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지명]사법부 '토대'를 바꾼다

정제혁 기자 2017. 8. 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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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뉴스분석 - ‘진보색’ 사법수장

문재인 정부가 사법부의 ‘토대’를 바꾸는 개혁에 착수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이어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한 의미는 단순히 사법 수뇌부의 ‘진보색’ 강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적쇄신→적폐청산→불가역적 사법개혁을 향한 ‘큰 그림’의 시작이다. 여야 정치권이 사법부 권력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 인적쇄신이 사법개혁 첫 단추

사법부 지각변동은 수뇌부 인사에서 시작됐다. 진보성, 개혁성, 적폐청산 등 세 가지 인선 기준이 눈에 띈다. 소실점은 사법부의 불가역적 개혁이다.

당장 두드러지는 건 세 후보자의 뚜렷한 진보색이다. 김명수 지명자는 진보성향 법조인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법원 내 최대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도 지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의 도화선이 된 곳이다.

김 지명자는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 시절 전교조의 법외노조 효력 중단 결정, 삼성에버랜드 노조원 부당해고 인정 판결, 이적단체 조작 사건인 ‘오송회 사건’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국가 배상 판결 등을 냈다. 이 때문에 김 지명자가 국회 임명동의를 통과해 취임하면 대법원이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좀 더 무게를 실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 양승태 원장 체제의 대법원은 인혁당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액 깎기, 쌍용차 노동자 부당해고 판결 파기환송 등에서 보듯 보수색이 짙다는 평가를 듣는다.

김이수 후보자도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며 약자·소수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소수의견을 여러 차례 내면서 ‘위대한 반대자’로 불린다.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소수의견도 언젠가는 다수의견이 될 수 있다. 나중에 비슷한 사건이 나올 때 한번 소수의견을 내놓은 게 있으면 그 의견을 반드시 다시 보게 되어 있다”는 말을 남겼다. 보수에 치우친 헌재에서 진보적 판결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한 셈이다.

이유정 후보자 역시 진보성향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 사법 적폐청산의 시작

‘사법 적폐’의 핵심은 제왕적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법원행정처를 통해 서열화·위계화된 관료사법구조다. 그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게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동이다.

김 지명자는 지난 3월9일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을 직위해제하라”고 요구했다. 임 전 차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행사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김 지명자는 평소 법원 관료화에 문제의식이 컸다고 한다. 그가 대법원장에 취임하면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 진상규명은 사법부 인적청산과 대법원장 권한 분산, 법원행정처 권한 축소, 사법평의회 설치, 법관대표회의 상설화 등을 요체로 하는 사법개혁 제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 출범 후 백일하에 드러난 검찰 고위 간부의 잇단 비위가 검찰개혁 연료가 된 것과 비슷하다.

■ 사법부 토대를 바꾸는 개혁

가장 주목되는 건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이 몇 가지 제도적 장치 마련이나 진보성향 고위 법관의 확대와 같은 ‘소프트웨어’ 변화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법원의 체질과 문화, 구조, 시스템 등 정부 수립 이후 수십년간 사법부를 떠받쳐온 ‘토대’를 바꾸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지명자가 향후 임명되면 3·4대 대법원장을 지낸 조진만 전 원장 이후 49년 만에 비대법관 출신 대법원장이 된다. 50년 가까이 지속되던 ‘대법관→대법원장’ 임명 관행을 단박에 허문 것이다.

김 지명자는 양승태 대법원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13기나 낮다. 그런 만큼 사법부의 대대적인 세대교체는 불가피하다. 법원 내부에서 그의 지명을 두고 “파격을 넘어선 충격” “정부 수립 이래 (사법부에 대한) 가장 혁명적 조치”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인적청산, 제도개혁, 세대교체가 세 박자로 맞물려 돌아가는 사법개혁은 역진이 불가능하다. 사법부의 근육과 핏줄, 세포에 한번 녹아든 개혁은 정권이 바뀐다 해도 되돌리기 어렵다. 검찰개혁에 가려 ‘개혁 무풍지대’에 머물러 있던 사법부의 견고한 성채가 밑동부터 흔들리는 형국이다.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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