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닫은 아프간, 손떼는 시리아..미 전술의 승자는 아사드

김보미 기자 2017. 8. 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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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리아 정부군이 지난 9일(현지시간) 반정부군 장악 지역인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동부의 조바르에 공습을 가하면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AFP연합뉴스

미국은 깊은 개입을 선언한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달리 시리아 내전에선 손을 떼는 양상이다. ‘공공의 적’ 이슬람국가(IS)와 자국민 학살 혐의를 받는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얽혀있는 시리아의 상황은 미국에겐 딜레마인 탓이다. 미국이 망설이는 사이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승기는 역설적이게도 모순의 진원인 아사드 대통령이 잡게 됐다.

7년째 접어든 시리아 내전은 최근 국면 전환을 맞았다. 핵심엔 아사드가 이끄는 시리아 정부군의 동진(東進)이 있다. 특히 아사드의 목표는 데이르에조르다. 이라크와 국경을 맞댄 요충지로 최근까지 이슬람국가(IS)의 최대 거점이기도 했다. 정부군은 수도 다마스쿠스가 있는 서부에선 우세였지만 북서부 이들리브와 홈스나 수도 동쪽은 반정부군이 장악하고 있고, 특히 동부는 몇년간 IS가 득세였다.

전세는 2015년 9월 러시아가 IS 격퇴를 위해 정부군 지원에 나서면서 역전됐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22일 “아사드가 공세에 나선 데이르에조르 전투를 돕기 위해 러시아 전투기가 이 지역으로 들어가는 IS 차량 20대를 공습으로 격추해 전투원 200여명을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내전 이후 여러 진영 세력 분포.경향신문 자료사진

반면 아사드에 맞선 반군을 지원해 온 미국은 발을 빼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3년 미 중앙정보국(CIA) 프로그램을 통해 반군인 자유시리아군(FSA)에 무기 등을 지원하고 요르단과 터키, 걸프의 아랍국들과 합동작전을 펴 북서부에서 정부군과 맞설 수 있도록 도왔다. 내전 종식을 위해선 아사드 퇴진이 우선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아사드가 화학무기로 자국민 살상에 나서면서 서방의 다른 국가들과도 공감대를 이뤘다.

그러나 IS의 등장은 변수가 됐다. 아사드보다 더 큰 ‘악의 축’인 IS 격퇴가 우선순위가 된 것이다. 이달 초 미 특수부대가 레바논군과 훈련 중이라는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의 보도는 미국의 딜레마가 응축돼있다. 레바논군은 미 국무부가 테러조직으로 규정한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치조직 헤즈볼라와 별개로 생각하기 어렵다. 테러조직 소탕을 위해 미국이 테러조직과 손을 잡은 셈이다. 로이터는 “아사드의 동진은 2년 전 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며 “서방의 딜레마가 깊어지면서 가능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CIA 작전은 “돈 낭비”라며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하면서 반군은 사기도, 세력도 약해졌다. 특히 트럼프는 시리아 사태에서 러시아와 협력을 강조했고, 양국은 지난 7월 시리아 남서부에서 휴전도 선언했다. 지난 4월 트럼프는 아사드의 화학무기 사용에 정부군 공군기지 공습으로 보복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 미국이 주축이 된 연합군은 IS 격퇴에 집중할 뿐 정부군과 대치하지 않는다. 미국이 주춤한 사이 러시아의 영향력은 훨씬 커졌다. 러시아 당국은 8월에만 시리아에서 공습 작전 990건을 벌여 장갑차 40대, 트럭 100여대를 파괴하고 IS 전투원 800여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공조는 또 다른 위험성도 내포한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수니파 아랍국들은 미국이 러시아-이란과 함께 (시리아 정부군이 수니파에 저지른) 잔학행위에 연루돼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가 보도했다. 특히 이란은 지난 6월 IS가 자국에서 일으킨 테러에 대한 복수로 데이르에조르로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시리아에서의 군사행동을 공식화한 상황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자국 외교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아사드는 이 자리에서 서방과의 안보협력을 거부하는 한편 러시아와 이란, 중국과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치조직 헤즈볼라의 지원에 감사의 뜻을 밝혔다. 시리아 대통령 페이스북

문제는 서방의 퇴진압박이 사라지면서 아사드가 권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지난 20일 아사드가 자국 외교관들을 불러다 놓고 “테러리즘과 연계를 완벽하게 끊은 나라가 아니면 협력하지 않겠다”거나 “시리아에 대사관을 다시 열려면 반군지지를 중단하라”고 밝히며 미국 등 서방을 ‘저격’한 것은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우리는 그들(서방)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립돼 있지 않다”며 “그건 그들의 오만함”이라고도 했다.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최고액 신권까지 발행한 아사드는 외국의 투자 유치에도 나섰다. 휴전이 이뤄진 남서부 지역은 국제사회 지원으로 곧 재건이 이뤄질 것이라며 무역박람회도 준비하고 있다. 카네기중동센터의 모하나드 하게 알리는 “아사드는 이번 ‘대기 게임’(상황을 지켜보며 결정하는 게임·waiting game)의 주인(master)”이라며 “시간은 아사드 편”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그러나 33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난민 760만명을 낳은 내전의 원죄는 아사드의 발목을 잡는다. 화학무기 등을 이용한 학살 혐의를 받는 아사드를 서방에서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WINEP) 앤드류 태블러는 “아사드는 대(對) IS 전투를 통해 정권의 적법성을 다시 얻고 재건 자금으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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