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대법관 9명 '기수 역전'.. 사법부 탈관료·탈보수 '속도'

김태훈 2017. 8. 2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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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코스' 행정처 근무 경험 없이 31년간 일선 법원서 재판에만 매진 / 약자 배려 판결 많은 인권법 전문가 / 전교조 '합법 노조 지위 유지' 결정 /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해소 과제 / 취임 땐 재조사 등 개혁 밀어붙일 듯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제16대 대법원장 후보자에 진보성향의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을 지명한 것은 고강도 사법개혁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자는 최근 불거진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폭로의 중심에 서 있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그가 대법원장에 취임하면 행정처 축소와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등 사법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소감 밝히는 金 후보자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이 21일 강원 춘천지법 재판정에서 취재진과 만나 소감을 밝히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그는 취재진에게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법원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밝히겠다”고 입장을 발표해 당장 행정처 축소 등 개혁안 구상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김 후보자는 1986년 법관으로 임용된 이래 31년간 일선 법원에서 재판 업무에만 종사했다. 흔히 엘리트 판사 양성소이자 법관들의 출세 코스로 통하는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경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 그의 올곧은 성품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많다. 행정처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향후 행정처를 정점으로 한 사법부 관료주의를 타파할 적임자로 통한다.

김 후보자는 노무현정부 시절 사법개혁의 주축이었던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이 연구회 해산 후 2011년 새로 출범한 학술단체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도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인권법 전문가로 평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판결을 많이 내렸다.

특히 2015년 11월 서울고법 재판장 시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합법노조 지위를 유지하는 결정을 내려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이 ‘전교조는 법외노조’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한 것의 효력을 중단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해직교원이 가입됐다는 이유로 고용부로부터 ‘법적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전교조는 여전히 각종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행정처가 법관들의 정치적 성향을 감시했다는 블랙리스트 의혹의 해소는 새 대법원장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양 대법원장이 거부했던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그는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을 때 “행정처가 사태를 축소하려 하는 등 잘못된 대응을 하고 있다”며 임종헌 당시 행정처 차장을 비판하는 등 대법원과 정면으로 충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법관 경험도 없는 김 후보자 발탁은 기수와 서열이 중시된 사법부 문화를 뿌리부터 뒤흔든 조치라는 반응이 많다.

초대 김병로, 3대 조진만 대법원장을 제외한 역대 대법원장은 모두 전·현직 대법관 중에서 임명됐다. 현재 대법원에는 사법연수원 15기인 김 후보자보다 선배인 대법관이 9명이나 있다. 법원장이 대법관도 거치지 않고 대법원장으로 직행하는 것에 대해 일부 판사들은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청와대의 사법개혁 의지가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문재인정부가 법원의 개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사법부에 전달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대법원장이 대법관들보다 후배인 경우는 없었다”며 “국회 임명동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와대 지명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난 김 후보자는 “일선 재판 현장에서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이례적 상황이라 걱정이 앞서지만 오히려 이것이 더 큰 장점이라 생각하고 청문회에 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법원이 처한 대내외적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국민과 법원 구성원의 수준에 맞는 (개혁)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말로 고강도 사법개혁 의지를 내비쳤다.

김 후보자는 이날 춘천지법에서 재판을 진행하던 도중 지명 소식을 접했다. 그는 “재판 직전에 대략적 소식만 들었고 재판 진행 중 지명돼 가족에게도 연락을 못한 상태”라며 웃었다. 그는 딸(34)과 아들(31)이 모두 현직 법관으로 재직 중인 판사 가족이다.

장혜진·박진영 기자 jangh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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