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숨에 가상화폐 거래 세계 1위 .. 투기판 되나

박현영.고란 입력 2017.08.23. 01:01 수정 2017.08.2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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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장 거래금액 코스닥 넘어서
비트코인서 파생된 BCH 연일 폭등
이틀 새 33만 → 136만원까지 올라
가격 등락폭 제한 없고 연중 개장
"보호 장치 없어 .. 급등락 조심해야"

“한국의 수요가 지난 주말 비트코인캐시(BCH) 가격 폭등을 불렀다.”

CNBC 등 외국 언론이 분석한 BCH의 가격 폭등 이유다. BCH는 지난 1일 비트코인 개발자들과 채굴업자들 간의 의견 차이로 비트코인에서 파생돼 나온 것이다.

자료: 더머클
탄생 초기 등락을 거듭하다 300달러 선에서 안정화되는가 싶던 BCH 가격이 지난 17일부터 급등하기 시작했다. 19일에는 장중 한때 1000달러 턱밑까지 올랐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서는 같은 기간 33만원 선에서 136만원 선까지 폭등했다. 가격 폭등의 방아쇠를 당긴 건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업체인 비트메인의 우지한 대표다. 우 대표의 비트메인이 주도하는 ‘채굴 집단(마이닝풀)’은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량의 20% 안팎을 점유하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가 지난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BCH 채굴 가능성을 암시하는 글을 썼다. 비트메인이 BCH 채굴에 뛰어들면 BCH 채굴량은 급증한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채굴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가격 상승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BCH 가격은 공교롭게도 우 대표의 트윗을 기점으로 상승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상승 쪽으로 방향을 돌린 건 우 대표이지만, 상승 동력에 연료를 공급한 건 국내 투자자다. 빗썸의 19일 하루 거래량은 2조6018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18일 장 마감 기준 코스닥시장의 하루 거래 대금인 2조4300억원보다 많은 규모다. 빗썸의 BCH 거래량과 전체 가상화폐 거래량은 각각 세계 1위다. 가상화폐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19일을 전후해 전 세계 BCH의 거래 중 원화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60% 안팎에 이른다.

17일부터 급증한 분홍색이 전체 BCC 거래에서 차지하는 원화 비중. 자료: 크립토컴페어
한 업계 전문가는 “미국이나 일본, 심지어 중국조차도 몇 년에 걸쳐 가상화폐 시장이 커진데 반해 한국은 올 봄 시장이 급성장 했다”며 “새로 유입된 투자자의 대부분이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세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상화폐 시장은 투기 세력에는 최고의 ‘놀이터’다. 상·하한가 변동폭 제한이 없고, 24시간 365일 열린다. 규제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 받지 못하지만, 규제의 틀에 갇혀 운신의 폭을 좁힐 필요도 없다.

앞서 한국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 1위 파생상품(선물·옵션) 시장의 왕좌를 지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1년 주가지수 선물 거래의 하루 평균 계약 금액은 45조4030억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한탕’을 노리는 이들을 잡겠다고 규제하면서 시장은 지난해 17조원대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업계 전문가는 “규제가 생기기 전 한국의 파생 시장은 거래량 기준으로 압도적 세계 1위였다”며 “지금은 규제 없는, 투기적 성향이 짙은 가상화폐 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어 투자를 하려는 사람은 유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투기 세력이 빠져 나가면 가격이 크게 출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작전 세력의 개입을 의심한다. 특히 글로벌 가격에 비해 국내 가상화폐 가격이 비싸게 거래되는 일명 ‘김치 프리미엄’이 작전 세력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그러나 가상화폐 거래소 측은 “작전 세력은 없다”는 반응이다.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원의 김진형 팀장은 “비정상적인 트래픽 발생 여부를 실시간으로 체크하지만 어떤 이상 움직임도 관찰하지 못했다”며 “현재까지 특정 세력이 가상화폐 시세를 조작하는 경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1% 투자법 유행”=일본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2일 “북한 핵미사일 위기 국면을 맞아 비트코인 가격이 두 배 이상 급등하면서 단기 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들의 먹잇감이 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헤지펀드 사이에서 ‘1% 투자법’이 유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운용자산의 1%를 투자할 경우 통째로 잃어도 큰 손실은 안 되지만 몇 배로 수익이 나면 매우 크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비트코인 거래의 중심이 일본 등지의 개인 투자자에서 미국·영국 등지의 대형 헤지펀드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8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가상화폐 투자로 큰돈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헤지펀드가 이 시점에 투자에 나선 배경에는 북한 리스크가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지난달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국제적 긴장이 조성되면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비트코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신문에 따르면 통상 전쟁 등 유사시 자금 도피처의 대표 격은 금이지만, 헤지펀드는 비트코인을 새로운 도피처로 간주하고 있다.

박현영·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