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난 사반세기 힘으로 '한방' 날려 얻은 것은..

채인택 2017. 8. 22. 17:4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동과 발칸 등에서 6차례 전쟁,공습 벌였지만
압도적으로 전투 이겨도 전후 뜻대로 되지 않아
독재자 몰아냈더니 혼란, 학살, 내전, 테러 창궐
이라크, 아프간, 리비아, IS세력 확대에 주민고통
이라크 민주선거 결과 친이란 시아파 정권 탄생
미국 세계전략에 역효과 나는 예상외 결과 양산
'주먹만으론 한계' 절감해, 신아프간 전략 내놔
소프트파워 결합하고 주변국 도움에 대화 강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포트 마이어 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줄 새로운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미국 군사력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지만 무력만으론 당면한 국제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새로운 전략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군사력에 외교ㆍ경제력 등 미국 국력의 도구를 통합한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공개한 것은 고무적이다. 병력 증원과 새로운 군사행동을 준비하면서도 “탈레반 일부를 포함하는 정치적 타결도 가능할 것”이라고 슬며시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것도 마찬가지다. 아프가니스탄의 인접 국가로 핵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에 아프가니스탄 경제 재건과 대테러 전쟁 협조를 압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이 막강한 군사력만으로는 국제정치에서 자신의 의지를 펴는 데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먹’과 함께 소프트파워 및 정치적인 대화와 타협으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대륙간탄도 탄(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며 도발을 일삼는 북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 수밖에 없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군사개입’만으로는 국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은 1991년 걸프 전쟁 이래 국제문제에 6차례 군사적으로 개입했지만, 정치적으로 원하는 것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 미국은 걸프 전쟁(1991년), 코소보 전쟁(1998~199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현재), 이라크 전쟁(2003년~2011년 미군철수까지), 리비아 공습(2011년), 시리아 공습(2017년) 등 6개의 전쟁에 전면적, 또는 부분적으로 개입했다. 군사적으로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특히 초기에는 강한 화력과 기동력, 그리고 정보전을 바탕으로 막강한 전투력을 과시했다. 미군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로 전력, 통신, 방공망 제거한 뒤 공중폭격으로 지상의 중화기를 제압하고 이어 지상 병력을 투입해 ‘퍼펙트게임’으로 승리했다. 미국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전력을 보유한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군사력으로 전쟁에선 승리했지만 이를 통해 의도했던 국제정치적인 목적은 제대로 달성한 경우가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001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목적은 아프가니스탄에 숨어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9.11 테러 배후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고 테러조직 알카에다 훈련 기지를 제거하며 그를 비호해온 탈레반 세력을 응징하는 것이었다. 미군은 압도적인 점령으로 신속하게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탈레반을 내쫓고 아프가니스탄에 새 정권을 세웠다. 하지만 이 정권은 카불의 지역정권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아프가니스탄 상당 지역은 여전히 탈레반이 지배했다. 게릴라전이나 부족간의 이해관계도 문제였지만 3200만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최대민족 파슈툰 족에 기반을 두고 있는 탈레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패착의 하나로 지적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은 내전과 부족갈등, 테러의 3중고로 혼란에 빠졌으며 주민들은 질곡에 빠졌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라크 전역을 점령했어도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게릴라와 급조폭발물(IED)로 인해 주둔 미군은 계속 숨져갔다. 지역 혼란과 치안 공백을 틈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새로운 테러 세력에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미국은 급기야 유럽국가 중심의 나토군에 아프가니스탄의 안전을 맡겼지만 상황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으면서 이번에 새로운 아프가니스탄 전략이 나온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한 미군이 지난 2005년 마을을 수색하고 있다.
1991년 걸프전쟁 당시 미군이 주도한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이라크군의 소련제 전차.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해 도시 입구의 '승리의 문'을 지나고 있는 미군 전차들.
