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전세기 타고 세계여행까지.. 가상현실에 푹 빠진 일본

도쿄=이동휘 특파원 2017. 8.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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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천국 꿈꾸는 일본]
- 도쿄 신주쿠 VR게임장
기모노 여성, 탱크 몰며 환호성.. 옆에선 드래곤볼 장풍쏘기 열중
- 1년새 10배로 커진 日 VR시장
우주 영상 보며 자전거 타고 VR 전세기는 매번 만석
의료·부동산으로 영역 넓혀

지난 20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구에 있는 '브이알 존(VR ZONE)' 신주쿠. 3300㎡ 공간에 가상현실(VR) 게임기 100여 대가 설치된 이 게임장에 들어서자 기모노를 입은 20대 여성 2명이 VR 고글을 쓰고 탱크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이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격렬한 탱크 전투가 벌어졌던 전장(戰場) 한복판. 적군의 포탄이 날아오자 한 여성이 "야바이(위험해)~!"라고 소리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포탄에 맞은 순간 기계가 실제처럼 '쿵' 하고 흔들렸다. 시속 70㎞로 달리면서 방향을 바꿀 땐 몸이 한쪽으로 쏠려 간신히 조종간을 잡고 버텨야 했다. 5분 뒤 다리가 풀린 채 게임기에서 내려온 이들은 '휴~' 하고 숨을 내뱉었다.

도쿄=이동휘 특파원

옆 코너에서는 다른 방문객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의 캐릭터가 돼 '장풍(掌風)'을 배우고 있었다. 이들은 VR 고글을 쓰고 만화 속에 들어간 뒤, 손과 발에 부착한 센서로 캐릭터를 움직였다. 회사원 시부에 후유미(여·24)씨는 무릎을 구부리고 양손을 오른쪽 옆구리에 모아 '기(氣)'를 모으는 동작이 익숙하지 않은 듯 연방 장풍 쏘기에 실패했다. 세 차례 시도 끝에 성공한 그는 "만화 속 주인공이 되는 신기하고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곳은 한 시간에 300~400명씩 하루 11차례만 입장을 허용한다. 지난달 문을 연 뒤로 연일 매진을 기록 중이다. 일본 도쿄에는 이런 VR 게임장이 10여 군데 있는데, 다른 곳도 붐비긴 마찬가지이다. 게임은 물론 피트니스, 여행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급속히 성장하는 일본 VR 산업의 한 장면이다.

'주춤' 세계시장… '꿈틀'대는 일본

20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구에 있는 ‘브이알존(VR ZONE) 신주쿠’를 찾은 일본인들이 가상현실(VR) 고글을 낀 채 게임을 즐기고 있다. 왼쪽부터 차례로 가상현실에서 전투 탱크 조종 체험을 하고 있는 방문객,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체험하는 방문객, 일본 애니메이션 ‘드래곤볼’ 주인공인 손오공이 돼 장풍(掌風)을 쏘는 방문객. /도쿄=이동휘 특파원

지난해 전 세계 VR 산업 규모는 당초 49억달러(약 5조58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실제로는 38억달러(약 4조3300억원)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만의 HTC나 일본의 소니가 내놓은 VR 기기가 아직까지 기술적 한계로 가격이 높고, 관련 콘텐츠도 부족해 세계시장이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세계시장이 기대보다 주춤했지만, 일본 VR 시장은 예상만큼 성장을 이뤄냈다. 2015년 48억엔(약 501억5000만원)에 불과했던 일본 VR 산업은 작년 430억엔(약 4492억7000만원)으로 8배 가까이 늘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곳곳에 생겨난 VR 게임장과 테마파크, 피트니스 센터가 주요 동력이었다"고 분석했다. 코트라 측은 "지속성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게임이나 체험 위주 VR 콘텐츠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VR로 운동·세계여행까지

도쿄 미나토(港)구 롯폰기의 한 실내 자전거 체육관에는 자전거가 5열로 10대 놓여 있고, 그 앞에는 가로 12m, 세로 3m 크기로 120도쯤 휜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운동이 시작되면 스크린에 해외 각국 명소는 물론 우주나 다른 행성의 모습을 표현한 VR 영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학생 다나카 유카(여·22)씨는 "영상을 보며 페달을 밟다 보면 외계에 가서 자전거를 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시부야의 한 체육관에는 최근 VR 고글을 쓰고 침대 모양 기계에 엎드려 마치 하늘을 나는 느낌을 받게 하며 운동하는 피트니스가 등장했다.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힘을 줘 날개를 펴고 있어야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전신에 힘을 주게 된다고 했다.

작년 말 도쿄 외곽에 문을 연 'VR 세계 여행사'에는 하루 100명 넘는 '해외 여행객'이 몰린다. 하루 5차례 운행되는 'VR 전세기'를 타면 가만히 앉아서 영국 런던, 미국 뉴욕과 하와이 등을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석은 매번 만석이다. 비행기 실내와 똑같은 인테리어의 방에서 안전벨트를 매고 VR 고글을 끼면 "프랑스 파리로 이륙하겠습니다"라는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결국 '스토리'와 '콘텐츠' 대결

일본 내에서는 '콘텐츠'에 강한 일본이 결국 VR 산업에서 큰 수익을 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일본 야노경제연구소는 올해 1336억엔(약 1조4300억원) 수준인 일본 VR 산업 규모가 2022년 8025억엔(약 8조437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VR 기기 보급률은 높아지고, 가격은 낮아질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를 VR에 접목하면 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도 작년에 같은 의견을 내놨다. 트렌드포스 보고서를 보면, 내년 VR 관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시장 규모는 각각 100억달러 수준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020년에는 소프트웨어(500억달러)가 하드웨어(200억달러)를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작년 12월 기준으로 일본 내 350개 기업이 엔터테인먼트 분야 외에 의료나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VR 콘텐츠 및 기기 제작에 나섰다. 일본 부동산 회사 다이쿄(DAIKYO)는 VR을 이용해 부동산 매물을 현장에서 직접 구경하는 것 같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골드만삭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VR 관련 소프트웨어 시장의 33.1%는 게임 시장이지만, 헬스케어(14.6%)나 라이브 이벤트(11.7%) 등도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코트라 측은 "일본의 강점인 캐릭터와 스토리를 접목한 콘텐츠가 세계시장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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