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태생 네이버에 '재벌잣대' 적용..바람직한가?

이수호 기자 2017. 8. 2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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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일가 네이버 지분 '0'..순환출자 구조도 없어
"재벌잣대로 규제하는 것 불합리..좋은 본보기 삼아야"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이수호 기자 =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지분 11만주를 매각하면서까지 '총수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해줄 것을 강력 어필한 가운데, 벤처·IT업계에서는 총수지정 기준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네이버는 8월말이면 국내 자산총액 5조원을 넘겨 '준대기업집단'에 편입된다. 공정거래법상 준대기업집단에 편입되면 '동일인(총수)'를 지정해야 하고, 총수와 오너일가는 모든 지분거래를 공시해야 한다. 이해진 창업자는 자신이 총수로 지정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이미 전달한데 이어, 지난 22일 밤 지분 11만주를 매각하며 자신이 총수가 아니라는 뜻을 다시한번 표명했다.

이해진 창업자는 보유주식 11만주(0.33%) 매각으로 네이버 지분이 4.74%에서 4.31%로 줄어들었다. 그동안 이해진 창업자는 지분이 낮아 경영권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항상 4%대의 지분만 유지해왔다. 지난해 7월 라인 상장 기자간담회에서도 "돈으로 지분율을 높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제가 일을 열심히 해서 경영권을 지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때문에 이해진 창업자의 이번 지분매각은 새삼스럽지 않다는 반응도 적지않다. 시간외매매(블록딜)가 한차례 실패했는데도 할인율을 높여가며 이틀 연속 블록딜을 시도한 것은 이해진 창업자가 앞으로도 언제든 지분을 추가 매도할 가능성도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벤처·IT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총수 지정의 취지가 재벌의 내부거래와 일가의 사익편취를 감시하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인데 이를 벤처에서 성장한 대기업에 그대로 들이대는 것은 규제목적과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는 "네이버는 이미 창업자 지분이 적고, 대표와 의장이 각기 다른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든 만큼 좋은 사례로 삼아 발굴·지원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21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해진 창업자를 네이버 총수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 행사여부'를 기준으로 살펴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냈다. 네이버의 경우, 창업자의 지분이 4%대에 불과해 '소유지분'보다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해진씨가 네이버에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더라도 기존 재벌처럼 권한을 휘두르고 있느냐는 점이다. 이해진씨는 본인 지분 4% 외에 네이버 지분을 보유한 일가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룹 지배력을 위해 순환출자를 한 구조도 아니다. 계열사도 모두 네이버가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들이다. 특정 개인이 지분을 가진 계열사가 없다. 그런 점에서 다른 대기업들과 지배구조가 크게 다르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총수 지정 규제는 한국식 재벌을 감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총수일가의 공시 의무는 투명성 측면에선 좋은 취지지만, 네이버 내에서 지분이 4%에 불과한 이해진 창업자가 과거 재벌과 같은 악습을 행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ICT 기업의 경우, 총수 지정 규제가 해외사업 및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해진 창업자는 지난해 이사회 의장에서도 물러나 해외투자책임자(GIO)라는 직함으로 해외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네이버 경영총괄은 한성숙 대표가 맡고 있고, 이사회 의장은 네이버 지분이 없는 변대규 휴맥스 회장이 맡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는 지난 5월, 롯데그룹의 총수 지정 과정에서도 기업의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신동빈 회장 대신 소유지분이 많은 신격호 전 회장을 지정한 바 있다"며 "상황에 따라 다른 잣대로 기업을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lsh5998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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