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즈 버리고 식판 갖다놓는 간호사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가보니

김유아 입력 2017. 8. 21. 16:30 수정 2017. 8. 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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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 '안심하고 입원할 수 있다'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김유아 기자

지난 17일 서울 A병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 '딩동' 호출벨이 울리자 복도에서 기록지에 무언가를 써내려가던 간호사가 펜을 귀에 꽂고 병실로 달려갔다. 몸에 감았던 거즈를 버려달라는 환자 요청이다. 거즈 한 뭉치를 복도 의료폐기물 수거함에 넣은 뒤 바로 다음 환자를 보러 옆 병실로 갔다.
'딩동' '딩동' 병동 상황을 확인하는 스테이션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던 또 다른 간호사 2명이 각각의 병실로 빠르게 움직였다. 5분 만에 호출벨이 3차례나 울렸다.
1년차 간호사 서모씨(25·여)는 병실에서 담요를 들고 나와 세탁실에 뒀다. 10초만에 제자리로 원상복귀한 서씨는 마우스를 연신 클릭하며 업무를 봤다. 서씨는 "호출이 잦아 업무를 보면서도 병실로 달려갈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며 "몸도 마음도 너무 피곤해 일반 병동으로 옮기고 싶을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정부 확대 공언, 인력부족 호소
문재인 정부가 '간호간병통합서비스(통합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병원 현장에서는 아우성이다. 간병 관련 잔업이 늘어나면서 업무 강도가 세지지만 뒷받침할 간호인력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통합서비스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간호인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21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통합서비스는 보호자나 고용 간병인 대신 간호인력(간호사, 간호조무사, 재활지원인력, 간호지원인력)이 간병까지 도맡는 입원서비스다. 건강보험공단은 종합병원 통합서비스 병동의 경우 간호사 1명당 환자 7~12명, 간호조무사 1명당 환자 30~40명을 담당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7월 말 기준 통합서비스는 353개소, 2만 3460병상에서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정한 올해 목표치 1000개소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정이다.

통합서비스 병동에서는 간호에 간병을 병행하다보니 잔업도 많아졌다. 특히 식사시간이 되면 일손이 부족하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모두 병상에 달라붙어 환자의 식사보조에 나서야 한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이 밥을 제 시간에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간호사가 없어 식사보조를 받지 못하는 환자 역시 제때 못 먹고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통합서비스 병동 환자에게 아예 간병인을 쓰라고 권유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간호조무사협회 원윤희 사무총장은 "식사시간에 모든 환자를 다 챙기지 못할 때가 잦다"며 "아예 보호자에게 와달라고 부탁하거나 간병인을 다시 쓰라고 권유했던 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합서비스를 시행하는 서울 A병원 5년차 간호사 김모씨는 이날도 잔업무로 근무시간 절반을 보냈다. 김씨는 환자 식판을 퇴식구에 갖다놓은 뒤 서둘러 약이 담긴 카트를 끌고왔다. 이내 병상에 있는 환자 4명에게 약과 물을 일일이 주거나 쓰레기봉투를 날랐다. 상태가 호전된 환자들이 자잘한 심부름을 시켜도 다 해야 한다. 환자 물병을 씻고 정수기에서 정확히 온수와 냉수를 반반 담은 뒤 환자 병실로 돌아가던 김씨는 "환자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인데도 간호사에게 시키는 경우가 많아 업무가 2, 3배는 늘어난 것 같다"며 "간병업무가 늘어나는데 현재 인력으로 간호에 간병까지 맡기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자 통합병동을 기피하는 간호사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B병원(통합서비스 도입병원) 일반 병동에서 일하는 김모씨(27·여)는 "통합병동이 너무 힘들다는 말이 나와 동료 간호사들도 그쪽 근무를 신청하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환자도 불만..."간병인 쓰는게 나을 듯"
일부 환자들도 불만을 터뜨린다. 뇌졸중 환자 유모씨(57)는 서울 영등포의 한 병원 통합서비스 병동에 입원한 지 3일이 지났다. 유씨는 "보호자가 없어 일부러 돈 더 주고 여기로 왔는데 간호사들이 바쁜지 뭘 부탁하면 오래 기다려야 했다"며 "간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일반 병동으로 가서 간병인 쓰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현재 환자가 통합서비스 병동을 이용할 경우 종합병원 6인실 기준 일반 병동 입원료보다 약 1만 5000원을 더 부담한다. 간병인을 고용하면 하루에 약 8만원 정도 더 내야 한다.

결국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가 통합서비스 성패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대 간호대학 김진현 교수는 "통합서비스 병동은 수가가 높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좋지만 여전히 도입이 더딘 것은 인력 때문"이라며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간호사 2명당 입원환자 5명을 간호하게 돼 있는데 병원이 잘 지키기만 해도 전체적으로 인력문제가 많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kua@fnnews.com 김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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