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기술 유토피아의 협박..미래의 행복이 등장하지 않는 진보"

정원식 기자 2017. 8. 22. 21: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서동진 계원예술대 교수, ‘창비’ 가을호에 비판글 “자본계급 대변하는 담론”

정부의 국정과제에서부터 대형서점 매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4차 산업혁명이 배회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무성하지만 담론 자체에 대한 비판은 드문 가운데, 4차 산업혁명 담론이 ‘형편없는 유토피아적 서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온 서동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사진)는 계간 ‘창비’ 가을호에 게재한 글 ‘지리멸렬한 기술 유토피아’에서 “4차 산업혁명은 기술과 미래를 잇는 유토피아적 서사로서 우리가 지금껏 마주했던 것 가운데 가장 형편없고 저속한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4차 산업혁명은 세계경제포럼(WEF)이 2016년 선택한 의제다. 세계경제포럼은 1971년 창설 이래 “초국가적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담론·이벤트를 생산”해왔는데, “4차 산업혁명은 세계경제포럼이 진행한 이데올로기적 캠페인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것”이다.

기술 진보에 의한 자본주의 혁신이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는 기술 유토피아 이데올로기는 몇 차례 ‘산업혁명’을 통해 꾸준히 유지돼 왔다. 예컨대 2차 산업혁명은 “오랫동안 음식을 보관해도 부패하지 않는 신기한 기계가 만들어지고, 집 안에서 버튼을 누르면 뜨겁고 차가운 공기가 나와 냉난방을 해결”하는 등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꿈을 약속했다. 그 약속은 실제로 냉장고와 에어컨 등의 개발을 통해 성취됐다.

4차 산업혁명 담론 또한 유토피아를 약속한다. 한 경제신문이 세계경제포럼 리포트에서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메가톤급 파장을 초래할 혁신적인 변화의 신호탄이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회”라고 규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분야에서의 기술 진보다. 그러나 서 교수는 “(이러한 기술 진보가) 역사적인 대분기를 초래하고 경제를 넘어 모든 분야에 메가톤급 파장을 몰고 올 기술적 혁신이라 강변하는 수사에는 어쩐지 공허하고 자기 패배적인 기운이 드리워져 있다”며 4차 산업혁명에는 기술 진보가 약속하는 미래의 행복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왜 그런가. 2차 산업혁명과 3차 산업혁명은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나 물질적 결핍의 충족을 넘어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했다. 반면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4차 산업혁명의 경우는 “우리는 경악스럽게도 일이 사라진 세계의 문명을 꿈꾸는 대신 일자리가 사라질 때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대비하라는 기술 유토피아의 협박에 직면해 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의 첨단에 서 있는 미국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같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 비약적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허구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 교수는 최근 한국어판이 나온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석좌교수의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를 인용해 기술 진보에 의한 성장은 끝났으며, 변화란 “고작해야 종이로 된 잡지를 대신해 킨들로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웹검색을 하는 정도의 변화일 뿐”이라고 말한다.

서 교수의 결론은 신랄하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세계가 아니라 일이 사라진 세계. 일 대신 자유로운 활동을 하며 풍족한 삶을 기꺼이 누리는 세계. 그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헛된 약속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산업혁명 나부랭이도 아니고 기술 혁신도 아닐 것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