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교육 학자가 오래된 동화책에 빠진 까닭은"

입력 2017. 8. 22. 19:26 수정 2017. 8. 2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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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동화’ 해설서 펴낸 곽한영 교수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곽한영(44)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는 2년 전 캐나다 밴쿠버의 고서점에서 동화 <키다리 아저씨> 초판본(1912)을 우연히 발견했다. 어렸을 때 삽화까지 한 장 한 장 외울 정도로 거듭 읽었던 책이다. 고서점의 책에 실린 삽화들이 어린 시절 마루에 누워 책을 읽던 기억을 꺼내주었다. 이때 느낀 감동은 그가 읽었던 동화책의 옛 판본 사모으기로 이어졌다. 책을 모으면서 동화책에 대한 책도 읽기 시작했다. 그 결실이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고서점에서 만난 동화들>(창비)이란 이름을 달고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부산 자택에 있는 곽 교수와 21일 전화로 만났다.

책은 흥미롭다. <작은 아씨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톰 소여의 모험> 등 10권의 동화에 대해 출간 뒷이야기와 저자의 삶 그리고 시대 배경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자들은 <피터 팬>의 모델이었던 피터의 삶이 왜 자살로 마감됐는지,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 줄거리가 어떻게 저자의 콤플렉스와 연결되는지를 알게 된다. 출간 당시 ‘저질 통속 소설’ 취급을 받았던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 미국 문학사의 고전이 된 데는 한 마을도서관에서 저자의 다른 작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금서로 지정한 게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해준다. <보물섬>의 해적 우두머리 ‘외다리 실버’와 실버를 늘 따라다니는 앵무새 ‘플린트 선장’은 사실 저자(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절친인 소설가 헨리 제임스가 모델이었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의족을 쓰고 매우 수다스러웠던 친구의 모습을 두 캐릭터에 나눠 준 것이다.

<톰 소여의 모험>엔 ‘인전 조’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어릴 적 곽 교수는 그 이름에 의문을 가졌다고 했다. 혹 ‘인디언 조’의 오타가 아닐까? 책을 쓰면서 답을 찾았다. ‘인전’은 인디언을 비하하는 말이었다.

2년전 ‘키다리 아저씨’ 초판 본 뒤
고서점 돌며 옛 동화책 판본 모아
고전 10권 뽑아 저자·뒷이야기 담아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출간

“죽고 싶었던 청소년기 지켜준 책들
로빈후드 등 다룬 속편 해설서 내고파”

“30~40권 정도 모았어요.” 가장 비싼 책은? “<빨간 머리 앤>입니다. 20만원을 줬어요. 초판본 판형인데 상태가 좋지 않아 싸게 샀죠. 상태가 좋은 초판본은 2000만원까지 갑니다.” 구입 원칙은? “제가 읽을 수 있으면서, 초판본의 삽화와 판형을 유지하는 책이죠.” 1932년에 영어로 나온 <안데르센 동화집>의 1977년 복각본을 산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엔 초판본 삽화는 아니지만 그가 안데르센 동화 하면 떠올리는 삽화가 아서 래컴의 그림이 실려 있다. 곽 교수는 서울대 사회교육과에서 법교육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를 받았고, 2008년 부산대 교수로 임용됐다. 교수가 되기 전엔 서울 세화고에서 8년 동안 가르쳤다. 지금도 중학생과 초등생인 두 자녀와 함께 집 주변 금정도서관을 2주마다 찾는다. “가족 회원이라 20권까지 빌릴 수 있죠. 아이들이 고른 책을 캐리어에 가득 담아 옵니다.”

나이 사십을 넘어 동화에 빠져드는 삶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작품에 대한 애정 때문이죠.” 더 들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청소년기가 어렵고 힘들었어요. 세상은 복잡하게 느껴지고 제가 초라하다고 생각했죠. ‘고3이 되면 죽어버리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그런 시기를 버티게 해준 게 동화책이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동화는? “<작은 아씨들>을 많이 읽었어요.” 책에서도 가장 먼저 다뤘다. “4명의 건전한 아이들과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어머니와 이웃집 할아버지가 <작은 아씨들>에 등장합니다. 안정된 공동체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죠. 이 동화는 제가 속해 있는 가족, 공동체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달래주었어요.”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부재했다. 청소년기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란 영화가 나왔고, 고교생 자살률은 정점에 이르렀다.

책이 나온 다음날 어머니 칠순 잔치를 열었다. “어머니가 우셨어요. 네 덕분에 내가 고교까지 나왔다면서요.” 어머니는 60살이 넘어 야학으로 공부를 시작해 초·중·고교 졸업장을 땄다. 학비는 곽 교수가 댔다. “어린 시절 집에 목공소에서 직접 짠 책장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외판원들에게 책을 사 채워주셨죠. 우리집의 자랑이었어요. 백과사전부터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다 있었어요.”

그는 지난해 공동체의 법규칙과 법의 작동방식을 테마로 한 책을 두 권(<혼돈과 질서> <게임의 法칙>)이나 냈다. “오십이 되기 전에 법을 다룬 책 5권을 더 낼 계획입니다.” 올가을엔 별도로 <중학생을 위한 법>이란 책도 나온다. 그는 “법은 법전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이걸 ‘정의 감각’이라고 했다. “지난 촛불은 정의 감각이 임계점을 넘어 발동된 것이지요. 이 감각을 키우는 게 민주 시민교육의 핵심입니다.”

동화에 대한 책을 더 써볼 계획은? “있어요. 로빈후드는 의적 홍길동을 연상시키지만 정치적으론 보수적이었죠. 스웨덴 동화 <양지 언덕의 소녀>도 어릴 때 많이 읽었어요. 청년이 천사 같은 아가씨에게 상처를 주다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죠. 연애나 사랑을 할 때 이 책이 많이 의지가 됐어요. 읽을 때마다 마음을 졸였거든요.”

요즘엔 <뽀로로> <번개맨> 같은 영상이나 게임이 동화 대신 아이들에게 환상을 준다고 했다. “요즘 부모들은 식당에 가면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쥐여줍니다. 게임 하면서 조용히 있으라는 것이죠. 좋다, 나쁘다를 떠나 게임을 통해 만들어진 정서나 의식이 어떤 것인지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지금은 대개 부정적으로만 보고 손을 놓고 있어요.”

어떤 동화가 고전이 되는 걸까? “<작은 아씨들>도 작가의 가족 얘기고, <곰돌이 푸>는 작가의 아들 얘기입니다. 자기 얘기를 진솔하게 쓴 게 공감을 얻는 것 같아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곽한영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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