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파문]'불신의 딱지' 된 친환경 인증·난각코드, 믿고 먹을 게 없다
[경향신문]
무항생제축산물, 무농약농산물, 유기축산물, 유기농산물.
국내에서 유통되는 친환경 농축산물은 크게 보아 이렇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키우는 ‘유기농산물’ ‘유기축산물’, 농약은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는 권장량의 3분의 1 이내만 사용하는 ‘무농약농산물’ ‘무항생제축산물’ 등이다.
건강한 먹거리를 중시하는 풍조가 거세지면서 이런 친환경 농축산물을 찾는 사람이 최근까지 크게 늘어났다. 2016년 친환경 농식품의 매출액은 1조4723억원으로 전년 대비 8.9%나 증가했다.
하지만 ‘살충제 계란’ 파동을 계기로 계란은 물론 ‘친환경’ 딱지가 붙은 농축산물 전체에 대한 불신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주부 이모씨(47·서울 은평구)는 “그동안 가족 건강을 위해 계란은 물론 채소 등 대부분의 농축산품을 가능하면 ‘친환경’ 마크가 붙은 것으로 골라 먹었다. 이번에 친환경 계란 중 상당수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거의 모든 친환경 농산물도 믿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10평 정도의 주말농장에서 채소 등을 키워 먹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두 배 정도 늘리고 작목도 추가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대전 자택과 충남 금산의 농가주택을 오가면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 노모씨(53·자영업)는 “이번 가을부터는 알 낳는 토종닭을 몇 마리 사다가 마당에서 키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농축산물’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상당수 소비자는 친환경 계란과 마찬가지로 다른 친환경 농축산물도 엉터리로 생산되고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정부는 살충제 계란 대란이 잦아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생산·유통 체계에 대한 정부 당국의 관리 능력에 불신감이 가시지 않으면 당분간 소비심리가 살아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9일 피프로닐이 검출된 전남 함평군 농가명과 난각코드를 각각 ‘나성준영’과 ‘13나성준영’으로 바로잡는 등 여러 번 잘못된 발표를 해 신뢰 추락을 자초했다.
정부는 계란의 출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난각코드’ 제도를 도입한 이후 7년간 ‘난각코드 미표시’ 사례를 6건 적발하는 데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재래시장 상점에선 난각코드가 아예 표시되지 않은 계란이 판매되고, 지난 18일 강원 춘천의 한 재래시장 상점에선 농약성분인 비펜트린이 검출돼 유통이 전면 중지된 난각코드 ‘08부영’이 찍힌 계란이 진열대에 놓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는 지난 15일부터 검사를 통과한 계란에 한해 판매를 허용하고 있으나, 그 이전에 유통된 계란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친환경 인증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9일 “소비자가 100% 신뢰해야 할 것에 정부의 신뢰가 손상되면 살충제 파동보다 더 큰 상처가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또 “써서는 안될 약품을 쓴다든가 정부의 안전을 위한 조치에 협조하지 않고 때로는 정부를 속인다거나 하는 농가에 대해 형사고발을 포함해 엄정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정부는 살충제 계란 전수검사 과정에서 일부 검사 항목이 누락된 것과 관련, 19일부터 전국 420개 농가에 대해 누락 항목의 보완 검사에 나섰다. 보완 검사에서는 전북 김제의 산란계 농장이 생산한 계란에서 검출돼서는 안되는 살충제 성분 플루페녹수론이 검출됐다. 최종 결과는 21일 나올 예정이다.
<윤희일 선임기자·최승현 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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