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은 한국이 세계 최초..작품·시스템 수출해야"

대담=배성민 문화부장, 정리=구유나 기자, 사진=홍봉진 기자 2017. 8. 21.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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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 김동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지금부터는 '속도' 아닌 '질'로 승부"
5년 전 김동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은 경기도 파주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조용히 작업하며 살길 원했지만, 지난 7월 이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서울과 파주, 부천을 바쁘게 오가고 있다. 김 이사장은 "지금이 우리 만화계에겐 기회"라고 강조했다. /파주=홍봉진 기자


젊은 문화인문도시로 손꼽히는 경기도 부천에는 만화, 영화, 박물관 등 풍부한 문화콘텐츠가 산재한다. 특히 만화는 퀴퀴한 만화 가게의 만화부터 애니메이션, 웹툰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힘이 있다. '만화의 메카' 부천의 중심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하 진흥원)이다. 만화박물관, 만화도서관,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등 지역에 흩어져 있던 관련 시설들을 한데 모은 국내 최대의 만화산업 클러스터(밀집지)다.

국내 만화 작가들을 지원하고 의견을 모은다는 취지에서 이사장은 정치·행정 쪽 인사가 아닌 원로 만화작가가 맡아왔다. 지난달에는 만화 ‘빨간 자전거’의 김동화 작가(67)가 제5대 진흥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신일숙, 원수연, 윤태호 등 새로운 이사진과 함께 2년간 진흥원을 이끈다.

지난 16일 경기도 파주, 임진강 너머 대남(對南) 방송이 들려오는 한 개인 작업실에서 김 이사장을 만났다. “원래 비 온 뒤에 잡초 뽑기가 제일 좋죠." 그는 흙투성이 장화를 신고 앞뜰에서 걸어 나왔다. 5년 전, 한적한 삶을 즐기고 싶어 이곳에 집을 짓고 나무를 심었다. 이사장직도 몇 번을 고사했다. 결국 제안을 받아들인 건 지금이 국내 만화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판단에서다. 김 이사장은 만화진흥법을 개정해 국내에 탄탄한 웹툰 시스템을 마련하고 작가들의 다양한 창작 활동과 해외 진출을 돕겠다고 강조했다.

◇‘웹툰’은 한국이 최초…‘퍼스트 무버’(first mover) 기회 잡아야=국내외를 막론하고 만화 팬이라면 ‘웹툰’(webtoon)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인터넷을 뜻하는 ‘웹’(web)과 만화라는 뜻의 ‘카툰’(cartoon)을 합성한 말이다. 사전에 정식 등재된 것은 아니지만,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웹툰’은 ‘한국의 인터넷 연재 만화’로 통용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메’(アニメ·anime)로 불리는 것과 비슷하다.

“출판 만화는 미국을 보고 일본이 배웠고, 일본을 보고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런데 웹툰은 우리가 세계 처음 한 거예요. 작가를 어디에 어떻게 소속시켜야 하는지,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기준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것이지요. 처음이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도 많지만 잘 만 하면 웹툰뿐만 아니라 관련 시스템까지 해외에 수출할 수 있습니다.”

국내 웹툰 역사는 1990년대 후반 시작된다. 웹툰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 ‘스노우캣’, ‘파페포포 메모리즈’ 등의 작품은 신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작업물로 받아들여졌다. 2003년 다음 ‘만화 속 세상’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강풀의 ‘순정만화’,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 등 본격 웹툰 시대가 열렸다. 파란, 엠파스, 네이버 등 다양한 포털들이 뒤이어 웹툰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후 ‘미스터블루’, ‘레진 코믹스’ 등 웹툰 특화 사이트들이 문을 열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만화산업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9000억원이다. 특히 디지털 만화시장 성장률은 연평균 8.6%로 2011년 5900만 달러(약 670억원)에서 올해 1억 1100만달러(1300억원) 수준까지 두 배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만화 독자 중 온라인을 이용하는 비율이 75%를 넘는다.