이는 이라크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이라크와는 1991년 쿠웨이트 점령에 따라 걸프전쟁을, 1993년 대량살상무기(WMD) 사찰 거부 문제로 이라크전을 각각 치렀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쿠웨이트 수복이라는 애초 목표만 달성하고 전쟁을 끝냈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라는 ‘화근’을 그대로 두는 바람에 1993년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졌다.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은 이라크 전쟁 때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후세인 정권이 무너뜨렸다. 미군에 체포된 후세인은 정적들의 손에 넘어가 처형됐다. 이후 이라크는 미국과 서방이 요구하는 대로 민주적인 선거를 거쳐 새로운 정권이 탄생했다. 선거결과는 인구조사 결과나 마찬가지였다. 인구에서 대수인 이슬람 시아파가 정권을 차지했다. 후세인 정권 당시 박해를 받았던 시아파는 정권을 잡으면서 이웃 시아파 맹주 이란과 관계를 강화했으며 교역 등 경제 분야에서도 밀착했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 아라비아를 앞세워 중동의 반미국가 이란을 견제하려던 미국의 대중동 전략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권력을 잃고 박해받게 된 수니파들이 들고 일어나 이라크는 사실상 내전 상태에 빠졌다. 무기력한 중앙정부는 IS가 2014년 6월 제2도시 모술과 인근 유전을 점령한 뒤에도 3년간 해결하지 못하다 올해 7월에야 간신히 탈환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피격돼 불타고 있는 이라크군의 옛소련제 T-55 전차.
1999년 코소보전쟁은 미국이 무력을 통해 실현하려고 했던 ‘정의’가 또 다른 쪽에서는 엉뚱한 의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신유고연방(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 정권이 코소보주(과거 자치주)의 알바니아계 무슬림 주민을 탄압하자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가 신유고연방 전역의 군사기지와 주요 국가시설을 공습했다. 인도주의를 내세운 공격이었다. 외과수술식 초정밀 공격으로 수도 베오그라드의 주요 건물이 초토화하자 밀로셰비치는 손을 들었다. 코소보는 유엔 보호 아래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번에는 알바니아계가 세르비아계를 공격해 인종 학살과 인권유린이 발생했다. 2017년 8월 코소보 대법원은 당시 코소보 해방군의 세르비아계 인종 학살 사건을 다룰 반인도주의 특별법정을 세우기로 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1999년 코보소 전쟁에서 활약했던 F-117 스텔스 전투기.
리비아도 무력을 통한 정권 전복이 국가 안정에 항상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는 교훈을 준다. 12011년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나토 국가는 당시 ‘아랍의 봄’으로 봉기한 반정부 시민군을 돕기 위해 무아마르 카다피 정부의 군대와 기지를 순항미사일과 전투기로 폭격했다. 나토 폭격 속에서 정부는 전복됐고 카다피는 주민에서 피살됐다. 하지만 서방의 예상과 달리 독재자가 사라졌어도 민주주의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리비아는 동부의 트리폴리, 서부의 뱅가지의 세력이 동서로 나뉘어 내전을 벌인 것도 부족해 2014년에는 선거 분쟁으로 트리폴리와 토브룩으로 정부가 쪼개져 대립 중이다. 여기에 부족 간의 대결도 극심한 상황이다. 권력 공백을 틈타 침투한 IS, 알카에다 등 테러집단의 창궐과 대혼란에 빠져있다. 2012년에는 벵가지의 미국대사관이 습격을 당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대사 등 4명이 숨졌다.
2011년 나토군의 리비아 정부군 폭격으로 파괴된 전차.
올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미사일 공격 명령도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실질적인 효과는 얻기 힘든 상황이다. 당시 미국은 자국민(반정부군과 민간인)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시리아 공군기지 등에 지중해의 군함에서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공격이었을 뿐 33만~47만5000명이 숨지고 760만이 집을 잃은 시리아 내전이라는 인류사의 비극을 해결하는 데 거의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2017년 4월 지중해상의 미해군 구축함이 토마호크 미사일을 시리아 공군기지로 발사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종교, 종파, 민족, 정체성, 지역주의, 부족주의, 지역역사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벌인 미국의 군사 중심의 개입이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때문에 눈에 보이는 종기만 제거할 뿐 화근을 제대로 뽑지 못하니 새로운 종기가 계속해서 퍼져 나가는 ‘두더지 게임’식의 결과만 양산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강한 힘만 믿고 무력 개입으론 평화, 안정, 인도주의, 영향력을 제대로 얻지 못하는 ‘신국제정치 패러다임’을 무시한 결과일 것이다. 미국이 벌인 6개의 전쟁은 국제사회가 군사력 의존에서 벗어나 소프트파워, 대화, 상호존중, 교류확대 등 다양한 정치적 노력으로 평화와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