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즐기러 미술관에 가 볼까

2017. 8. 21. 05: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구미술관 ‘GHOST’전에 나온 안젤라 딘의 작품 ‘유령’.
호아드의 개관전 ‘질식할 것 같은’전에 나온 노진아 작가의 ‘미생물’.

호러는 여름 극장가의 인기 장르다. 하지만 올핸 ‘군함도’ ‘택시운전사’ ‘덩케르크’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득세하면서 더위를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호러가 실종되다시피 했다. 호러가 아쉽다면 전시장은 어떨까. 물·바람·불 같은 대자연이 주는 즉각적 공포뿐 아니라 늙음과 죽음, 자본주의와 욕망, 인습 같은 현대인을 두려워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요소를 돌아보는 ‘성찰적인 공포’ 체감의 전시가 서울과 대구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구 수성구 미술관로 대구미술관의 기획전 ‘고스트(GHOST)’전은 지난 6월 중순 개막 이후 입소문이 나 하루 1000명 이상 다녀가며 여름 특수를 누리고 있다. 광복절인 15일에는 무려 6000여명이 관람했다.

국내외 작가 9명이 회화, 사진, 조각, 영상, 설치 작품을 통해 죽음, 영혼, 자본주의 등 추상적 단어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을 표현해 흥미롭다. 미국의 빌 비올라, 일본의 오다니 모토히코 같은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의 참여도 무시할 수 없는 마케팅 포인트가 됐다.

이달 초 찾은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로비에 설치된 오다니의 영상작품 ‘인페르노’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 대표 작가 출신인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높이 7m의 스크린 구조물을 설치했는데, 겉과 안에 같은 폭포 영상이 흐른다. 특히 구조물 안에 들어서면 무한 반복 거울 이미지를 통해 폭포 속을 엘리베이터를 타고 초고속으로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환영을 체험하게 된다.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을 타고 ‘쿵’ 떨어지는 듯 한 기분을 느끼기도 해 관람객이 장사진을 치는 인기 코너다. 속도가 주는 공포를 체험하면서 속도 만능의 현대사회를 반추하게 한다. 비올라의 ‘세 여인’은 청춘과 늙음을 성찰하게 하는 특유의 종교화 같은 느낌의 영상작품이다.

한국 작가 김두진의 영상 ‘당신 곁을 맴돕니다’에는 초로의 남녀가 나오는데, 여자는 젊어졌으나 남자는 청춘으로 돌아가는 데 끝내 실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년의 쓸쓸함과 청춘에 대한 집착의 씁쓸함을 동시에 곱씹게 한다. 미국 작가 안젤라 딘은 인터넷에서 수집한 일상의 사진에 유령의 표식을 페인트로 칠한 회화 작품을 선보였다. 일상에 떠도는 죽음을 보는 것 같아 오싹하다. 이밖에 중국 작가 위안광밍은 중산층의 일상에 잠복한 불안을 보여주고, 한국 작가 김진은 자본주의가 바꾼 불안한 풍경을 펼쳐 보인다. 9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신생 복합문화공간 ‘호아드’에서는 팝아트처럼 쿨하면서도 오싹한 호러를 즐길 수 있다. 인왕산과 북악산을 한 눈에 조망하고, 국립현대미술관 종친부를 내 집 정원처럼 내려다볼 수 있는 탁월한 옥상 전망 때문에 젊은이들의 즐겨 찾는 핫스폿이 될게 분명하다. 그런데 아트디렉터 정현석씨가 기획한 개관전이 의외로 으스스하다. 다음달 3일까지 여는 개관전 ‘질식할 것 같은(Suffocated)’에선 노진아 성병희 송운창 양소정 등 30∼40대 실력파 작가들을 한데 모았다. 정씨는 “작가들이 작업 과정에서 직면하는 고통을 보여주고자 했다”며 “그 고통이야말로 이 시대 한국인들의 공통분모”라고 말했다. 지하에 들어서면 뱀처럼 길게 목을 뺀 여인 두상이 무더기로 설치돼 있는데 이게 난데없이 꿈틀거려 깜짝 놀라게 된다. 노진아 작가의 키네틱 작품 ‘미생물 시리즈’다. 지난 11일 개막일에 만난 노 작가는 “외계인이 우주에서 지구인을 본다면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저렇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2층 메인 전시장의 성 작가와 양 작가의 회화 작품은 피가 뚝뚝 듣는 듯 붉은 색이 넘쳐난다. 갈비뼈를 묶은 쇠사슬, 심장을 꿰매 아기 몸속에 집어넣는 여인 등 이미지의 파면들은 ‘지금 여기’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데 그게 공포로 다가온다.

대구·서울=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