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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에 끌려다니다 용두사미된 '통신비 인하'

입력 2017.08.21. 19:06 수정 2017.08.2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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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약정할인 소급적용 무산' 파장
정부, 협상 의존하던 관행 못벗어
"원가공개·불공정 단속 원칙대로"
이통사, 공공성·국민요구 외면
"수익성만 앞세워 소송 협박해서야"

[한겨레]

이동통신요금 선택약정할인율(이하 할인율) 인상 혜택을 기존 가입자는 받지 못하면서, 정부의 통신비 인하 정책이 ‘용두사미’가 돼 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에 대해 “구체적 대안과 전략 없이 통신사와 협상에만 의존하다 결국 끌려가고 있다”는 지적이, 통신사를 두고서는 “통신의 공공적 성격은 망각한 채 수익성만 내세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 거센 반발 부른 소급적용 무산 지난 1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9월15일부터 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높이지만, 선택약정 신규 가입자에게만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가입자는 위약금을 물고 재약정을 하거나, 약정이 만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과기정통부는 기존 약정 해지 시 위약금을 경감해주는 방안을 이통사와 계속 협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불투명한 상태다. 21일 이통사 관계자는 정부의 할인율 인상 방안에 여전히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통사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한다면, 이달 말까지는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내야 한다.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참여연대 등 6개 통신 소비자·시민단체는 이날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할인율 인상의 소급적용이 안 되면 문재인 대통령의 기본료 폐지 공약 취지에 어긋나는 사실상의 공약 폐기와 같다”며 “과기정통부는 최소한 ‘위약금 없는 재약정’이라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22일 과기정통부의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문 대통령이 가계통신비 인하 문제를 제대로 살펴보고 이행방안을 검토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가계통신비 절감 8대 공약’을 발표하며, 기본료 폐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뒤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기본료 폐지를 장기과제로 돌리는 대신 ‘선택약정할인율 인상’과 ‘보편요금제 도입’을 내놓았다. 당시 할인율 인상이 기본료 폐지의 대안으로 발표된 만큼, 기존 가입자 역시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이후 “이통사와 협의 중”이라는 말을 반복하다 끝내 “어렵다”고 밝혔다. 더욱이 보편요금제 도입은 오는 11월 국회에 법안이 제출될 예정이어서, 입법 과정 등을 고려하면 시행은 2019년 이후로 미뤄질 공산이 크다. 결국 상당수 소비자들은 내년까지 아무런 통신비 인하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기존 가입자들도 기존 약정이 만료되는 대로 25% 할인을 받을 수 있어 혜택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 이통사도 정부도 책임 회피 기대가 컸던 만큼 정부와 이통사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상당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추혜선 의원(정의당)은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면서도 통신사들은 민간사업자임을 내세우며 수익성만 추구하면 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비슷한 성격의 방송사업자들과 비교해서도 공적 책무에 대한 인식이 너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심현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통신사들이 올해도 막대한 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과도한 통신비를 낮추라는 국민 요구는 외면하고 있다”며 “행정소송까지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통신사에 주도권을 뺏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달 이통 3사의 대표를 따로 만나 협조를 부탁했지만 이들의 입장을 못 바꿨다. 지난 17일에는 이통 3사 대표들과의 합동 회동을 요청했지만, 이통사로부터 거절당했다. 이통사 관계자는 “양쪽 입장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자꾸 수장들끼리 만나봐야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 국장은 “정부가 그동안 법과 원칙에 따라 통신사를 제대로 규제하지 않고 통신사와의 협상을 통해 정책을 만들어온 탓에 통신사들에 학습효과가 생긴 것”이라며 “원가 자료 공개, 요금적정성 평가 등을 원칙대로 하고 통신사들의 불공정행위를 철저히 처벌하는 등 현행 법령상의 정부 권한만 제대로 행사해도 과도한 통신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은 “정부가 빨리 선택약정할인 방안 등을 마무리하는 한편, 제4이통이나 완전자급제 등 경쟁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 구조개선에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