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탱크서 속수무책 참변..폭발음 1.5km 밖에서도 들려

백승목·송윤경 기자 입력 2017. 8. 20. 22:07 수정 2017. 8. 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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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STX조선해양 폭발사고 순간

사고현장 수습 20일 오전 폭발사고가 발생한 경남 창원시 진해구 STX조선해양에서 소방본부 대원과 회사 관계자들이 사고 수습을 하고 있다. 이날 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 4명이 사망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11시37분쯤 터진 STX조선해양의 폭발사고는 선체 내 기름을 싣는 석유운반선 내 RO탱크에서 발생했다. 사망한 4명의 노동자들은 휴일이지만 공기를 맞추기 위해 탱크 내부에서 막바지 공정인 도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고 선박에서 약 20m 떨어져 있던 노동자 ㄱ씨(48)는 “‘펑’ 하는 큰 폭발음이 들리며 배에서 짙은 연기가 났고, 20~30분 동안 가벼운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고 했다.

폭발음은 조선소 밖 1.5㎞가량 떨어진 곳에서도 들릴 만큼 위력적이었다. 주민 김모씨(59)는 “엄청난 무게의 철판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것 같은 굉음이 들려 ‘조선소에서 사고 났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망자들은 선체 외부로 대피하지 못한 채 6평 안팎(가로 3m·세로 5m)의 좁은 탱크 안에서 숨졌다.

소방대원들은 사고 발생 28분쯤 뒤인 낮 12시5분쯤 탱크 내부로 진입해 작업현장에 있던 시신 4구를 확인하고 선체 밖으로 옮겼다. 사망자들은 모두 하청업체 직원들이다. 도색 공정은 조선업계에서 대표적인 ‘위험의 외주화’ 공정에 해당한다. 문상환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직부장은 “도색 작업, 특히 기름탱크 같은 밀폐된 곳의 작업자들은 시너 같은 유기용제를 취급하고 있어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비정규직들은 작업현장 주변에서 어떤 다른 작업이 진행되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건조 중인 선박은 7만4000t급 석유화학제품 운반선으로 발주한 그리스 선박회사에 오는 10월쯤 인도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STX조선해양 창원조선소의 작업을 전면 중단하고 노동부 창원지청에 대책본부를 구성해 정부 차원의 조사에 나섰다. 김영주 노동부 장관은 이날 오후 5시30분쯤 사고 현장을 찾아 “인도 날짜를 맞추려고 무리하게 (사측이) 하청에 요구했는지, 작업 안전수칙을 지켜서 작업했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사망노동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진해연세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해 유족들에게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고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사업장, 관계기관과 협조해 보상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사측이 현장을 훼손시키지 못하게 조치했고, 진상조사팀을 꾸리라고 지시했다”며 “진상조사를 통해 원청사의 책임소재를 파악한 뒤 위법사항이 드러나는 관련자들을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노동절인 지난 5월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6명이 숨진 크레인 사고도 크레인 기사와 신호수의 소통 부재 등 안전조치가 미흡해 일어났다.

정부는 지난 17일 원청사의 책임을 강조한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하고 내년 3월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내년 하반기쯤 시행될 법안은 산재 사망사고에서 원청 업체의 처벌 규정을 한층 강화했다. 원·하청을 최대 징역 7년까지 똑같이 처벌하고, 징역은 1년 이상의 하한형도 도입됐다. 법인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1억원 이하에서 10억원 이하로 확대했다.

법 개정 작업이 시작됐지만, 조선업체에서는 사고 우려가 큰 ‘혼재 작업’(같은 장소에서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여전히 횡행하고 비정규직 안전조치는 불충분한 게 현실이다. 최근 3년간 300명 이상의 대형 조선업체에서는 산재사고의 88%가 하청업체 직원에게서 일어났다. 산재사고 10명 중 9명이 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얘기다.

노동 전문가들은 “노동집약 산업인 조선업체의 주채권은행들이 조속한 시일 내 비용을 줄일 것을 요구해 원청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식의 인력 구조조정을 하면서 ‘위험의 외주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승목·송윤경 기자 smbae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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