“지금이 우리가 준비할 기회예요. 전 세계 어디를 봐도 우리나라만큼 인터넷 빠른 곳이 없잖아요. 그런데 해외 국가들도 조금 있으면 빨라질 거거든요. 그동안은 우리도 ‘인터넷 만화가 이런 거다’라는 실험을 많이 했는데, 지금부터는 더 굉장한 작품들이 나올 겁니다. 이젠 작품의 속도보다 작품의 질이 중요해진 시점이니까요. 조석의 속도감 있는 만화부터 윤태호의 진지한 만화까지 다양한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거죠.”

김 이사장은 1696년 김기백·권영섭 작가 문하생으로 입문해 1975년 '나의 창공'으로 데뷔했다. 국내 만화계에서 40여 년을 활동한 '산증인'인 그는 \


◇70년대 ‘만화 보릿고개’ 넘어 얻은 ‘표현의 자유’=국내 만화계는 1970~80년대 보릿고개를 넘어왔다. ‘어떻게 하면 재밌는 만화를 그릴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검열에) 안 걸릴까’를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김 이사장은 “당시 (일본만화에 대한) 한(恨)과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현세, 허영만, 김수정 같은 작가들 만나면 ‘동료 작가’라고 하지 않아요. ‘전우’라고 하지. 어떻게 그 혹독한 70~80년대를 타고 넘어와서 살아남았는지, 사선을 넘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70년대 제 작품 중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누워서 큰 아이 등록금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근데 그게 정부 기관 검열에 걸렸어요. 남녀가 한 방에 누워있는 장면이니까 삭제하라고 하더라고. 그런 시절이었어요.”

만화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건 1982년 월간 ‘보물섬’이 발행되면서부터다. 가족 만화를 표방한 만화잡지였다. 김 이사장은 “가족만화라니까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 와서 아이들과 같이 보기 시작했다”며 “그때부터 만화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고, 작가들도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많이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80년대 만화 잡지는 ‘보물섬’, ‘새소년’, ‘소년중앙’ 등 4~5종에 불과했지만 80년대 말~90년대 초 들어 40종까지 늘었다. 단행본 기준 10만 부씩 나가는 만화도 등장했다.

“IMF 지나면서 만화계가 다시 좀 어려워졌고, 이후에는 학습만화가 성행했죠. 어려운 시기를 거쳐 이제 웹툰의 시대로 온 겁니다. 지금도 가끔 후배들 작품을 보면 ‘이런 소재를 써도 되나?’ 싶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웃음)”

현재 진흥원이 운영하는 디지털만화규장각 아카이브에 등록된 웹툰 작품 수는 7553편, 작가 수는 5614명에 달한다.

김 이사장의 최대 목표 중 하나는 2012년 시행된 '만화진흥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그는 \


◇‘웹툰 한류’와 ‘만화진흥법’ 개정 목표=김 이사장은 진흥원을 보다 ‘작가 친화적인 기관’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만화진흥법’을 개정해 생활고에 시달리는 작가들을 보호하고 웹툰의 경우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 진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진흥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웹툰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가장 많은 26억여 원의 사업비를 책정했다. 한국국제만화마켓(KICOM)을 통해 해외 바이어와 기업 간의 연계를 통해 사업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중국 산동성 옌타이시 문화창의산업단지에 ‘한중만화영상체험관’을 개관해 대중(對中) 한국 만화 콘텐츠 사업의 전초기지이자 한중합작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또 연내 ‘만화진흥법’(만화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국내 웹툰 시스템 기반도 확립한다. 김 이사장은 “2012년부터 시행된 지금의 만화진흥법은 대부분 선언적인 내용이라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있다”며 “만화진흥법을 보완해 일평생 작품 활동을 한 원로작가와 신인 작가 등에 대한 처우뿐만 아니라 우리 만화를 세계화하고 해외로 수출할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만화사랑국회의원모임 주최로 진흥원을 비롯해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등 13개 만화 단체가 만화진흥법 개정을 위한 만화·웹툰 산업 정책 토론을 펼쳤다. 만화 저작권 보호 권리, 만화창작인력 사회안전망 구축, 지역만화웹툰산업 균형발전 등이 논의됐다.

“다른 나라에서 100년 걸려 하던 것을 30년 만에 하려니까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만화진흥법 개정 등을 통해 국내 만화·웹툰 시스템의 알맹이가 채워진다면 우리 만화는 더욱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 믿습니다.”

대담=배성민 문화부장, 정리=구유나 기자, 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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