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안' 생리대만 조사하면 그만인가요?

입력 2017. 8. 21. 17:16 수정 2017. 8. 22. 19: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the) 친절한 기자들]
릴리안 사태에 '일회용 생리대' 불안 늘어
식약처, 릴리안 조사 뒤 추가 조사 결정
일회용 대신 면 생리대·생리컵 주목

[한겨레]

안전성 논란이 촉발된 일회용 생리대. 한겨레 자료사진

40년 동안 평균 1만개.

여성 한 명이 평생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 개수입니다. 어마어마한 양이죠. 일회용 생리대는 사용의 편리함 때문에 가장 인기 있는 생리용품으로 꼽힙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5월 실시한 ‘생리용품 사용실태 및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1028명 가운데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비중이 80.9%로 가장 높았습니다. 탐폰(10.7%)과 다회용 생리대(7.1%), 생리컵(1.4%)이 뒤를 이었습니다.

일회용 생리대는 여성의 삶과 가장 밀접한 제품입니다. 하지만 제품 안전성에 대한 논의는 최근에야 이뤄지고 있습니다. “특정 생리대를 사용하면 생리 불순 등이 온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퍼지면서 논란이 촉발된 겁니다.

‘더 친절한 기자들’은 ‘릴리안’을 포함한 일회용 생리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생리대 품질을 규정한 제도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알아보고 일회용 생리대의 대안을 살펴보겠습니다.

■ ‘생리대 안전성’ 논란 촉발한 ‘릴리안’ 사태

시작은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였습니다.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를 쓴 뒤 생리량이 줄어들거나 생리통이 심해졌다는 경험담이 잇따라 올라온 겁니다. “나이를 먹어서 생리량이 줄어든 줄 알았는데 생리대 문제인 것 같다”, ”릴리안 제품을 쓴 뒤 생리량도, 기간도 줄어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릴리안을 쓰고도 별 차이가 없다”는 의견도 일부 올라왔지만, ‘릴리안’을 둘러싸고 퍼지는 의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지난 3월 열린 ‘여성건강을 위한 안전한 월경용품 토론회’에서 발표한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 시험’ 결과입니다. 당시 김만구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교수 연구팀은 국내에서 많이 팔리는 10종의 일회용 생리대에서 모두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물질, 유럽연합(EU)이 규정한 생식독성, 피부자극성 물질 등 유해물질 22종이 검출됐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토론회를 주최한 여성환경연대는 ”(검출된 물질 가운데) 피부 자극과 유해성이 확인된 물질은 벤젠, 트리클로로에틸렌, 스타이렌, 톨루엔, 헥산, 헵탄 등 8종”이라며 ”특히 스타이렌과 톨루엔은 생리 주기 이상 등 여성의 생식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생식독성 물질”이라고 밝혔습니다. 현행 법상 생리대 관련 규제는 폼알데하이드, 색소, 형광물질, 산·알칼리 관련 규정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토론회에서 제품의 이름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이후 김만구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독성이 포함된) 총휘발성유기화합물질(TVOC)이 가장 많이 검출된 제품이 릴리안 생리대와 팬티라이너였다”고 밝혔습니다. (관련 기사▶생리불순·발진 유발?…식약처, '릴리안 생리대' 조사 착수)

‘릴리안’ 제조사인 깨끗한나라는 진화에 나섰습니다. 공식 누리집에 제품의 모든 성분을 공개하며 “릴리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관리 기준을 통과한 안전한 제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한국소비자원에 자사 제품의 안전성을 검증해달라고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불안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릴리안’ 공식 누리집 갈무리

■ 식약처, ‘릴리안’ 조사 대상에 포함…논란 커지자 “생리대 전수조사도 검토”

논란이 확산되자 식약처가 직접 나섰습니다. 오는 9월 실시하는 정기 품질조사에 ‘릴리안’ 제품을 포함하기로 한 겁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2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의약외품이 허가기준대로 유통이 되는지 매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조사를 하는데 이번에 ‘릴리안’ 생리대가 논란이 되자 검사 대상에 포함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김만구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대로) 생리대에서 실제로 유해물질이 검출되는지, 해당 유해물질이 인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인과관계가 검증이 된다면 생리대의 품질관리기준을 강화한다는 설명입니다.

식약처는 당초 “생리대를 전수 조사해달라”는 요구에 대해선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릴리안처럼) 소비자들의 피해 사례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조사를 할 경우 해당 제품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논란이 계속 확산되자 “릴리안 조사를 진행한 뒤 조사 결과에 따라서 전수조사 등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정정했습니다.

