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실리콘밸리 단칸방이 月200만원.. 돈없어 캠핑카 살아요

강동철 특파원 2017. 8. 22.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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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치솟는 실리콘밸리.. 강동철 특파원 르포]
대부분 식당·건설 노동자
IT 기업들이 고용 늘리면서 최저임금보다 월세가 비싸져
교통 불편·주변 슬럼화 우려

지난 17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팰로앨토의 엘 카미노 도로변. 캠핑장도 아닌데 구식 캠핑카(RV·Recreation Vehicle) 30여 대가 줄지어 주차돼 있었다. 창문은 가림막이나 낡은 커튼으로 가렸고, 차량 주변에는 자물쇠를 채운 자전거와 대형 마트용 카트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멕시코 출신 카를로스씨는 "아파트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어 중고 캠핑카를 구입해 이곳에 주차해 두고 1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미국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캠핑카를 집으로 삼아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치솟는 물가와 주택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밀려나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캠핑카는 일반적으로 자유를 뜻하지만, 실리콘밸리 거리의 캠핑카는 생활 터전"이라고 전했다.

샌프란시스코~팰로앨토~마운틴뷰~새너제이로 이어지는 실리콘밸리 일대 도로를 지나다 보면 '캠핑카 거주족'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잠은 캠핑카에서 자고, 세수와 용변 등은 인근 마트와 공원 공공화장실에서 해결한다. 인터넷은 공용 와이파이로, 전기는 소형 발전기나 배터리 등으로 조달한다. 실리콘밸리 일대 캠핑카 거주족은 최소 수백명일 것으로 이 지역 언론들은 추정한다.

도로변 점령한 캠핑카 -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의 엘 카미노 도로변에 캠핑카 30여 대가 줄지어 주차돼 있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선 비싼 주택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캠핑카를 집으로 삼아 거주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강동철 기자

캠핑카 거주족이 계속 증가하는 주요인으로는 실리콘밸리의 값비싼 주택 임대료가 꼽힌다. 실리콘밸리는 지난 수년간 애플,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들이 고용을 대폭 늘리면서 고소득을 올리는 IT(정보기술) 분야 종사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반면 이들이 살 만한 주택 공급은 그만큼 늘지 않아 임대료가 치솟고 있다. 이 지역의 방 1개짜리 주택 임대료는 월평균 2000달러(약 230만원)를 훌쩍 넘는다.

치솟는 임대료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식당·마트나 건설 현장 등에서 일하는 최저임금 종사자들이다. 실리콘밸리 지역 시간당 최저임금은 평균 12달러 수준으로, 미 연방정부가 정한 시간당 최저임금(7.25달러)의 두 배에 가깝다. 최저임금으로 한 달을 일하면 약 1600달러(약 182만원)를 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입으로는 방 한 칸 임대료도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 중고 캠핑카는 석 달 임대료인 6000달러 안팎이면 살 수 있다. 캠핑카에서 10년째 거주하는 조엘 베츠(버스 운전사)는 "20년 전만 해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사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꿈도 꾸기 어렵다"고 했다. 노숙인 지원 단체인 라이프무브의 브라이언 그린버그는 "캠핑카 거주족 가운데 절반은 최저임금 직종에 종사하고, 나머지 절반은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캠핑카 거주족이 늘자 실리콘밸리 일대 지방정부들은 캠핑카 단속에 나서고 있다. 주차 시간이 72시간을 넘으면 범칙금을 물리는 식이다. 하지만 캠핑카족을 엄격하게 단속하면 이들이 노숙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지방정부들의 고민이다. 실리콘밸리 일대는 미국 내에서 노숙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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