이고 보면 맛의 생명은 재료와 국물에 달렸다. 재료에 대해서는 굳이 거론할 것이 없지만 국물에 대해서는 시간을 강조하고 싶다"고 썼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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