■ 여성환경연대 “인과관계 입증 안됐지만…초기에 역학조사 필요”

결론부터 말하면, ‘릴리안’이 진짜 생리불순을 유발하는지 아직 입증된 바는 없습니다. 다만 여성환경연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일회용 생리대의 유해물질에 대한 역학조사에 나서고 모든 성분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등 예방 조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여성의 질은 보통 피부에 비해 흡수성이 높고, 생리대가 닿는 외음부는 외부 자극과 유해물질에 취약합니다. 일회용 생리대의 유해물질이 충분히 여성의 몸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여성환경연대 고금숙 환경건강팀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생리대의 모든 성분을 공개하는 것이 유해물질을 관리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며 ”피해사례가 나타난 만큼 실제로 유해물질이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지 초기에 역학 조사와 성분 분석을 함께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화장품처럼 생리대의 모든 성분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법도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6월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생리대와 같은 의약외품도 모든 성분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규정한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최도자 의원실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의약외품만 예외로 둘 사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외로 두고 있어 해당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습니다.

■ ‘팬티라이너’와 ’기저귀’는 어떡하지?

최도자 의원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사각지대는 남아있습니다. 바로 팬티라이너와 성인용·아기용 기저귀입니다. 김만구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보면 팬티라이너에도 일회용 생리대처럼 TVOC가 검출됐습니다. 이 제품들은 생리대와 똑같이 몸에 닿지만 ‘의약외품’이 아닌 ‘공산품’으로 분류됩니다. 관리 부처 역시 식약처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죠.

식약처 관계자는 “매년 생활화학제품 안전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해당 제품은 식약처 소관이 아니다 보니 사각지대에 놓여 관리가 어려웠다”며 “최근 ‘위생용품관리법’이 개정돼 내년 4월부터는 식약처가 관리하는 ‘위생용품’으로 분류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위생용품 관리법’에 따르면 위생용품은 식약처가 규정한 기준 및 규격에 맞는지 제조·수입업자가 품질검사를 실시하고 영업신고를 해야 합니다. 다만 자체 품질검사에 그칠 경우 현재 산자부가 시행하는 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외품에 비해 관리가 부실할 수 있다는 지적에 “내년 4월 개정안 시행에 맞춰 관련 시행령 등을 정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빨아서 쓰는 면생리대. 한겨레 자료사진

■ 불안 호소하는 여성들…‘면생리대’, ‘생리컵’ 관심 늘어나 정부도, 기업도 부랴부랴 뒷수습에 나선 모양새지만 여성들의 불안은 변함없습니다. ‘릴리안’ 뿐만 아니라 모든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전수 조사를 주장하고 있죠. 더불어 ‘면 생리대’나 ‘생리컵’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면 생리대는 건강과 친환경, 경제성 면에서 강점입니다. 일회용 생리대는 화학물질로 만들어 몇백년간 썩지도 않는 반면, 면 생리대는 한번 사면 5년 이상 쓸 수 있고 피부염이나 생리통도 줄여준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죠. 하지만 빨아써야 하는 번거로움과 외출 시 뒤처리가 번거롭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힙니다. (관련기사▶ “나와 이웃 살리는 면 생리대 어때요?”)

생리컵은 인체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아내는 실리콘 재질의 여성용품입니다. 반영구적인 데다 개당 2만∼4만 원대로 저렴하다는 장점 덕에 서구에선 대중화돼 있습니다. 생리대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이유로 ‘깔창 생리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생리대 대안품으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관련기사▶생리대 살 돈 없어요…말할 수 없었던 고백) 그동안 식약처의 안전성·유효성 검사를 통과한 제품이 없어 국내 판매가 금지된 상태였음에도 해외에서 ‘직구’ 형태로 구입한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주목을 받기도 했죠.

일회용 생리대 대안으로 꼽히는 생리컵. 한겨레 자료사진

생리컵은 곧 국내 판매 길이 열립니다. 국내에서 수요와 관심이 늘자 식약처가 수입 허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식약처는 “국내 생리컵 수입업체 한 곳의 사전검토를 마쳤다. 업체가 수입 허가 신청서를 내면 검토 뒤 빠른 시일 내에 허가를 내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식약처는 수입 허가 신청 자료를 토대로 국내에 들어오려는 생리컵이 안전한 지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문제가 없다면 정식 수입 허가 단계를 밟을 예정입니다.

생리컵 수입 허가를 준비 중인 업체가 국내에 들여오려는 생리컵은 미국의 ‘페미사이클’(FemmeCycle)로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10여 종의 생리컵 제품 중 하나입니다. 당초 8월에 출시 예정이라고 알려졌지만 아직 업체의 수입 허가도 나지 않아 출시일정은 더 미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식약처는 “수입 제품의 종류나 출시일정은 업체에 달렸다”고 말했습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 페이스북][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