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1년새 무려 159건 신고.. 스포츠 4대악 수사 '백약이 무효'

안병수 2017. 8. 2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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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체육계 비리 / 승부조작 터지자 개선안 발표 / 부정방지위 신설 등 대책 표류 / 당국 "실효성 적고 단체 비협조" / 단체 "문체부서 취소 통보" 상반 / 신고기관 분산.. 실제 더 많을 듯 / 접수·조사 맡는 센터 인력 줄여 / 선진국선 기구 통합·역량 집중

사무국 직원이 단 2명뿐일 정도로 소규모 경기단체인 대한장애인사이클연맹은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연맹 회장 A씨가 지난해 12월 치러진 5대 회장 선거에서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들을 선거인단에 포함해 회장에 당선됐다는 신고가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비리신고센터에 제출됐기 때문이다. 연맹 관계자는 “신고 내용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소명 자료를 센터에 제출했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경기단체들의 비리 의혹은 단체 규모를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생해 바람 잘 날이 없다.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는 “한국에 제대로 된 체육 협회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22일 세계일보가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약 1년(2016년 7월~2017년 7월) 동안 스포츠비리신고센터에서 무려 159건의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센터가 문을 연 2014년 274건으로 가장 많았고 2015년 197건, 2016년 상반기 84건으로면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스포츠비리 신고 기관이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국민체육진흥공단 클린스포츠 통합콜센터 등 여타 기관으로 분산된 점을 감안하면 비리 사례는 더욱 많을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2014년 횡령·입시비리·폭력 및 성폭력·승부조작을 ‘스포츠 4대악’으로 규정하고 합동수사반까지 운영한 전례가 있지만 백약이 무효에 가깝다.

◆표류하는 부정 방지 개선안, 손 놓은 문체부

대형 경기단체의 스캔들은 파급력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일례로 ‘국민 스포츠’라 불리며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반성이 없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일부 선수의 승부조작 파문에 이어 올해는 전 기획팀장 강모씨가 문체부 지원금 8억여원이 들어가는 중국 시장 마케팅 관련 입찰비리를 저지른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한배구협회(KVA) 역시 “돈이 없다”는 핑계로 여자 배구대표팀을 부실하게 지원하고도 지난달 오한남(65) 신임 회장의 취임식을 강남구 호화 호텔에서 진행해 논란을 불렀다.

이에 협회는 오해를 바로잡겠다며 공식 홈페이지에 호텔 측이 발행한 취임식 비용 청구서를 공개했는데 872만원이나 찍혀 있어 오히려 팬들의 분노를 키웠다.

이처럼 경기단체들이 이른바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비리와 행정 처리를 일삼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문체부는 사실상 손놓고 있는 실정이다. 문체부는 지난해 프로축구와 프로야구에서 잇단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자 9월 ‘프로스포츠 분야 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개선안’을 발표하며 전면에 나섰다. 개선안 골자는 △부정 방지 시스템 구축 △프로스포츠 단체·구단·개인의 책임 강화 △스포츠 윤리교육을 통한 사전예방 강화다.
여자 컬링대표팀이 지난 3월 경기도 이천 장애인체육회훈련원 컬링장에서 열린 한국컬링선수권에서 스톤을 굴리고 있다. 관중석이 있는 유일한 경기장인 강릉컬링센터은 부실 시공·관리로 바닥이 균열돼 지난 3월부터 보수공사 중이다.
대한컬링연맹 제공
하지만 개선안이 나온 지 1년이 지난 시점에도 대부분의 정책들이 표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선안에서 핵심 사항으로 다룬 ‘한국프로스포츠협회 내 한국프로스포츠부정방지위원회 신설’ 조항은 최근 철회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위원회 설치가 무산되면서 문체부는 개선안에서 언급한 일련의 사업 진행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문체부는 현재 각 경기단체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상벌위원회 운영방식을 2심제로 바꿔 2심 기관으로 특별상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기약이 없는 상태다. 특별상벌위원회 운영주체 역시 한국프로스포츠부정방지위원회로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 스포츠산업과 관계자는 “각 경기단체들이 스스로 자정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부정방지위원회의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특별상벌위원회 역시 경기단체 상벌체계는 각자 상벌위원회의 고유영역으로 인식하는 부분이 커 협조가 안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기단체 측의 입장은 전혀 달라 논란이 예상된다. 한 경기단체의 관계자는 “실상은 다르다. 대부분의 경기단체가 특별상벌위원회를 만드는 데 찬성했다. 또한 1년 가까이 끌던 부정방지위원회를 갑작스럽게 만들지 않는다고 통보해 경기단체들도 혼선을 빚고 있다”고 토로했다. 

◆신고 처리율 60% 밑돌아… 심화된 인력난 해법은

문체부와 경찰청은 2014년 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17명(검찰청 수사관 1명·문체부 2명·국민체육진흥공단 6명·경찰청 6명·예금보험공사 2명)의 합동수사반을 운영했다. 이후 합동수사반을 ‘스포츠비리신고센터’로 개편한 뒤엔 수사 기능을 분리한다는 명목으로 검·경찰청 인원을 제외하면서 2016년도 구성원이 8명으로 대폭 줄었다. 현재는 규모가 6명까지 쪼그라든 상태다. 그러나 신고센터가 여전히 신고 접수와 조사 기능을 전담하고 있어 급격한 인원 감축은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실제로 지난해 문체부가 발간한 ‘스포츠비리사례집’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접수된 580건 중 조사가 종결된 건수는 329건으로 전체의 56.7%에 그쳤다.

문체부는 이해당사자의 비협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신고 조사에 난항을 겪으면서도 센터 인원을 줄이는 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김승규 센터장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여타 기관에 역량을 나눠주자는 취지로 인원이 줄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모자라 센터 운영이 힘에 부칠 때가 많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사례에 비추어 스포츠 비리 관련 업무 역량을 한데 모은 독립기관을 설치해야 업무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표적으로 영국, 캐나다 등에서 도입한 스포츠분쟁해결기구가 꼽힌다. 캐나다의 분쟁해결기구(SDRCC)는 분쟁예방센터와 재판소로 구별돼 관련 교육과 수사, 판결을 도맡고 있다. 영국도 비영리 분쟁해결기구(SR)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 위원들이 유기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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