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들이 모두 떠난 나의 고향, 남은 건 흉물 뿐

김민수 2017. 8. 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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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거여동재개발지구, 언제까지 이렇게 둘 것인가?

[오마이뉴스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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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여동재개발지구 2017년 8월 22일, 거여동재개발지구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 질질 끌던 재개발사업이 머지않아 재개될 듯 동네는 텅 비었고 골목마다 쓰레기와 잡초가 무성했다. 재개발조합과 여전히 갈등을 하고 있는 이들의 절절한 구호는 대로변과 재개발지구 사이를 구분하는 펜스에 빛바랜 붉은 락카로 남아있다. 빛 바랜 만큼, 재개발을 결사반대하던 이들의 목소리도 잦아진 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많은 듯했다. 재개발조합과 보상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이들 간의 양보없는 대립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사람들이 떠난 곳은 잡초만 우거졌다.
ⓒ 김민수
사람들이 떠난 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사람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던 때에는 이렇게 무성하게 자라지 못했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채우는 잡초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 하는 것인가 싶다.

듬성듬성 피어나던 잡초들은 무성하고, 그들이 무성한만큼 사람들이 살던 흔적들은 지워지고 있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또 잡초의 흔적을 없앨 것이고 그들은 또 깊은 어둠 속에서 침묵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텅빈 거리, 한때 북적거렸던 이발관도 이젠 휼무스럽게 남아있을 뿐이다.
ⓒ 김민수
명절이면 북적거리던 이발관도 올해 초 만해도 영업을 하는 듯했는데, 더는 찾아올 손님이 없는지 폐업했다. 사람들이 떠난 그곳의 하늘은 무심하게도 푸르고 맑아서 더욱 슬프다.

거여동재개발지구를 관통하던 중앙로에 해당하던 그 길도 서서히 갈라져간다. 여느 집들처럼 이 길도 '보수'는 없을 것이다. 재개발지구에 묶이면서, 증개축이 모두 금지되자 그곳은 급속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혹여 이곳이 남아있어 겨울에 걸을지라도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는 어느 골목에서도 맡지 못할 것이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지붕조차도 무너져 내리고 있는 그곳, 더는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 김민수
건물 중 유일하게 새롭게 변경된 주소표지판만 새 것이다. 저 '딱지', 그것이 하나의 징표였던 것이다. 그곳 몇 번지에 살고 있어서 주어진 권리, 그것이 과연 공평하게 주어졌는지는 의문이다.

서로 이익만 탐하는 사이에 마을만 망가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망가졌다. 이제 이익을 위해서 이합집산할뿐, 자신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침해하면 누구든 적이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사람들이 떠난 집은 덩굴식물이 기세좋게 자라나고 있다.
ⓒ 김민수
절망의 벽도 넘어버리는 담쟁이덩굴처럼, 나팔꽃 덩굴이 절마의 골목을 뒤로하고 지붕까지 올랐다. 한낮이라서 그런지 꽃은 없다. 피었다 진 꽃의 흔적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이파리만 무성한 듯하다. 아직 꽃을 피워낼 제 철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꽃 피지 못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죽은 생명, 어쩌면 거여동재개발지구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다 때려 부수고 성냥갑마냥 지어질 아파트에서 어떤 이웃과의 더불어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람 사는 곳이되 사람 사는 정이 없는 곳, 그것이 요즘의 재개발로 지어지는 아파트촌의 현실이 아닌가?

▲ 거여동재개발지구 그들은 그곳에서 어떤 위안을 받았던 것일까?
ⓒ 김민수
그곳에는 이런저런 종교시설이 많이 있었다. 대부분 보상금을 받고 떠났고, 재개발지구의 나이보다 더 오랜 세월을 보낸 종교시설만 남아 재개발조합과 협상 중이다. 그러나 그 협상의 과정은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 주던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재개발이라는 것의 사악함은 여기에 있다. 재개발을 통해서 오로지 이익만을 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 손해를 보느니 차라리 공멸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 밀어 부치면 될 것이라는 생각, 서로에게 이런 생각을 심어주어 외길에서 마주보고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게임의 끝에서 웃음짓는 자는 누구일까?

▲ 거여동재개발지구 거여동재개발지구의 중심지였던 그곳에도 이젠 사람이 없다.
ⓒ 김민수
동네가 생긴 이후 사랑방 구실을 하던 곳이다. 재개발지구 중심에 해당하는 곳으로, 내 기억으로는 동네가 생긴 이후로 단 한 날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은 날이 없었다. 재개발지구로 지정이 된 후에도 언제나 그곳엔 주민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던 곳이었다.

때론 나이든 노인분들만 나와 무료하게 앉아있을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그곳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었다. 탁자 위에 놓인 것 중에는 젓갈도 있었다. 그마저 상해버렸다. 행색으로 보아 이곳에 사람의 발길이 끊긴 것은 근자의 일인듯 했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이제 그곳조차도 사람이 살지 않는다.
ⓒ 김민수
그 많은 쓰레기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라는 입간판은 절규처럼 들려왔다. 눈으로 보면서도 환청을 듣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곳 조차도 사람은 떠났다. 이제 거의 완벽하게 사람들은 떠났다. '거의'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잡풀 우거진 골목사이로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재개발지구 건너편 아파트가 미래 그들의 모습일까?
ⓒ 김민수
그들의 꿈은 저 너머 반듯한 아파트 같은 것이었으리라. 처음 재개발지구로 선정된다는 소문이 들었을 때 투기꾼들이 몰려와서 한탕 치고 나간 후에도 여전히 번듯한 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아파트가 들어서도 살 수 없음에 좌절했을 것이다.

개발의 논리와 법의 잔인성을 미리 간파한 이들은 보상금을 받아 서울에서 더 먼 곳으로 일찌감치 떠났다. 그리고 아방궁은 아니더라도 새 집을 주어 그곳에 살게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던 이들도 더는 살 수 없어 떠났다.

그리고 대다수는 아파트가 새로 지어진들 그곳에 입주할 능력밖에 있다. 그들은 새로 아파트를 지어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그냥 그곳에서 살고 싶을 뿐이라고 했는데 개발비와 오를 땅값을 부담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거부하면? 그냥, 밀어 부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법이란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사람들이 떠난 그곳에서도 조화는 여전히 시들지 않았다.
ⓒ 김민수
거여동재개발지구는 현재 종교단체와 재개발조합 간에 갈등에 봉착해 있다. 이달 안에(24일) 송파구청에서 재개발인가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그 입장에 따라 울고 웃는 이는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합법이든 불법이든 밀어부치기식으로 개발이 된다면 큰 상처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릴적 뛰어놀던 내 마음의 고향, 그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슬프기만 하다. 더 허물어진 건물 한 쪽에 놓인 조화가 너무 화사하다. 시들지도 못할 놈의 가짜 꽃, 벌 한 마리 찾아오지 않는 가짜 꽃, 언젠가 퇴색되어 사그라질 가짜 꽃, 재개발의 미래를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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