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우파 전면에 선 미 2030 "해방감 느껴"

이인숙 기자 2017. 8. 20.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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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미래 절망·박탈감에 가속화…‘신나치’ 비판에도 쾌감

지난 12일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 시위대들이 남부연합군의 명장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이 있는 공원 입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샬러츠빌 사태 1주일 만인 19일 보스턴, 댈러스, 애틀랜타, 뉴올리언스 등 전역에서 인종차별과 혐오, 나치주의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우파단체와 맞불 집회가 열린 보스턴에서는 우파단체가 반대집회에 눌려 45분 만에 해산했다. 샬러츠빌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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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윌리엄스 피어스(29)는 1년 전만 해도 대안우파(알트라이트)가 뭔지 몰랐다. 지난해 8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가 알트라이트를 거명하며 비난할 때 처음 들었다.

그러나 1년 뒤인 지난 11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열린 극우 집회 ‘유나이트 더 라이트’에 참석하기 위해 휴스턴에서 1900㎞를 날아올 정도로 열혈 대안우파가 됐다. 지난해 12월 텍사스 A&M 대학을 찾은 대안우파 운동가 리처드 스펜서의 강연에 빠져든 그는 이 집회에서 슈트를 입고 헬멧과 방독면·고글을 쓴 채 횃불을 들고 행진했다.

피어스는 19일 워싱턴포스트가 인터뷰한 샬러츠빌 시위 참여자 20~30대 6명 중 하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들은 공통되게 백인이 차별받는다고 느끼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모바일 채팅 서비스인 레딧, 디스코드 등을 통해 알게 돼 행사를 조직했다. 2년 전 게임 마니아들을 위해 나온 디스코드는 극도의 익명성과 폐쇄성 때문에 극우의 본거지가 됐다. 이들은 인종차별주의자, 신나치주의자라는 비난에도 오히려 해방감이나 중독성 있는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 샬러츠빌 사태를 대안우파 운동의 전환점이라고 자평하며 한껏 고무돼 있었다.

미국을 혼란과 분열로 몰고 간 샬러츠빌 사태의 특징 중 하나는 집회 전면에 등장한 20~30대 청년들이다. 집회에는 ‘전통’의 백인우월주의 과격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 신나치 스킨헤드 등 모든 우파가 집결했지만 이들 중에서 말쑥하고 단정한 차림의 젊은이들은 유독 눈에 띄었다.

탐사보도 언론 프로퍼블리카는 최근 백인우월주의자의 새로운 세대에 대해 “전례 없이 조직적이고 전술에 밝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난 11일 시위 당시 5~20명이 헤드폰과 초소형 무전기를 들고 나타나 지시하자 횃불을 실은 트럭이 옆으로 와 섰고, 시위대가 갑자기 수백명으로 늘어나 순식간에 대열을 만들어 행진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뱅가드 아메리카, 아이덴티티이브로파, 전통주의 노동자당 등 최근 참가자를 부쩍 늘린 신생 단체에 속해 있다.

대안우파 청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읽히는 심리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한 좌절과 분노, 정부가 최고위층의 돈 있는 자들이나 아니면 빈곤한 소수들에게만 관심을 쏟는다는 박탈감이다. 11일 시위를 조직한 엘리 모슬리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정치에 냉담하거나 관심이 없던 젊은 세대에게 힘을 줬다. 트럼프가 메가폰이 됐다”며 “청년들을 정치에 끌어들일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자유주의자였고 마틴 루서 킹의 책을 읽었다. 주변에도 지난 대선에서 극좌 성향의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건 우리들의 1960년대 (흑인들의 민권) 운동과 같다”고 표현했다.

스스로를 1세대 대안우파라고 칭하는 매튜 패럿(35)은 20대에 백인 민족·전통주의 청년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에 “가입자들은 하나같이 자기 앞에서 사다리가 치워졌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극단주의 혐오단체를 연구하는 서던파버티로센터의 라이언 렌즈는 “취업난에 대한 절망과 미래를 약속하는 급진적 사상이 청년들의 움직임을 가속화했다”며 “이런 젊은이들은 정부가 그들에 반해서 움직이고 백인에게는 어떤 것도 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특히 그들은 첫 미국의 흑인 대통령이 백악관에 있던 시기에 이것을 접한 세대”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공영방송 NPR·PBS와 여론조사기관 마리스트의 공동조사 결과를 보면 백인민족주의(73%), 백인우월주의(86%), KKK(94%)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압도적이지만 대안우파는 동의 안 한다(48%)와 유보(46%)로 반응이 엇갈렸다.

인터넷 매체 복스는 “이들을 1차원적이고 증오와 무지에 조종당하는 허수아비로 취급해버리는 건 쉽지만 이런 극단주의적 시각이 번지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이런 생각이 생겨났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9일 심리학자 패트릭 포셔(아칸소대)와 누어 케티릴리(노스웨스턴대)는 대안우파 447명을 인터뷰해 ‘알트라이트의 심리학적 상태’라는 첫 심리분석 보고서를 펴냈다.

전 KKK 대표의 아들이자 백인우월주의자의 ‘신성’이라 불렸던 데렉 블랙은 19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대통령의 말은 우리나라의 최악을 정당화시켰고 이제 백인민족주의 운동은 성장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맞서려면 우리는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이어져 온 백인민족주의적 사고를 인정하고 그것이 여전히 호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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